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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롤 지음, 김석희 옮김, 헬린 옥슨버리 그림 / 웅진주니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 학장의 딸에게 -아이시스 강에서 뱃놀이를 하며- 즉흥적으로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탄생하였다. 시계를 보며 허겁지겁 달려가는 하얀 토끼, 후추 때문에 끊임없이 재채기를 하는 공작부인, 다과회를 즐기는 삼월 토끼와 모자 장수, 카드 여왕과 병정들, 홍학과 고슴도치를 이용한 크로케 경기, 히죽거리는 웃음과 함께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체셔 고양이 등등 독특한 매력과 개성을 발산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아이들을 매료시킬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이번에 웅진주니어에서 출간한 작품은 헬린 옥슨버리가 그림을 그린 것으로, 옥스버리는 민소매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은 앨리스를 선보인 이 작품으로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집에 다른 출판사(시공주니어)에서 나온 책이 있지만 이 책에 욕심이 났던 것은 바로 헬린 옥슨버리가 삽화를 그렸다는 점 때문이다. 펜으로 그린 날카로움이 살아 있는 존 테니얼의 삽화도 인상적이긴 하지만 아이들은 <곰 사냥을 떠나자>, <아기 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 등의 그림책을 통해 접해 왔던 옥슨버리의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화풍이 더 친숙하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전문 번역가들 중에서 한 손안에 꼽히는 김석희님-<로마인 이야기/한길사>로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1997)을 수상함-의 번역이라는 점 또한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시공주니어판과 웅진주니어판을 함께 펼쳐놓고 비교하면서 보았는데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서 번역해서인지 낮은 연령대의 어린이들도 쉽게 읽힐 정도로 문체가 쉬웠다. 가령 '건조시켜 주지(시공주니어판)'라는 문장을 이 책에서는 '말려 주지(웅진 주니어판)'라고 번역하는 등, 어른들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이지만 아이들은 아직 단어의 뜻을 잘 모르는 단어는 최대한 절제하고 쉬운 우리말로 번역해 놓았다.
- 참고로 주석은 시공주니어판이 조금 더 충실하다. 체셔 고양이가 앨리스에게 삼월 토끼가 5월에는 3월만큼 미쳐 날뛰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 하는 부분(시공:90쪽, 웅진:105쪽)의 경우, 시공판의 주석-3월이 짝짓기 계절이기 때문-덕분에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이런 주석이 없어도 작품 자체로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터이지만, 등장인물들이 그런 말을 한 이유를 아는 것 또한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영어 단어가 지닌 의미나 특성을 이용한 수수께끼나 말장난 같은 것이 많이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단어의 의미대로만 번역을 하면 그 묘미가 감소하거나 본질을 잃게 된다. 가령 작품 에 등장하는 'tale(이야기)와 tail(꼬리)', not(아니다)와 knot(매듭), 'axis(축)와 axes(도끼의 복수형)' 같은 단어들처럼 영어에도 글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단어들이 있다.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다른 나라 언어의 유희가 지닌 묘미를 얼마나 잘 살려내는지, 단어에 담긴 여러 가지 뜻에서 작가가 의도하는 맥락을 짚어내는 것 등은 번역하는 이의 역량에 달려 있는데,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에 번역의 어려움이나 한계가 존재하는 것일 게다.
작품 뒤에 실린 '옮긴이의 덧붙임'에 번역자분이 지적한 것처럼 대부분의 어린이 책이 교훈이나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어린이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탄생하였다. 앨리스가 "세상 만물은 무엇이든 교훈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공작부인을 보며 "공작부인은 무슨 일에서나 교훈을 찾는 게 취미인가 봐!"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바로 이런 점을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신기한 모험 이야기로 가득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무한한 상상력을 지닌 우리 아이들에게 상상하는 재미와 책 읽는 즐거움을 선사할 작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