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듣고 있다. 누군가를 닮았다. .이동진보다 한 두살 누나인 이다혜는 이동진 못지 않은 달변가에 책 마니아다. 심지어 작가이고 여행 전문가 수준이다. 알쓸신잡의 인문학 버전은 빨간책방이라고 생각한다. 김중혁 소설가의 뭔가....뭔가....뭔가 어설프지만 기승전 문학으로 섭렵되는 말투는 신의 한 수라고 여겨진다. (가끔 이동진은 왜 빨간색을 고수하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radical이 지닌 고유의 상징성을 어느 정도 감안하더라도 이젠 버건디 정도의 연륜과 경험이 느껴진다)

 

이다혜의 책은 모두 읽어보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2차 저술서가 그렇듯 원작에 대한 소견은 그리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잔가지도 많아서 뭔가 뭔지 헷갈릴 때가 많다. 최근 유명세를 타는 작가들이 여기저기 기고한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내며 독자들의 양해를 자꾸 구하는데 실은 양해구할 일은 정말 불가피한 사정(출판사와 책을 내기로 계약을 했는데 만약 원고를 안쓰면 소송을 당할 위기라든지...배우자에게 원고를 쓰러 다닌다면 5-6년 동안 자유인 포지션으로 이런저런 국내외 곳을 여행했다든지...)이 아니면 안하는 게 맞다. 자꾸 양해를 구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일은 줄 수 없고, 양해가 될만한 일만 고르고 골라서 주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책은 뭔가 내 양해를 구하는 책은 아닌 것 같았다.

이다혜 작가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독특한 구석은 있으되 본질을 직시하는 것과는 거리를 두려하는(만약에 본질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름의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했다. 실은 절반 넘게 읽으면서 도대체 왜 이 책의 표제가 '페미니즘'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사는 이야기였기 때문이고, 여자로서 살아가는 일상을 그린 글로 읽혀졌기 때문이다. 이말인즉슨 이다혜는 그냥 이다혜로 읽혀지지 여자 이다혜로 읽히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동진은 남성성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김중혁은 그냥 김중혁이다. 물론 내가 상대가 남성이다라고 판단할 때 세워지는 여러 가지 기준이 왜곡되거나 편중될 수도 있겠지만 그저 '인간', '사람'으로 여겨지는 존재가 있는 반면 '남자' 혹은 '여자'로 여겨지는 존재도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참말...

 

정여울 작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독자에 대한 호소 방법이나 매커니즘도 비슷했다.

이들은 서로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그냥 요런저런 공식적인 자리에 수백명 중 한 명으로 '아, 저 사람이 정여울이구나.' '아, 저 사람이 이다혜구나' 했을지도 모른다. 정여울 선생은 서울대를 나오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교수가 되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하다가 전업작가로 들어선 사람인 반면 이다혜 선생은 대학 졸업이후 잡지사에 취업하여 소위 그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배경이 상당히 다른데 문체와 스토리 라인이 얼추 비슷하게 흘러가는 걸 보면 타고난 천성이라는 것이 확실히 있는 듯 보인다.

 

외국어에 대한 그녀의 능력과 열정이 부러웠다.

가족에 대해 약간은 시크함을 유지하는 그녀의 멘탈이 나는 갖고 싶었다.

톨이또이의 죽음과 같이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나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 강해지는 요즘 이다혜 선생은 내가 안착해야 할 첫 번째 페미니스트 혹은 인간 멘토가 아닐런지...건투를 빈다. 누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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