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몸살이 난 것 같았지만 종합감기 약 두 알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딱히 앓아누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평소대로 아이들과 놀고, 책도 보고, 청소도 좀 했다. 남편은 여전히 화를 많이 내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우리 가정의 화목을 깨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늘 긴장을 늦출 수 없는지 간헐적으로 적당한 정도의 화를 내곤했다.

6월 6일은 현충일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겐 오래전부터 보성으로 여행을 가야하는 날로 각인되어 있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같은 공간에 사는 이들은 정기적으로 이렇게 여행을 떠나줘야 당분간의 안녕을 담보할 수 있다. 이것은 진리다. 유민이와 유현이는 아침마다 세수도 하지 않고 어린이집을 가는 습관 그대로 집을 나섰다. 심지어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내복 차림이었다. 실제 이 옷차림은 미관상 상당히 좋지 못했지만 땀을 흡수해주는 동시에 시원함도 유지해주는 매우 편리한 복장에 속했다. 나는 엄마였지만 아이들의 복지와 미적 추구욕구에는 상당히 무지했기 때문에 나는 그저 그들이 울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솔직히 나는 오늘 여행에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오히려 집에서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3분의 1 정도가 남아있었고, 나는 그 소설의 매력에 흠뻑 젖어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여행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고, 가정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엄마라는 이름의 사람이 단순히 책 한 권 때문에(그 책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한 달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가족 여행을 무심히 파기한다는 것이 어쩐지 하루아침에 말도 없이 사직서를 내고 치킨집 낼 자리를 알아보는 가장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만히 짐을 쌌다. 그리고 내 인생은 완전히 변했다.

 

처음 도착한 보성은 듣던대로 사람들이 많았고, 온통 초록색이었다. 한창인 시절은 지났는지 듬성듬성 죽은 차 나무들이 쓸쓸해보였다. 그 위나 옆 라인의 차 잎이 윤택나는 녹색일수록 더더욱 늙은 노인의 듬성한 속머리 같게 여겨져서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하리. 이미 그 차 나무들은 생을 마감한 후라는 것을...그들은 맘 편히 죽어있는 상태이지만 오로지 남아있는 사람들의 애간장만 몹쓸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그건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것을....

이리저리 배경이 좋은 곳을 찾아 기념사진을 찍고 중간도 올라가지 않은 지점에서 다시 내려왔다. 아이들이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첫째 딸 유민이는 철이 일찍 들었는지 여간해선 불평불만이 없는 아이가 되었다. 그 아이가 가장 불만일 때는 자기가 노래를 부르는데 박수를 쳐주지 않는다거나 핑크색 풍선을 파는 곳 앞을 무심히 지나치는 부모를 발견할 때이다. 그 이외에는 별다른 불만 없이 크고 있다. 심지어 유치원 친구들은 모두 초록색 반티셔츠를 입었는데 본인만 하얀색 셔츠와 프릴달린 발레 치마를 입고 타이즈를 신고 갔을 때에도 그렇게 크게 불만을 표현하진 않았다.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박수없는 본인의 노래와 무심히 지나치는 핑크색 풍선은 살아가면서 겪어서는 안되는 일 중 하나에 속함이 분명했다. 그 아이는 소신이 강하다.

유현이는 아침부터 옷도 못입히게 하고 본인의 양말은 본인이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 친정엄마와 나 그리고 남편을 당황하게 만들더니 끝까지 그 추노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성깔을 보여주고 말았다. 머리카락에 손도 못대게 한 것이다. 어젯밤 자던 머리 그대로 돌아다녔으니 그것도 내복 차림에....사람들이 그 아이를 마치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를 보듯이 보는 것 같아 여간 민망한게 아니었다. 뭐 아무리 자격미달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아이의 엄마였다. 엄마....엄마는 자신의 자녀가 그런 시선을 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뭐라도 해야하는 것이다. 그것이 본능일텐데 나는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같이 웃었다. 어머...우리 유현이 추노같네...하면서....그러니 사랑하는 나의 남편이 나더러 엄마 맞냐는 눈치를 가끔 주는 것이다. 친정 엄마는 아주 대놓고 계모라고 말하기도 한다. 억울한 것은 나는 다만 익숙하지 않을뿐이지 악의를 가지고 내 두 딸을 대하지는 않다는 것을 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하긴 뭐...익숙하지 않은 것도 죄긴 죄다. 엄마라는 역할에서는 말이다. 성형외과 의사가 쌍꺼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메스를 잡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끔찍도 하여라. 그녀의 쌍꺼풀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입장권을 파는 보성 녹차밭은 입장료가 아깝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도 아니었다. 기대는 금물...매표소 옆 2층 건물에서 밥을 먹었다. 녹차 칼국수는 집에서 만든 것처럼 맛이 개운했고, 녹차 돈가스는 유민이가 혼자 절반 이상 먹을만큼 맛이 괜찮았다. 중3처럼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조금 안타까운 것 빼고는 괜찮은 음식점이었다. 요즘 유현이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의 손과 얼굴을 이빨로 자주 물어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선생님들의 마음에 신경이 쓰였다. 사람은 마음이 먼저고 행동은 다음이다. 유현이가 미운털이 박히기 시작하면 이건 보고말것도 없이 끝장 중의 끝장이다. 막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녹차 젤리라도 있으면 몇 개 사들려보낼 참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녹차 젤리는 만들지 않는단다. 대신 녹차 아이스크림을 여기저기서 많이 팔았는데 그걸 들고 어찌 전주까지 가겠는가? 그냥 우리들이 먹었다. 역시 맛은 일품이었다. 살살 녹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유현이의 사나운 이빨이 잠잠해지기를 기도하는 수 밖에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남편도 아마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보성 녹차밭을 빠져나와 낙안 읍성으로 가는 길에 '태백산맥 문학관'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보았다. 이미 두 딸은 잠든 뒤였다. 태백산맥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읽어야 할 책이다. 역사소설로는 으뜸이며, 문학 작품으로서도 으뜸이다. 나는 태백산맥으로 유현이 태교를 했다. 걸쭉한 욕 때문에 흠칫 놀랄 때도 있었지만 따지고보면 욕도 언어다.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상대방을 위협하며 자신을 방어할 목적이 다분하다는 것 뿐 그것도 언어다. 모든 언어는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다. 결론은 그런 언어가 태교에 별다른 영향을 미친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순전히 나의 문학적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 길에 나는 운명적으로 조정래 작가를 만나게 된다. 조정래 작가를 만나뵙고 나는 무례를 범했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고, 나의 책을 선물해드렸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싶게 상황은 빠르게 돌아갔다. 그 분은 대작가였지만 차에서 내리지도 않는 내게 이름도 물어봐주고 싸인도 해주셨다.그리고 내 책도 받아주셨다. 덕담까지 해주셨는데 인사는 하지 않으셨다. 나는 지금도 자살하고 싶을만큼 부끄러워 미치겠다. 만약 죽는다면 이런 수치심도 느껴지지 않을테니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 책을 건네는 미친 짓은 또 왜 한 것인가? 나의 이 엉뚱함은 결국 나를 파멸로 이끌지도 모르겠다. 자중을 모른다. 이놈의 인생은...당최 신중함도 모른다. 이놈의 인생은....되는대로 본없이 살아온 인생이어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좀 잔잔한 물가처럼 살면 안될까 싶다. 내 두 딸은 잔잔한 호수처럼 맑고 깊게 살아야할텐데....

조정래 선생님의 싸인은 가보로 두고 나는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대작가를 죽기 전에 뵈었으니 당연히 그래야하지 싶다. 소설 창작론은 김민권 선생님이나 신미영 선생님께 배우면 되고 나머지 것들은 책을 읽고 배우면 된다. 그리고 나는 신경숙 선생님처럼 가족 이야기를 주로 쓰는 작가가 되고 싶으니 그녀의 소설을 필사해야겠다. 당장 내일부터말이다. 배껴쓰면 뭐가 좀 보이겠지. 그리고 일단 그녀의 소설을 좀 다 한 권씩 사야겠다. 그래야 베껴쓰지...

태백산맥 문학관은 수치심 때문에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조정래 선생님은 오늘 나의 무례를 어찌 기억하실까? 아니...기억도 못하시겠지 아마...그나저나 김 훈 선생님은 뵐 수나 있으련지...음...또 만나자마자 말도 더듬고, 미친듯이 눈알을 굴리고, 침을 튀기며 글을 아니 책을 아니 작품을 잘 읽었다고 횡설수설하겠지...아이구야...말자 말어.

나는 오늘 결심한 것이 내가 조정래 선생님을 보고 느낀 그 감정을 누군가 나를 보며 느낄 수 있도록 나를 만들어나가자였다. 이건 정말 대단히 중요한 결심이고, 절대 변해서는 안되는 결심이다. 나는 소설가 아주 훌륭하고 유명한 소설가가 될 것이다. 소설을 써야겠다.

낙안읍성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옛 읍성 모습이 그런대로 잘 복원되어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마치 영화배우 같았다.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들은 우리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일상을 살아갔다. 그 점이 인상적이었다. 일상과 여행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공간이었다. 어쨌뜬 나는 여행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 마음이다.

꽤 많이 걸었다. 모두들 지쳐있었지만 행복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은 그래야하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특별한 존재는 온 우주를 통틀어 가장 필요하고, 쓸모있으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을 잃는다하더라도 가족이 있으면 그 삶은 모두 잃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따위의 말은 좀 안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유민이와 유현이는 성인이 되면 아마 이번 여행 역시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2011년 현충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날이며 적어도 10년은 이 목표를 위해 뭐든 해낼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일해나가면 아주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일단 쓰자. 나는 쓰기로 마음 먹었고 지금 이 글도 쓰고 있다. 나는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소설 쓰는 사람....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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