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을 읽고




책에서도 나오듯이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제인 오스틴은 ‘센스 앤 센서빌리티’라는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내가 중3인 때였다. 평범한 나의 외모에 얼마간은 절망하며, 그러나 공부를 잘해 명문대에 진학하거나 아니면 돈 잘버는 소위 잘나가는 직업이라도 갖게 되면 좀 괜찮은 남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매우 현실적인 목적을 가지고서 좀 쓸쓸하게 공부하던 때였다. 서른이 넘은 지금은 그 때 그렇게 굳게 믿었던 헛된 꿈들을 떠올리며 그저 허허 웃을 수 밖에 없지만 그 당시엔 유일한 희망이자 삶의 이유였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만난 제인 오스틴은 나에게 ‘아름다움’과 ‘사랑’ 그리고 정말 이색적인 단어인 ‘우아함’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다. 고작 중3일 뿐인 아이에게 우아함이라니....연합고사를 준비하는 우리나라 입시생들에게 우아함이라니....

 그녀의 글은 영국적인 고풍스러움을 담고 있다. 그녀가 그려낸 사랑도 매우 격조있고, 애절하고 무엇보다 진실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그녀는 그녀가 글 속에 그려낸 것과 같이 우아한 사랑을 꿈꾸었기에 혼자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앨리너와 에드워드의 사랑, 메리엔과 크리스토퍼의 사랑, 그리고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을 그녀는 꿈꾸었단 말인가? 그런 사랑...과연 있을까?




아무래도 제인 오스틴은 베넷가의 둘째딸 엘리자베스를 가장 이상적인 여인으로 여긴듯하다. 엘리자베스는 평소 왕성한 독서를 통해 지적인 여성으로 성장하게 된다. 사리판단을 잘 할 줄 알며, 문학을 사랑하는 그녀는 매우 강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런 그녀는 부유한 청년 다아시의 낯을 가리는 행동과 날카로운 언행 등을 불친절하고 차가운 사람이라고 오해하여 하마터면 그와의 진실한 사랑을 놓칠뻔하였다. 다아시 역시 남자들 특유의, 특히 집안 좋고 부유하게 자란 남자들 특유의 오만함을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게 비추게 되어 그 역시 다시없을 진실한 사랑을 잡지 못할 뻔 하였다. 사랑을 시작할 때 남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만’과 여자들이 본인 스스로는 깨기 힘든 ‘편견’들에 대해 여성 작가다운 세심한 시선으로 잘 표현해낸 책인 듯 하다. 이 책은 제인과 빙글리의 사랑에서도 오만과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제인은 가난한 베넷가의 첫째 딸로서 다섯 딸 중 가장 아름답고 교양있다. 그래서 미세스 베넷의 자랑이기도 하다. 제인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게 표현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런 그녀가 무도회장에서 빙글리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자신에게 청혼을 하기엔 너무 돈이 많은 빙글 리가 떠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견이다. 그리고 여자인 자신이 먼저 다가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만이다. 그 당시 사회분위기상 여자가 먼저 나서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우리 명랑하고, 행복한 사고뭉치 리디아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매사 긍정적인 리디아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베넷가의 넷째 딸이다. 마을에 잠시 머물던 군인과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를 감행한 그녀는 결국 그가 그녀의 돈을 노리고 접근해 온 것을 알지만 상처받지않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철없다, 대책없다, 개념없다 라는 말 등은 이런 경우에 쓰라고 만든 말인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적어도 오만하지 않았다. 여자는, 특히 아름다운 여자는 남자가 먼저 다가와 청혼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자기 자신이 먼저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편견도 버리고자 했다. 리디아 역시 가난한 베넷가의 넷째 딸이었지만 ‘너만 있으면 돼’라는 남자의 말을 믿고 떠났다. 의심이 없었던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리디아의 문제적 행동에 혀를 끌끌 차는 분들이 많을 것이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그녀와 같이 사랑의 순수함에 초점을 맞추며 사랑을 나누는 이도 없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가 유행할만큼 수많은 이십대들이 취업난과 생활고라는 현실적 장벽에 부딪힌 요즘은 더더욱 ‘리디아적인 사랑’을 꿈꿀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에서 나는 대책없이 사랑만한 리디아에게도 계속 그렇게 행복하게 웃으며 살아가기를 빈다고 말해주고 싶다.

 오만했던 다아시는 자신이 먼저 다가감으로서 엘리자베스의 편견을 바로 잡아주었다. 무뚝뚝하고 관심없는 듯한 태도만 보고 다아시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을 뿐더라 무례하다고까지 여겼던 엘리자베스는 그것은 단지 그의 생래적인 성격일 뿐이라는 점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가식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는 다아시라는 사람이 ‘사랑한다’라고 말했을 때에는 정말 이 세상에 둘도 없이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편견이...그토록 두 눈을 가리었던 편견이 사라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이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사랑에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을 우리에게 간곡히 이야기해주고 있는 듯 하다. 살아오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풀려져 있던 ‘나’를 버리고, 상대방의 감춰진 아름다움을 찾아가라고 나지막히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서른의 산을 넘었다. 안심이다. 불안하기만 했던 이십대는 언제 폭풍우가 불어올지 모를 망망대해에 떠있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두서너번 고약한 폭풍을 만나 죽음의 목전까지 가기도 했었다. 지지부진한 사랑은 사랑도 아닌 것 같았고, 잠깐 겪었던 소설같았던 사랑은 삼류였다. 이대로 살다간 매미 한 마리만도 못하게 살다 죽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 폭풍의 원인은 바로 나에게 있었다. 주변에서는 그리로 가지 말라고...거기는 반드시 폭풍이 올거니까 가만 안된다고 말려도 그 곳만을 고집하던 나의 오만이 거대한 폭우 속으로 내 삶을 끌어갔다. 너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니 혹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사람이니 인연을 맺어보라고 내 운명이 자꾸 손짓하는데도 나는 ‘아니야’를 외치며 한사코 피하기만 했던 사람들...그리고 나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고 따르던 사람들의 배신....그 모든 것들 속에 숨겨져 있던 오해와 편견들...사실 그것들이 있었기에 나는 세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고, 어른스럽게 변화될 수 있었다. 한 고비를 넘겨야 다른 고비가 올 때까지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법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제인과 빙글리씨는 아마도 알콩달콩 그렇게 아름답게 사랑하며 살아갔겠지? 다아시에 엘리자베스는 서로의 매력을 평생토록 발견하고 또 발견하며 사랑했을 것이다. 다아시와 같이 가식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남자의 경우 자신의 여자를 위해 뭐든 다 해줄 수 있을테니까...우리 철없는 어린 신부는 어떻게 살았을까? 좀 고생은 하겠지만 그때마다 유쾌하게 넘길 것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든다. 메리와 키티는 누굴 만나 결혼했을까?

 베넷가의 다섯 딸들이 마치 내 친척 언니와 동생처럼 가깝게 여겨지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이 책을 굉장히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세 번을 보았고, 무엇보다 제인 오스틴의 삶에 깊은 연민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누굴 만나든 어떻게 사랑하든 오만과 편견없이 나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면 반드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는 이 이야기의 핵심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이 글을 마무리 한다. 사랑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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