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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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가 일갈하였듯 '어떤 일을 오랫동안, 그것도 꽤 성공적으로 해온 사람에게 노하우를 묻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좌절하게 되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도 그랬다. 미에코가 열심히 준비하여 '과거 이 작품에서는 이렇게 하셨었잖아요...'혹은 '옛 인터뷰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었잖아요...'등으로 말했을 때 하루키는 '아...제가...그랬던가요?'라든가 '아..그랬다니 흥미롭군요' 식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오래 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작품은 작가보다 더 많은 것들을 말해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더라도....(이는 마치 엄마,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딸이지만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것과 비슷한 이치 아닐런지) 부모된 자가 자녀의 면면을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아..제가 부모였지요?라는 식의 반응이 요즘 말로 '힙스터'의 멋짐으로 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읽었다.

 제목도 참 다채롭지.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지혜를 뜻하는 부엉이다. 수리부엉이는 영명한 존재기도 하다. 황혼이라함은 곧 들이닥칠 밤을 암시하면서도 찬란했던 한 낮과 나른했던 오후의 찰짐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하루의 어느 때다. 수리부엉이가 황혼에 날아오른다는 것은 그래서 절묘한 타이밍과 선택받은 자들의 아우라 번짐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적어도 나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하루키 작품에 열광하는 것이 한 때 생각없이 유행을 좇는 이들로 치부된 적이 있었다. 90년대에 토이, 이승환, 김동률 등으로 대표되는 음악을 즐겨 듣는다는 이유만으로 뭔가 있어보인다 믿었던 이들...나도 아니었다고는 못하겠다. 실제 그런 음악들이 좋았기도 했지만 어쩐지 좋아해야만 할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도 아니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또래의 압력도 있었다. 이십 대 후반에 갑자기 '싸이'의 가사가 너무 좋아 싸이 음악을 무한 반복해서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마음에 두고 있던 어떤 이가 '설마 그 음악 네가 고른거야?'라고 정색하고 물어 무안했던 적이 있었다. 

 하루키는 과연 김동률일까 싸이일까..

 음...누군가는 뭘 그런 걸 고민해라고 말하며 당근 김동률 아니야?라고 하겠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과연 그럴까 싶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단숨에 읽으며 이 책들을(두 권이었으므로) 다시 한 번 읽을 날이 오겠군...이라는 생각을 했다. 읽기는 했으나 약 80% 내외의 이해도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하루키 본인도 자신의 소설에 대해 액 80~90% 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어쩐지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고, 그 선물로 인해 나는 또 용기를 내서 어려운 책들을 한 권두권 사고, 읽고, 꽂고를 반복할 수 있다는 힘을 받았다. 


 하루키는 그냥 글을 잘 쓰게 태어난 사람이다.

 하루키는 그냥 자기 관리도 잘 하면서 글도 잘 쓰게 태어난 사람이다.

 하루키는 그냥 일흔이 되는 나이까지도 마라톤을 하며 글도 잘 쓰게 태어난 사람이다. 

 하루키는 그냥 꾸준히 성실하게 글을 잘 쓰게 태어난 사람이어서 소설가가 된 것이었다.


 약간 배두나를 닮지 않았나 싶은 가와카미 미에코는 하루키가 인터뷰를 흔쾌히 허락했을만큼 영민하고 매력적인 소설가이자 인터뷰어다. 그녀의 작품 세계도 기대해본다. 혹은 평론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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