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다. 나는 그의 소설과 수필을 읽는 동안 나쓰메 소세키가 현생한 인물이라는 상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느낌이 비슷하다. 오에 겐자부로는 정치적으로도 소신 발언을 하여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큼 우익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었다. 한 때 그의 집 앞에는 한 무리의 보수우익이 날마다 출동해 고성방가를 해대는 통에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문장을 읽기도 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아들 히카시는 정신지체다. 그러나 그와 그의 아내는 히카시를 훌륭히 키워냈고, 결국 히카리는 나름대로 완전한 삶을 살게 되었다.
이 소설은 내가 문예 계간지 '문학동네'를 무려 10년 동안 계속 구독하겠다는 정기구독권을 구입했기 때문에 문학동네 출판사로부터 일종의 답례로 받은 사은품이다. 뭘 고르라고 전화가 왔는데 그 당시 만사가 귀찮은 시기였으므로 세계문학전집 1권부터 시작해서 가격에 맞게끔 골라주시라고 성의없이 대답했다. 출판사 직원은 그런 나의 태도를 무척 테나게 반가워하며 알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따. 때에 따라선 성의없음이 미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책이다.
2007년에 쓰여진 이 소설은 논픽션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픽션이다. 이걸 뭐라 불러야 할런지....왜 이 원고를 세계문학전집의 일부로 편성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처칠의 수상록도 뭐 문학전집에서 찾아볼 수 없진 않으니 전무후무한 일은 아니겠지만서도 난감하기 짝이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오에 겐자부로와 사쿠라 그리고 고모라다. 히카리(겐자부로의 아들)와 치카시(겐자부로의 아내)도 나오긴 나온다. 완전한 사실들로 가득찬 허구다. 나이든 오에는 히카리와 함께 운동을 다닌다. 그 때 노쇠한 영화감독 고모라가 나타나 이야기는 30년 전으로 돌아간다. 30년 전 사쿠라가 매력적인 젊은 여배우이던 시절 오에가 시나리오를 쓰고 고모라가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려고 했지만 필립이라는 사진작가가 일본 여학생들의 나체를 찍어 불법으로 포르노 사진집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무산된 그 이야기의 전말이 밝혀진다. 그 과정에서 전쟁고아였던 사쿠라가 미군 장교 데이비드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한 이야기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표면적으로는 주변사람들과 치유해가는 어쩌고저쩌고 해놓았는데 나는 읽는 내내 치유라는 단어를 전혀 정말 단 한 번도 떠올릴 수 없었다. 이건 전쟁이라는 역사적 비극이 낳은 헤프닝의 하나다.
오에 겐자부로의 새로운 시도가 성공할지 어떨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우리나라에서 동종 업계 최고라 할 수 있는 출판사에서 문학전집으로 편성해줬으니 뭐 할 말 없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참 김지하 이야기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