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 

장성렬 교감 선생님께 

 

네루다의 시집을 꺼내 다시 읽어봅니다.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시라는 다소 긴 제목이 붙은 이 시집은 발표되자마자 칠레는 물론이며 남미 전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집 중 하나가 됩니다. 우리 말로 번역된 시가 이 정도의 감동을 주는 것이라면 원문으로 읽었을 때 얼마나 더 큰 감동이 될까  짐작해봅니다.기회가 된다면 스페인어를 익혀 네루다의 시를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꾸고 있는 꿈 중 하나입니다. 

교감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시기는 제가 5년차 되는 교사로서 가장 힘겨운 일들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던 반 아이들을 데리고 공개수업을 하게 되었었지요. 수업 내용에 대한 것보다 학생 생활 지도에 관한 것들을 상담해주시고 조언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허술하기 짝이 없었을 제 지도안을 보시고도 별 말씀이 없으셨고, 시종일관 제 상황을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진심으로 염려해주셨었고, 딱히 당신이 나서서 도와줄 방법이 없음을 안타까워하셨었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큰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네루다의 이야기로 편지를 시작하였는데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교감 선생님께서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당신이 나고자란 고향 장수를 지키며 시를 써나가는 교감 선생님을 떠올릴때마다 저도 언젠가 제대로 된 시를 쓰게 된다면 나의 고향 전주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됩니다. 네루다는 다섯살 무렵부터 시를 쓰고 열 세살에는 등단을 하게 되지요. 타고난 시인입니다. 그의 시는 아름답고, 우아하며, 감각적입니다. 읽는 이로하여금 가슴이 떨리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어디로든 달려가 크게 외치고픈 마음이 들게 만드는 좋은 시 들입니다. 좋은 시란 그래야 한다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네루다는 말년을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섬에서 보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무덤도 그의 집 앞 그 섬에 있지요. 언젠가 TV에서 네루다의 집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해가 뜨면 햇살이 그의 침실에 비쳐 저절로 눈이 떠지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창가 가득히 광활한 태평양이 펼쳐져있었고 파도는 끝없이 넘실거렸습니다. 살아움직이는 그림 같았고,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시가 써질 것 같은 숨막히는 아름다움이 느껴졌습니다. 네루다는 호사스럽게 살다 생을 마감한 듯 합니다. 적어도 시인으로서는 말이죠. 그는 시를 쓸 때 반드시 초록색 잉크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초록색 잉크로 쓰여진 그의 시들은 어떤 향기를 지니고 있었을까요? 

네루다는 정치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외교관으로 남미의 여러국가들을 두루 머물게 되지요.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이 되었지만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박애주의자인 아옌데가 대권 출마 의사를 밝히자 미련없이 그에게 후보자리를 내놓습니다. 아옌데의 됨됨이를 익히 알고 있던 그는 칠레를 너무 사랑해마지않는 순수한 도덕적 이상주의자 아옌데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칠레 국민들이 사랑받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지요. 칠레의 돌맹이 하나까지 소중히 여겼던 아옌데 대통령은 피노체트로부터 국민들을 지켜내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됩니다. 망명의 길을 택하지 않고 끝까지 순애보적인 칠레 국민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했던 아옌데는 네루다의 친구였습니다.  

교감 선생님을 떠올릴때면 네루다와 아옌데 두 사람이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시를 쓰며 고향을 지켜나가시는 그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시'라는 영화가 칸느에서 수상을 했다고 합니다. 두 딸이 너무 어려 아직 영화보러 나갈 여유는 없지만 언젠가 시간을 내서 꼭 한 번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용기를 내서 시를 써나가고 싶습니다. 시 쓰는 선생님이 되어 제 고향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교감 선생님처럼요... 

늘 건강하시기를... 

2010.7.23 

임실초 김주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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