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제 내 공간이 없다.
방이 4개나 되는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나는 주로 거실이라는 공용 공간이 머문다.
책을 읽거나 일을 하는 공간도 식탁 위다.
어린 시절 시몬느 드 보봐르의 책을 읽으며 나는 꼭 나만의 방을 갖고 싶다고 마음 먹었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는 동안 여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마치 남자가 되어 여자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그런 느낌마저 들었다. 직장을 갖게 되고 돈을 벌면 꼭 나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 나는 식탁 위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키보드를 두드리면 가상의 내 서재가 열린다.
알라딘이라는 마법 램프의 이름을 가진 온라인 서점에 내 서재가 있다.
내가 구매한 책들도 들여놓을 수 있고, 쓴 글들도 올릴 수 있다.
이 곳은 나만의 공간이다.
나의 취향대로 책을 고르고, 생각을 쓰고, 잠시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현실에서는 왜 이렇게 자기관리가 안되냐고...체중 좀 줄일 수 없냐고...프로는 달라야 한다고...체중을 줄이는 건 그건 자제력의 문제라고...언짢은 표정으로 말하는 상사와 가족을 이곳에서는 만나지 않아도 된다. 스트레스 풀 수 있는 방법이 유일하게 단 것을 먹는 것 뿐이라 도저히 체중감량이 안된다고 구차하게 화를 내며 말하는 내 모습을 더는 만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다.
역시나 달디 단 과자나 탄산 음료를 먹으며 넷플릭스 로맨틱 드라마(최근에는 중드 경경일상을 매우 재미있게 보고 있으며, 드라마 남주 윤쟁이 어찌나 마음에 드는지 다시 스무살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음)를 먹는 널부러진 아줌마가 아니라 책도 좀 읽고, 글도 좀 쓰는 나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가상의 서재에 들어오면 나는 내가 상상하는 내가 되는 것 같다.
김애란은 어느 소설에서 '시시한 하루가 모여서 삶이 된다'라고 일갈하였다.
스무살의 나는 또 서른 살의 나는 절대 이런 마흔 살의 나를 원하지 않았다.
먹는 것 외에 나를 위로해주는 것이 없는 삶이 내게 오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구취에 내 숨이 막힐 것 같은 이런 말도 안되는 일상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겠는가...
멋있는 삶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것 같은 지금의 나는
온갖 질투와 자격지심으로 뒤틀려 있는 상태다.
뇌종양 판정을 받았지만 살고 싶지 않아서 수술을 미뤘다는 유명 가수의 말을 나는 이해한다.
오늘이 내가 살아갈 날들 중 가장 건강하고 이쁜 날이라면....더 살아 무엇하겠나 싶은 것이다.
그래도 가족을 위한 책무는 다 해야하므로 정년까지는(아직도 20년은 더 근무해야 하는데...) 무탈하게 월급 잘 받으면서 학교 다니고 싶다.
그리고 매일 이렇게 가상의 서재에 조금씩 머물면서 저물어가는 내 삶의 노을지는 풍경을 아름답게 수놓고 싶다. 노을처럼 그렇게 나의 존재를 하늘에 알리고 사라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