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딴엔 단골(?)이라고 생각하는 헌책방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쾌적하고 깨끗하게 리모델링한 곳이고, 다른 한 곳은 그나마 선풍기 두 대가 있긴 하지만 여름에는 정말이지 사우나 하러 간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지 않으면 안 될, 허름하기 짝이 없는, 거기다가 주인 할배는 정말이지 무뚝뚝하고 꼬장꼬장하기까지 한 곳이다. 당신이라면 이 한여름, 더군다나 그것도 극서지라 불리는 이 대구 땅에서 어느 헌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길 텐가? 어느 헌책방을 더 자주 가겠는가?  


나는 여름이면 비교적 사우나(?)를 하러 더 자주 간다. 그저 헌책방이 통상적으로 갖는 낭만적 이미지, 허름한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사우나를 방불케 하고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꼬장꼬장하기까지 한 주인 할배가 있는 헌책방에는 깔끔하고 쾌적한 헌책방보다 보물(사진작가 김중만의『동물왕국』을 두 시간 여의 사우나를 통해 찾았다!)이 많이 숨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주인 할배를 감히 비교하자면, 무뚝뚝한 할배가 내공(?)이 더 세다(?)! 아무리 오래되고 낡아빠진 책이라도 좋은, 괜찮은 내용을 담고 있다면, 결코 똥값(?)으로 셈하지 않는 걸 보면서 그 내공(?)을 느꼈다고 한다면 이해가 가시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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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역시 사우나 헌책방에서 만났다. 사실 오래 전부터 늘 그 자리에 꽂혀 있었던 걸 얼마 전에 사들였다. 헌책방에 쭈그려 앉아 표지며 책 곳곳을 훑다가 뭔가 필(?)이 오더라는! 사진 속 전우익 선생(?)이 무뚝뚝하고 꼬장꼬장한 사우나 헌책방 주인 할배랑 어쩜 이렇게 닮았을까! 오, 놀라운지고. 깊고 선명한 주름하며 머리 모양새, 얼굴형과 눈매 그리고 분위기(?)까지 놀랍도록 닮았더라는. 주인 할배와 사진 속 전우익 선생을 연신 번갈아 보면서 내 심장은 콩닥거리기까지 했다.  


이 책은 편지글을 모은 책이다. 저자가 수년 간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서 엮은 책으로 단순히 안부를 묻는 차원이 아니다. 세상을 걱정하고 세태를 꼬집는 날카로움도 배어 있으며,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과학과 기술이 아닌 땅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단순히 자연 · 생태적인 삶을 살아라! 하는 것이 아니라 손수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짓고 그 결실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그 값진 노동의 가치를 실천하고, 땅의 진정한 가치와 쓰임에 대한 철학이 아주 짙게 배어 있다.  


오늘날 일이 크게 둘로 양분되어 정신 노동, 육체 노동으로 나누어졌는데 이것도 빨리 어우러져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역시 경독耕讀의 일체화라고 여겨요. 참된 경耕은 독讀을 필요로 하며, 독讀도 경耕을 통해서 심화되고 제구실도 할 수 있겠지요.

방에 틀어박혀 책상 붙들고 앉아서 천하명문이 나온다면 천하는 무색해질 것입니다.(p57) 

 

저자는 스스로를 농사꾼이라고 자처한다. 하루하루가 달갑고 다르며 값지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는 농사꾼이다. 이런 저자를 두고 육체노동자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한 것처럼 ‘경독耕讀의 일체화’ 없이는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펜대 좀 굴린다한들 진정한 노동이 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지 않은 채 오로지 육체만 놀려서 힘써 일한다한들 마찬가지가 아닐까.  


예전에 읽었던 수공업자들에 관한 책에서 깨달은 바는 그네들은 몸을 놀리면서 일을 하고 밥을 생산하지만 결코 육체적으로만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름의 철학이나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노력이라는 구슬땀을 통해서 ‘제구실’을 하고 ‘만족’하더라는. 그런데 과연 정신노동자들이라고 불리는 이들 역시 이러할까? 머리 쓰고 펜대 굴리는 것에 익숙한 대부분의 정신노동자들에게는 아무래도 ‘경독耕讀의 일체화’를 찾아보기가 힘들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어쨌건 마음에 절절하게 와 닿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제가 거처하는 방에 우이牛耳 선생님의 글씨 한 폭이 걸려 있습니다. ‘한울삶’이란 것인데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삶 자에서 가장 작은 점 하나 떼어 보자고 그랬더니 싦이 돼요. 싦이란 사전에도 없는 아무것도 아니래요. 확실히 싦은 싦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작은 점 하나를 찍으니 ‘삶’자가 되어요. 삶에서 점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점 하나는 누구나 뗄 수도 찍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큰 힘 들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점 하나가 삶이 되고 뒤범벅이 되는 큰 일을 하는 건 마치 작은 씨가 큰 나무로 자라나는 이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뒤범벅이 삶이 되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아주 작고 작은 일에 서로 부담감 주지 않고, 소리 없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올 봄의 소원으로 삼고 싶습니다.(p67)  


며칠 전에 본 아우구스토 쿠리의『드림셀러』에서 ‘스승’이 이와 비슷한 말을 했던 게 생각난다. 마치 제비처럼 작으나마 제 날개에 알맞은 일을 하고 그만큼의 나눔과 도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야말로 세상은 바뀐다고. 즉, 제 존재에 알맞은 삶을 인식하고 재량껏 세상을 위해, 친구를 위해, 가족을 위해, 주변 이웃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것에서부터 삶은 변화하기 시작하고 세상을 바꾸는 초석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 자랑할 요량도 없이 조금은 수줍은 듯 자신을, 주변을 보듬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난다면, 언젠가는 모두가 바라는 그런 좋은 세상,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 최근에 읽은 에모토 마사루의『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란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작은 의식들이 모여서 발휘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생각을 하고 의식적으로 좋은 세상을 바라면서 작게나마 노력하는 그 과정 속에서 ‘형태의 장’이 형성되고 이 장이 서로 ‘공명’함으로써 세상은 바뀌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결국 표현방식과 접근방식이 다를 뿐 전우익 선생이나 아우구스토 쿠리, 에모토 마사루 모두가 세상을 바꾸는 근본은 큰 힘이 아닌 작은 힘으로부터 시작되며,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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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셀러』를 읽어나가면서 ‘스승’의 정체에 대해 몹시(?) 궁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 전우익 선생의 정체가 궁금하다. 그는 스스로를 농사꾼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어나가기 전에는 그저 어느 농사꾼이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어 놓은 책인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읽어나가다 보니 앞서 말했던 사우나 헌책방 주인 할배처럼 내공이 상당하더라는.『드림셀러』에서 정체불명의 ‘스승’을 두고 그는 미치광이인가 현자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면, 과연 전우익 선생은 정녕 농사꾼인가 철학자인가 혹은 인문학자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는 과연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 


시인 신경림은 전우익 선생을 ‘깊은 산골에 약초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편지글 속에 담긴 그의 철학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이해가 되더라는. 그는 세속적인 것을 거부한 채 은둔생활을 하는 풍류랑(?)이 아니다. 유유자적한 삶을 살기는 하지만 그는 고귀한 땅 위로 곡진한 땀 한 방울을 흘릴 줄 아는, 그 땀방울의 의미를 아는 철학자요 농사꾼이요 인문학자인 것이다. 약초를 캐는 사람도 아니고 약초 그 자체인 것이다. 깊은 산골에서 흙 묻은 손으로 두서없이 써내려 어디론가 부치는 그의 편지는 그런 약초의 기운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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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사진을 담당한 분은 사진가 주명덕이다. 그의 작품은 열화당 사진문고로 나온『주명덕』밖에 접해보지 못했다. 아차! 얼마 전에 책엄마께서 보내주신「2009 오디세이」초대권 덕분에 서울에 올라가 직접 그의 작품을 만났었군! 무튼(?) 그의 심오한 작품 세계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이 책에 실린 전우익 선생의 사진을 보면서 전우익이라는 한 개인의 내면적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흔적을 살짝 맛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죄다 비슷한 모습과 표정, 포즈라 무성의하다고까지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책 내용을 통해 전우익 선생이 전하는 따끔한 채찍질(?)에 단련(?)되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이 무게감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디서나, 무엇에서건 늘 배우는 사람이 저자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작은 풀 한 포기 흙 한 줌에서도 배울 게 있다고 말하는 그는 진정으로 ‘늘 배우는 사람’이면서 ‘늘 행동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의 얼굴에 선명한 인생의 깊은 골은 배움으로 충만하고 하얗게 덥힌 머리칼 아래로 빛을 발하며 상대를, 사물을, 세상을 응시하는 예사롭지 않은 눈빛은 결연하게 느껴진다. 꾸밈없고 가식 없는 순수 빛 그 자체를 뿜어내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만약, 인간 본연의 눈빛 혹은 심연의 눈에서 새어나오는 빛의 기원을 찾는다면, 아마도 그의 눈빛과 다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며.  


‡‡‡‡‡‡‡‡‡‡‡‡‡‡‡‡‡‡‡‡‡‡‡‡‡‡‡‡‡‡¨¨주워 담기¨¨‡‡‡‡‡‡‡‡‡‡‡‡‡‡‡‡‡‡‡‡‡‡‡‡‡‡‡‡‡‡

스님, 밭에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니까 잡초 독초가 기를 쓰고 자랍디다. 곡식이 자리 잡고 제대로 크면 잡초가 맥을 추지 못합니다. 세상도 그런 게 아닌가 여겨 봅니다.(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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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라는 틀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잘못된 틀은 사람을 잡습니다. 논밭만 있으면 농사  지을 수 있다고 여겨 왔는데 세상이란 큰 틀이 잘못되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깨달은 농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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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연을 원수처럼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 자연의 리듬에 거슬리게 사는 게 잘사는 것인 양 우쭐대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연의 리듬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역사의 흐름도 막으려 들고 민심도 깔아뭉개려 들어요.(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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