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뭔지 모르겠는 날들이 수 년째 계속되고 있다. 거기서 거기인 자기계발서들에 빠져 '그래! 나도 멋지게 폼나게 살아보는거야!'라는 주문을 외우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며 매일을 견뎌왔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기엔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지나치게 달콤했다. 나는 남들보다 많은 생각을 했고, 고민을 했으며, 노력을 했다. 적법하지 않은 방법들을 써야하나 정도를 걸어야하나 고민을 하느라 팔자에도 없는 편두통이 생겨 지난고난 고생중이다. 지금도 오른쪽 뒷 머리가 쇠 못에 박히는 듯 20분 간격으로 고통이 있다. 오른쪽 얼굴에 마비 증상이 있어서 말할 때 조금 불편하다. 무엇보다 머리가 항상 흐리멍텅하다. 그럼에도 나는 늘 해야할 일이 있고, 고민해야 할 것이 있으며, 아이들을 돌봐야만 한다. 내가 선택한 일들이기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오랜만에 김소진의 소설을 꺼내들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큰 제목이 붙은 이 소설집은 그가 세상에 작가로 등장하게 만들어준 첫 소설 '쥐 잡기'가 나온다. 멋진 소설이다. 살아있었더라면 김 훈 작가 못지 않은 필력을 자랑했었을텐데 아쉽다. 팩으로된 소주를 주머니에 넣고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는데 그 샌님같은 얼굴에 어찌 그런 행동이 어울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내가 만약 그 분을 가까이서 뵈었다면 좋아라했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입으로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진정한 삶이니 운운하면서 단돈 몇 만원을 위해 글을 쓰고, 그 돈으로 두 딸의 옷을 사거나 책을 사거나 그도 아니면 전기세나 우유값 계산할 궁리를 하고 있으니 이거 참 슬픈 일이다.  

김소진은 1995년 전업작가로 정식 데뷔하고 1997년에 세상을 등진다. 소설가 함정임과의 사이에 아들이 있다. 김제 출신의 소설가인 함정임은 당대 가장 서구적이며 세련된 소설을 쓰던 여인이었다. 그러나 김소진은 향토색 짙은 소설을 썼고, 더군다나 사상을 다룬 운동권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는 개념있는 소설을 주로 썼다. 어떻게 그 둘 사이에 애틋한 감정이 생겨났었는지....함정임씨는 지금 동아대학교 문예창작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라는데 그녀는 김제 출신이다. 1988년에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인재였다. 멋지네...이화여대 불문과..서울대 영문학과...동아일보 신춘문예...경향일보 신춘문예...그녀의 일생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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