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근 선생님께

방학은 잘 보내고 계신지요? 

한 달 남짓한 방학동안 두 주일은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시간에 학교에 도착해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나머지 한 주는 일직과 독서캠프 그리고 나머지 한 주는 어린이집이 방학한 탓으로 큰 아이와 온종일 함께 있을 듯합니다. 지난 학기를 되돌아보고 반성도 하고, 이런저런 나름의 생각도 해가며 다음 학기를 여유롭게 준비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을 듯 하네요. 제 생각에 선생님 역시 학기 중보다 더 바쁜 방학을 보내고 계실듯 한데 어떠신지요? 선생님을 필요로하는 곳이 많으니 그곳을 찾아 이리저리 많이 뛰어다니시겠지요?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은 평소 쉽게 잡을 수 없었던 인문학 관련 서적들이 비교적 많습니다. 저는 특이하게도(?) 여러종류의 책을 동시에 읽는 독특한 습관이 있는데요. 이런 저를 보고 대부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어떻게 다서여섯권이나 되는 책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느냐고 그게 가능하냐고 되묻곤하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간신히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단 이렇게 여러권의 책을 동시에 읽게 된 이유부터 말씀드릴게요. 저에게 주어져 있는 시간은 짧은데 읽고 싶은 책이 너무 여러권이라 도저히 한 권에만 집중할 수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입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는 일이 참 행복하기도 하지만 꼭 그만큼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정말 읽고 싶은 수많은 책중에서 몇 가지를 추려내야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읽고싶은 책을 원하는대로 모두 쌓아두고 시간의 흐름을 잊은채 그저 읽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을 쉴 수 없을만큼 기대가 되고 가슴이 떨립니다. 

정 민 교수의 '다산 지식 경영법', 박노자의'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 미란다 줄라이의 소설 '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사라지는 신문독자들' 이렇게 5권의 책을 약간의 시간차를 두며 읽고 있습니다. 아,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빼놓았군요.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를 아주 느린 속도로 정독하고 있는 중입니다. 언어철학과 분석철학의 대가로 불리우는 그는 생전에 '논리 철학 논고'라는 단 한 권의 책만을 집필하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그의 담론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아직 그의 이론이 정확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그림 이론'에 따르면 사랑이나 신 도덕 등은 그것을 나타내는 실상이 없기 때문에 뜻이 없으므로 그런 것들에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유사이래 지금껏 철학자들의 논의가 끝이 없는 것이고요. 알듯하면서도 잘 모르겠는게 그의 '논리 철학 논고'인듯합니다. 

혹시 아시나요?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손꼽히는 비트겐슈타인이 한 때 시골 초등학교의 교사였다는 사실을요. 유복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던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논리 철학 논고'를 완성하게 됩니다. 그 후 약 6년간 그의 고향인 빈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지요.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 통찰한 것을 토대로 이론을 더욱더 정립해나갑니다. 그가 초등학교 교사를 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한 줄기 빛이 제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제게 인사했습니다. 참 오랜만의 인사이고 반가운 미소였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꿈을 키우고 계신가요? 그 꿈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며 제 꿈....꼭 이루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2010.7.23  

임실초 김주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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