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연말이 이렇게 분주하고 바쁠 줄은 몰랐다.

한 해가 다사다난했다고 누가 말해도, 그저 학교 다닌 것 밖에 없었으니.. 다사다난하다는 말의 참 의미를 몰랐던 거 같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래.. 올 한해.. 레포트도 많았고... 시험도 힘들었고... 친구들과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지.. 일이 많았군.' 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올해만큼 내 인생에서 바쁘고 정신없었던 해도 없었지 싶다.

특히 어제는 그 분주함이 절정에 다다랐는데, 오후 5시무렵 30분이 멀다하고 계속해서 오는 전화들과, 만나야할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그리고 반드시 내가 해결해야만 하는 많은 일들 가운데에서 나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오해의 사건까지. 20분이 넘게 오해를 푸는 통화를 했지만, 오해는 풀리지 않은 것 같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쓸데없는 일을 벌려서 오해를 사고, 욕을 먹은 것 같은 느낌에 결국에는 눈물이 나고야 말았으니... 내 방 옆에 딸린 조그만 간이 주방에 문을 닫고 들어가 눈물을 훔쳐냈다.

그렇지만 오래 울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밖에선 여러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오해와 거절의 상황은 참 많은 상처를 남기는 것 같다. 작년에도 그래서 힘들었는데... 오늘 아침에 93.1fm 이규원의 가정음악을 들었다. 마침 거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머리에 드라이를 켜다 말고 한참을 머리를 말은 채 들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몇일 전 한국에 와서 했던 이야기 중에 한 부분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은 거절의 연속이었다고 했었나... 오디션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나이가 너무 어려서 안돼'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안돼' '침울해 보여서 안돼' '안돼' '안돼' '안돼'... 그래서 이번에도 안되면 정말로 배를 타고 나가 글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오디션을 봤는데, 거기에서 드디어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꿈보다는 해몽이라고, 이규원씨의 멘트가 더 좋았다.

늘 안된다는 거절의 상황에서 한 번만 더 도전해봤으면 이루어질 수도 있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이 사라지고, 포기하게 되는지 말이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일들 중에서 내 인생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그 한 번의 거절과 실패 때문에 지친 듯, 가능성이 없는 듯, 포기되어 내 삶의 저 뒷자리로 떨어져나가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그것을 시도해 보는 것이 옳은 일이지 않을까...

뭐. 자세히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대충 이런 식의 멘트였다고 기억이 난다. 적어도 난 그렇게 받아들였으니. 그렇게 생각해보면 한 해 동안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거절이나 실패로 기억되어 또 다시 시도할 힘을 잃게 만들었던 일들이.. 없지 않고. 또 그런 일일수록 가장 내 삶의 의미가 있는 것들이라는 게 생각났다.

거절을 받아들이고 또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내년에는 가져보기로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유럽여행도 갔다오고 나니깐 딱 한번만 더 간다면 그때는 정말 제대로 즐겁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더라.. 학교 졸업하고, 나름대로(?) 사회 생활을 하게 된 올 한해 이리저리 왔다갔다 굴러다니면서 상처도 받고, 실수도 하고, 모진 말도 내뱉어가면서 어떻게 어떻게 지냈지만, 내년 한 해 다시 한 번 한다면 이번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도 살금살금 생겨나니 참 다행이다. (어제는 비록 힘들었지만. 그것이 올 안에 일어난 일이어서 일단락이 되고, 이제 작년 일로 기억되어 내년에는 기억하지 않으리라.)

내년에도 물론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고, 이사를 하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만나던 사람들과 크고 작은 트러블들도 생겨날테지만, 그때에는 좀 더 여유롭게, 그리고 좀더 편안하게 그들을 만나주기로, 그리고 좀 더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일들과 장소에 대해 감사하기로 마음 먹기로 하자.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내 마음속에 계속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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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12-31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해가 드디어 갔다는 느낌도 들어요. 12월에는 그냥 빨리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으면 싶었거든요. 아쉬움도 많지만, 좋은 일도 있었고, 슬픈 일도 있었던 한 해였어요. 님도 새해에는 더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해요. 이 글 참 좋네요. 저도 한 해 힘차게 보낼 준비를 해야겠어요.

비로그인 2004-12-3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na님, 저도 가끔 이규원의 가정음악 들어요^^
이규원씨의 멘트에 Hanna님처럼 꿈보다 해몽이라는 느낌도 종종 느끼구요^^
Hanna님께 새록새록 돋아나는 용기가 참 예뻐 보입니다,
새해엔 더욱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님께는 어떤 카드를 드릴까 고민하다가^^맘에 드시나요?)

Hanna 2005-01-0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호밀밭님// 저 하울 봤어요. 12월31일날요. ^^ 우.. 분위기가 너무 좋던걸요. 곧 정리해서 리뷰를 올리도록 할께요. 그런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될지..^^; 이야기하다보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아요. 님, 저도 곧 님 서재에 놀러갈께요. 연초에는 컴퓨터를 못 썼어요. 님도 즐거운 한 해 되시길 바래요!

Nanni님// 저랑 닉네임이 nn이 두번 들어가고, 알파벳 5개가 쓰여서 왠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 이규원의 가정음악 듣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를 때가 있어요. 왠지 마음이 여유로워지거든요. 카드도 너무 멋지네요. 테두리 금장이 환~한 느낌이에요. 앞으로도 님의 멋진 사진들과 듣기 좋은 Jazz 기대할께요. ^^ A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