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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 4학년 시절 이 책을 처음 만났다. 그 당시 나는 참으로 딱히 할 일이 없는 딱한 대학교 졸업반이었기 때문에 온종일 시간의 흐름에 기대여 방바닥을 부벼대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참으로 딱한 처자였다. 나는 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아시다시피 교대는 특수목적대학이다. 특수한 목적을 갖고 입학했기 때문에 그 목적에 부합하는 직업을 갖지 못하면 사람구실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어떤 회사에서 교육대학을 졸업한 인재(?)를 눈여겨 볼 것이며, 채용해 줄 것인가? 따라서 교대출신은 목숨걸고 임용고시를 봐야하고 또 합격해만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명퇴바람이 불던 그 다음다음해에 임용을 봤다. 호레이! 를 외쳐야 할 판이었다. 요즘 졸업하는 후배들을 보면 '정말 쟤가 떨어졌을까?'싶을만큼 총명해뵈는 애들이 주루룩 낙방이다. 서울로 임용을 친 것도 아닌데 떨어졌단다. 사실 욕심이 있어(결혼이든 뭐든) 서울이나 경기도로 시험 본 애들은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재수도 더러 하나본데 요즘은 전북을 쳐도 많이 떨어진다니 나는 그야말로 운빨 겁나 좋은 케이스에 속한다. (교회 다니길 잘했어 정말 ㅡ.ㅡ;;)
띵가띵가 하던 그 4학년 시절에 에릭 호퍼 양반을 처음 만났다. 누구든 사람이 시간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먹고사는데 지장없고, 왜 사는지 모르겠는데 책은 좀 읽은 치들은 띵가띵가 하다말고 문득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양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대로 살아가도 되는가?'류의 심오하고도 우스운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나도 그랬다.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왔다면 그 양반은 철학가일 가능성이 높지만 나처럼 되나깨나 살다가 어느 순간 '잘 살고 싶다'라거나 '제대로 살고싶다'라고 쇼생크의 탈출처럼 포효하게 되면 이거너 좀 우습다.어쨌든 그 우스운 짓을 자못 심각하게 받아들인 나는 몇몇 철학서를 읽게 되는데 그 중 한 권이 이것이다. 그 때와 지금 출판사가 다른데 제목도 달라졌다. 그때는 떠돌이 철학자의 노래였다. 제목에서 어렴풋이 느낄 수 있듯이 에릭 호퍼는 제도권에 속해 있지 않았다. 그는 다섯 살때 시력을 잃게 되는데 이는 가족력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열세살 무렵 어느날 갑자기 시력이 다시 찾아오고 그는 그때부터 미친듯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 언제 다시 또 장님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그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일을 해야했지만 책을 읽는 것 역시 먹고사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시간차를 두고 책 읽는 일과 돈 버는 일을 병행한다. 그의 경우처럼 돈과 책이 같은 선상에 있다면 인생은 얼마나 풍요로워지겠는가.....보르헤스는 말년에 시력을 점차 잃어가 결국 장님이 되는데 그는 장님이 되어서 더 많은 책을 썼다고 한다. 결국 장애는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그 불편한 정도가 결정되는 듯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릭호퍼는 오로지 책으로 모든 정보를 습득하고 마스터하였다. 그는 선천적으로 총명한 사람이었는지 어느 분야에 대해 책을 읽으면 대학 교수 못지 않은 전문적 지식을 쌓아 주변인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결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몹쓸 병충애가 돌아 농작물이 고사위기에 처해있을 때 결정적인 해결방법을 찾아 그 일대 농작물을 보호해 준 공이 인정되어 그는 대학 교수가 된다. 그는 살아생전에 시도 참 잘 썼다고 하는데 작품이 남아있지 않아 무척 아쉽다.
얼마전에 전주에 있는 모 대학에 가서 교수 임용 면접을 보았다. 여기서도 이 이야기를 하니까 뭐...내가 교수 못해 안달인사람처럼 여기는 분도 계시겠지만서도...어쨌든 대학교수 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절대 아닌데 얼마나 똑똑했으면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이 사람을 교수로 임용하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책을 읽고 실력을 쌓아가야겠다는 다짐도하게된다. 언젠가 나를 눈여겨 봐줄 그 누군가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