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아, 오랜만에 목욕을 시켜주었더니 곤히 잠들었구나. 어제는 외활머니와 아빠 모두 여행을 가는 바람에 외삼촌과 엄마와 함께 있어야만 했지. 외삼촌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네 외삼촌은 요즘 취직 준비 때문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쁜데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닐텐데도 유민이 유현이 두 조카 일이라면 두말않고 금새 달려오는 아주 자상한 외삼촌이란다. 아직 네가 어려서 잘 모르고 기억도 안날테니 나중에 이 글을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해줄게. 공교롭게 네 외삼촌은 엊그제 허리가 심하게 다쳐서 운신이 불편할 정도의 최악의 컨디션이었어. 그래서 그랬는지 너와의 사소한 다툼도 있었지. 중간에서 엄마가 서로 화해시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이젠 너도 생각이 또렷해지고, 소신이 있어지는 때라 한 번 억울하다 마음먹은 일을 그게 아니라고 설득하는 과정이 엄마는 너무나도 힘들구나. 

어제는 무슨 일 때문에 네 외삼촌과 다퉜냐면 글쎄...어린이집에서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버튼을 유민이가 눌러야하는데 외삼촌이 그것도 모르고 먼저 눌러버린거야. 외삼촌 딴에는 유민이를 편하게 해주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아직 어려서 키가 안 닿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삼촌이 한 발 먼저 누르게 되었어. 그 때부터 울기 시작하더니 '유민이가 눌러야하는데 삼촌 미워...' 레퍼토리가 이어졌지. 삼촌이 아무리 사과해도 절대 안받아주는 유민이 때문에 모두들 좌불안석이었어. 사실 유민아...그게 그렇게 잘못한 일은 아니잖아..그치?^^; 

결국 화해 모드로 돌아오긴 했지만 다음부터는 설사 많이 화가 나더라도 가족에게는 그렇게 오랫동안 토라져 있지 않았으면 해. 왜냐하면 우리는 가족이니까.... 

오늘 아침엔 네가 많이 피곤했던지 늦잠을 자더라. 미안한 이야기지만 엄마는 매일매일 일을 하러 나가야하잖아. 오늘도 아침 일찍 나가야했는데 유현이는 벌써부터 깨서 옹알옹알거리고 우유도 한 팩 마신 뒤로 기분이 좋았었는데 우리 유민이는 밍기적밍기적 대기만 할 뿐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아서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몰라. 아마 유민이는 모를거야...아니다...나중에 유민이가 엄마가 되면 지금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지도 모르지. 유민이를 편히 더 재우고 싶기도 하고, 돈을 벌러 나가야하기도 하는 엄마의 가슴아픈 이 상황을 말이야.  다행히 오늘은 외삼촌이 별다른 일정이 없다고 하길래 너를 부탁한 뒤 유현이만 데리고 나왔단다. 나중에 삼촌과 통화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옷에다 또 오줌을 쌌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많이 되었어. 네 나이 정도 되었을 때 오줌을 자주 싼다는 것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퇴행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거든. 아니면 누군가에게 심한 압박을 느껴서 그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무의식이 너의 행동을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야. 그게 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너를 힘들게 하는 당사자가 나 인것 같아서 정말이지 마음이 무겁구나. 둘째 유현이에게 우선 순위가 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너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부딪히는 때도 많아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아.  앞으론 엄마가 더 조심할게. 

"누나, 유민이가 사타구니 쪽을 긁어서 봤는데 도대체 목욕을 언제 시키고 안시킨거야?" 

외삼촌이 엄마에게 타박하던 말 중 일부야. 유난히 열감기에 잘 걸리는 너희 자매를 목욕 한 번 시키는 일이 엄마에게 참으로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어. 운이 없다라고 치부하기엔 결연성이 큰 너희들 목욕하는 날과 감기 걸리는 날의 일치는 엄마에게 용기를 잃게 했단다. 아픈 것보다는 더러운 것이 낫다는 말도 안되는 자기 암시를 하며 너희들 목욕을 미루고 또 미루기만 했지. 그런데 외삼촌이 진심으로 나무라는 것을 보고 오늘은 꼭 집에서 시켜야겠다 마음 먹고 집에 오자마자 욕조부터 닦기 시작했어. 한참을 닦고 유현이를 먼저 씻기고, 유민이 너를 씻겼지. 엄마랑 같이 씼으니 기분도 훨씬 좋고, 대화도 나눌 수 있어서 좋더라. 엄마는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후회스럽기도 하고 말이야. 어제만해도 잘 때 유현이 잠투정이 심해서 엄마가 고생을 많이 했는데 오늘은 새근새근 잠도 잘 자네. 목욕의 힘인가봐... 외삼촌에게 고마워할 일이 또 하나 늘었다. 유민아. 휴~ 

엄마가 학교 다닐 때 외활머니가 머리도 안감겨주고, 옷도 대충 입혀주고 등등 엄마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학교를 오고가는지 전혀 신경을 써주시지 않는게 서운할 때가 많았어. 준비물도 뭐 물론 엄마가 챙겨야했지. 그런게 너무 싫었는데 이제는 우리 유민이를 엄마가 그렇게 키우고 있네. 이래서는 안되는데 말이야. 조심할게. 약속해. 

엄마는 내일도 또 일하러 나가야해. 열심히 일을 해도 별로 살림이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서 신기하기만한데 그래도 유민이에게 기쁨을 주고, 유현이도 행복하게 하고, 엄마 꿈도 이루기 위해서 지금 열심히 일해야지. 그래야 유민이가 꿈에도 소원인 발레 학원도 다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엄마가 한 번 알아보니까 발레 학원만 다닌다고 다 되는게 아니라 옷도 사야하고 슈즈도 사야하고 뭐 그렇다고해..돈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지. 그래서 엄마가 좀 힘들긴 하지만 돈을 더 열심히 벌려고...사람들이 흘겨보며 좋지 않은 이야기 해도 엄마는 괜찮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유민유현이 엄마니까... 

잘자고 내일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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