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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산과의사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한지 5년이 되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 그런데 아직 아이는 없다.
주변사람들은 왜 아이가 없는지 몹시 궁금해한다. 어떤 이는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는지 의심하고 어떤 이는 언제가 후회할거라 협박한다. 나를 아끼는 사람은 완전한 가정은 아이가 있을 때 완성된다고 조언한다.
문제는 내가 아이를 가진다는데 아무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명백히 아이를 원하지 않는것도 아니고, 아이를 갖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러니 누가 협박하면 불안해지고, 그러면서도 아이없는 자유로운 삶에서 벗어날 자신도 없다. 하지만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직업상 아이를 늦게 가지면 가질 수록 출산의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늘 안절부절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출산을 서두르지 않은 덕분에 나는 아이를 갖는 것에 관해, 출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간도 많았고, 좀더 자연스러운, 인간다운 출산에 대해 말하는 책들을 찾아 읽을 수 있었다.
농부와 산과의사도 그런 노력에서 찾은 책이었다. 저자는 산과의사로 오랜 경력을 쌓았고, 가정의 분위기와 비슷한 분만실과 수중분만을 도입하는 등 자연스러운 출산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온 사람이다. 그는 이 책에서 출산을 농업과 관련지어 산업영농의 발달에 따라 산업적 출산이 발달했고, 그러한 산업영농의 발달은 구제역이나 광우병, 산관의사에 의한 출산의 문제점등을 가져왔으며 자연스러운 유기농업으로의 회귀가 출산도 자연분만의 정상적인 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책의 뒷부분에서 출산이 자연스러운 생리작용의 한 부분이며 이를 수면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 잠을 잘 때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어두운 방안에서 잠이 쉽게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출산 역시 개인의 사생활이 최대한 보장되는 환경에서 다른 이들의 개입없이 이루어 질 때 산모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며 출산의 생리과정이 방해받지 않음으로서 큰 고통없이 아이를 자연스럽게 낳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요즘 많이 언급되는 아버지의 참여나 산과의사의 개입 역시 그러한 과정을 방해한다고 지적하며, 자연스러운 출산을 경험해본 가까운 사람이 출산을 도와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출산을 원한다는 것은 비단 출산과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 자체가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아이를 갖기 전부터 자연에 충실한 삶의 태도를 익히고, 아이를 가져서도 불안해하기 보다는 건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며, 자연스러운 환경속에서 편안하게 출산을 할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온전한 출산의 경험을 가져볼 수 있으리라.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 읽기가 조금 괴로웠다는 점이다. 특히 앞부분의 현대산업사회의 위험에 대한 설명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아 대충대충 읽어나갔다. 역자가 영문과 교수였는데 혹시 제자들에게 번역을 맡긴게 아닐까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번역의 문제가 많이 걸리지만, 그래도 자연스러운 출산을 원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큰 도움이 될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