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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딸 가논
쓰지 히토나리 지음, 박영난 옮김 / 북스토리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영화로도 나온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고 나서 쓰지 히토나리란 작가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원래 한 작가의 책을 읽고 나면 그 작가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는 습관이 있어 이 책도 읽게 되었습니다.

먼저 책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고독을 사랑하는 핵가족 출신의 주인공이 어쩌다 대가족 출신의 여자(가논)에게 데릴사위로 장가가게 되면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대가족제도에 대해 나름대로 해부해 보기로 결심합니다. 각 장이 대가족에서나 벌어짐직한 각가지 에피소드로 채워지기 때문에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듯 흥미진진한데다 각 장의 시작에 가족제도에 대한 이론적 배경까지 짧게나마 소개되고 있어 대가족제도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정리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하지만 유쾌하게 읽고 난 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모두 경험하다시피 가족이란 매우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울타리가 되기도 하지만 극복해야할 과제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재일작가 유미리가 보여준 가족에 대한 애증이 맘에 듭니다. 히토나리의 가벼운 서술도 좋지만, 역시 가족이란건 그렇게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주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작가로서의 전문적인 활동에 가족이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서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족의 강한 결합도 무시할 수 없다는 식으로, 개인의 중요성을 가족이라는 집단의 중요성 속에 어물쩡 묻어버립니다(매우 프로페셔널했던 그녀의 아내도 임신과 함께 자신의 직업을 쉽게 포기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삶은 그렇게 어물쩡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개인과 가족사이의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는 그대로 남습니다.

핵가족제도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요즘, 전통적인 대가족의 모습을 통해 대가족제도도 역시 그 만의 장점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시도는 매우 신선합니다. 그러나 이미 개인의 자유가 우선시 되는 시대의 흐름 역시 거스르기에는 이미 너무 거세보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난 이렇게는 못산다 생각했으니까요. 대가족의 장점도 물론 크겠지만, 난 그 장점을 포기하더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끝으로, 책의 내용이 히토나리의 전처의 가족 얘기라도 하던데, 그가 그녀와 헤어졌다면 역시 고독을 사랑하는 작가는 대가족제도에서 살아남지 못한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소설에서는 결국 대가족제도 안에서의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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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은 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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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만 봤을 때는 그냥 장화홍련전 쯤으로 생각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같은 소설을 쓴 현대적인 작가가 왠 옛날 이야기를 썼는가 생각했지만, 읽어보니 현대적 작가가 고전 이야기를 쓰면 이렇게 새로운 소설이 등장하는구나 싶어 그저 감탄스러웠다. 소설은 아랑사건의 진실이 파헤쳐지는 과거와 영주와 박이라는 남녀의 관계를 보여주는 현대, 두 축으로 진행되는데, 작가가 이야기 만드는 과정을 독자에게 이야기하듯 전개해 나간다는게 참 특별하다.

가는 아무 설명없이 아랑이 나비가 되었다며 나비이야기로 운을 뗀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큰 흰줄나비. 나비가 어쨌다고 하는 의문이 생기면 억울하게 죽어 나비가 된 후 범인의 머리위에 앉아 진실을 밝혔다는 아랑전설이 소개된다. 이쯤되면 어렴풋이 어렸을 때 읽었던 전례동화가 기억이 나는데, 작가는 아랑전설의 여러 판본들 사이의 불일치를 보여주며 아랑 전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한다.

음, 그냥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숨겨진 뭔가가 있나 싶어 이제 그 이야기의 전개가 사뭇 궁금해지려는 차 느닷없이 역사소설의 서두에 현대이야기를 배치함으로써 이 소설의 화자가 역사 바깥에 있음을 보여주고 그 시선으로 역사적 사건을 보게 하겠노라며 박과 영주의 이야기를 등장시킨다. 이쯤 되면 소설이 어찌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랑전설의 진실만으로도 충분히 궁금한데, 게다가 현대의 박과 영주의 이상한 관계까지. 아랑이야기를 읽다보면 영주와 박의 이야기가, 영주와 박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아랑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식으로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게다가 소설을 다 읽고나면 아, 이렇게 인물이 설정되고, 이렇게 이야기가 구성되는구나 싶어 이 과정대로만 하면 나도 소설한편 쯤 쓸 수 있을 것 같은 호기까지 생긴다. 그저 억울하게 죽은 아랑의 원한을 새로 부임한 군수가 풀어준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옛날 얘기에 숨겨진 김영하 나름의 진실 또한 매우 흥미롭다. 책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밝힐 수는 없지만, 용감하고 멋진 왕자에 의해 구출되는 미녀 이야기인양 가장하고 있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사실은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아이의 성적 호기심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는 것과 유사하다.

겉으로 보기엔 권성징악의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전설, 전례동화들 속에 어쩌면 상류계층의 부패를 눈가림하거나 또는 특정계층을 억누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니 이야기가 이렇게 악용될 수도 있구나 싶은게 어릴 적 아무 생각없이 읽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생각나 섬뜩해진다.

다만, 아랑이야기와 영주와 박의 이야기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혹시 똑같이 살해당하지만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면에서 아랑이가 영주를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뭐, 이해할 수 있으면 좋지만 이해하지 못해도 이야기는 여전히 재미있다. 그래도 혹시 아시는 분 있으시면 설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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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낚시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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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자기소개서나 입회원서를 작성할 때 취미란을 바라보며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딱히 즐겨하는 것도 없는 사람에게 취미가 무엇입니까하고 누군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보통은 만만한 독서나 영화감상이 떠오를 것이다. 나는 늘 운동과 영화감상을 적었었다.

요즈음엔 각종 영화잡지며 영화관련 TV 프로그램 덕분에 누구나 영화 비평가가 되어 꽤 어려운 이야기도 늘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영화는 단순히 취미란을 메꾸는 적당한 유희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쳐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된 듯도 하다. 그러나 나는 어려운 이야기로 영화를 해부하는 건 질색이다. 전문인들끼리 전문분야의 지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면 모를까 대중을 대상으로 어려운 얘기하는 건 싫다. 물론 나도 새로 개봉된 영화를 선택할 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비평가의 평을 참조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야후 영화란에 실린 보통사람들의 솔직담백한 평을 더 즐긴다.

내게 영화는 누군가의 인생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그 인생에 빠져들고, 영화를 보고 나서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게 영화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서 전문적이지 않으며 영화 내용 자체에 충실한 김영하의 영화감상문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김영하가 바라본 영화속 인생, 영화와 관련된 그의 인생을 엿보며 내가 미쳐 느끼지 못했던 것들, 잠시 잊고 있었던 이전에 보았던 영화에 대한 추억들을 마음 따뜻하게 되살릴 수 있었다.

책에는 18편의 영화감상문이 실려 있는데, 난 그중에서도 인터뷰감식법이란 제목이 붙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영화에 대한 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글에서 그는 권력있는 자의 질문의 폭력성을 지적하는데, 난 글을 읽으며, 신경질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놓고 대답못하면 멍청하다고 윽박지르던 대학시절 교수를 생각했다. 어디 그뿐이랴. 학창시절 겪었던 부적절한 질문의 예는 수없이 많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인데, 당시에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서워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한번 되물어보지도 못했다. 새삼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외에도 영화 대부에 대한 글도 좋았다. 나는 대부 시리즈를 참 좋아해서 여러번 보았는데, 볼 때 마다 뭔가 찡하면서도 그게 뭔지를 잘 몰랐었다. 그런데 김영하가 대부가 보여주는 세계가 우리 모두가 사는 바로 여기, 이 세상이라잖는가. 아 그랬구나, 매일 그렇게 살지 말하야지 하면서 결국은 시덥지 않은 일상을 반복하는 내 모습이 바로 원치않던 보스 역할을 맡아 형제에게 총을 쏘아대던 마이클의 모습이구나. 알 수 없는 찡한 감정에 대한 해답이 풀리면서 한동안 보지 않았던 대부 시리즈들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예전에 봤던 영화에 대한 김영하의 솜씨 좋은 감상문을 읽으며, 그 추억을 되살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적극 권한다.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어느새 당신은 비디오 가게에서 신프로 코너를 기웃거리는 대신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주인장에게 대부 시리즈 있어요 하고 묻게 될 것이다. 구프로는 추억에 덤으로, 500원 할인된 가격의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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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hk 2004-03-19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게 있어 영화는 "추억"이다.
그 영화를 봤을 때의 내 상황, 내 마음, 내 느낌.
다음에 다시 그 영화를 봤을 때 제일 먼저 기억나는건 지난번 그 영화를 봤을때의 내 모습과 내 생각등이지.
새로 보면 느낌이 새로워지는 경우 있쟎아. 그 새로운 느낌에 과거의 내 추억이 쌓이고 또 지금의 내모습이 또 쌓이고. 그래서 자꾸 보면서 나랑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영화들이 있지...

이 책에서 저자도 '시네마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런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 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달린다 - 개정판
요쉬카 피셔 지음, 선주성 옮김 / 궁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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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쉬카 피셔라는 독일 외무장관의 평범하지 않은 이력과 특히 달리기를 통한 체중감량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는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호감을 갖게 되었고,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인생역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내용은 의외로 평범하고, 유명 정치인답지 않게 솔직하고, 일관성 있게 주제에 충실하다. 한마디로 이 책은 달리기에 대한 개인적 기록이 그 주 내용이며, 달리기를 통해 변화된 자신의 모습이 조금 추가되어 있을 뿐이다. 달리기 입문서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내가 만일 '달리기 입문-초보자를 위한 가이드'와 같은 본격적인 달리기 관련 서적을 읽었어도 그랬을까 싶게 책을 읽어나가면서 달리고 싶다는 욕망이 간절해졌다. 나도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길을 나서서 한발 한발 발을 내딛으며 내 자신의 생명력을 느끼고, 내 발아래 와 닿는 지면을 느끼고 싶다. 그래서 서른 이후로 탄력을 읽기 시작한 내 피부에 다시 탄력을 주고 싶고, 활력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가 책 속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기껏해야 집안에서 비싼 텔레비젼 브라운관 깬다고 구박하는 남편 눈치보며 훌라후프나 돌리는 주제에 말이다. (그것도 큰 맘 먹어야 돌린다) 그러니 나는 살이 쪄서, 건강이 걱정되어서, 하루키처럼 쿨해 보이고 싶어서 달리기를 하고는 싶지만 쉽게 마음먹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적극 권한다.

친절하게도 책에는 피셔의 달리기 훈련 과정이 표로 소개되어 있어 달리고자 하는 욕망을 부채질 하는데서 그치는게 아니라 당장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 참고로 말하면, 피셔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인 개인 트레이너가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아마 피셔만큼 빨리 성장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그가 말하는 달리기의 장점들을 경험할 수는 있으리라 기대한다.

책을 읽고 나서 내 머릿속에는 딱 두가지 문장이 남았다.
- 물고기는 헤엄친다, 새는 난다, 인간은 달린다.
- 생활방식의 변화없이는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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