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 물길시선 1
이면우 지음 / 북갤럽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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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 속에서 자주 발견되는, 가족에 대한 지칭들은 바로 '여편네'와 '아들놈'이다. 그 두 시어를 힘주어 읽을 때면, 힘겨운 노동의 일과 속에서 가족들을 떠올리고, 그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일상어로 읊고나서는 돌아와 이내 시로 옮겨적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시인이 어떤 식으로 얼마나 습작을 해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요즘 온갖 유행하는 현대시의 유행패턴에서 한 발짝 물러나온 곳에서 그의 시들이 쓰여지고 다듬어져온 것은 분명하다. 대표적으로 그의 시 '안개'를 읽다보면, '자식이 수만명쯤 되는 어머니가/ 아침 겸 점심 풀떼기 쑤는지 수제비 뜨는지/ 젖은 머릿수건 펼쳐 마을을/ 오래오래 가린다/' 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헤르만 헤세가 남겨준 안개에 대한 깊은 관념적 감상에 지쳐 있는 우리에게, 생생하고 포근한 한국적 비유로 그는 안개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주제의식에서 시의 배경, 시적 비유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체취로 문지르고 문지른 시인의 힘겨운 시작업을, 이 땅위의 성실한 마흔살 가장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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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사는 즐거움
허균 지음, 김원우 옮김 / 솔출판사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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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나 지금이나 글을 쓰려면 먼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만의 글을 쓰기위해서는 타인의 글들을 많이 읽지 않으면 안된다. 허균의 '한정록'은 바로, 그렇게 남의 글들을 뽑아 읽은 흔적이자, 그 글들을 뽑아 자신만의 글로 나아가기 위해 중간정리를 해놓은 과정을 짐작케해주는 증거이다. 허균이 두루 읽고 깊이 생각했음에도, 자신만의 이상세계를 추구하는 열망이 더 강해졌음을 바로 이 '한정록-숨어사는 즐거움'을 통해 알 수 있다. 역사속에서 진정한 은둔자들은 그 흔적조차 없는데, 은둔을 매개 삼아 속세를 낮추어보고 허구의 이상세계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은둔자들을 허균은 눈여겨 보았기 때문이다. 허균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숨어사는 즐거움이 과연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고민해보는 데에 좋은 자극이 되는 글모음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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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통사 5 (제4판) - 근대문학
조동일 지음 / 지식산업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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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 한국문학통사는 '권장도서'이자 '소장도서'이다. 결국 '필독도서'가 되는 셈인데... 여러번 훑어 읽어 내려 갈수록 아쉬움 또한 적지 않은 책이다. 그런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조차 아직 두드러지지 않는 걸 보면, 필독만 하고 있지 애독을 하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 아닐까 싶다. 세로로 짜내려가는 '통사'이기에, 가로를 채워줄 만한 공시적인 자료들과 관점들을 촘촘히 채워나가지 않는다면, 과연 한국문학통사를 읽는 것만으로 국문학사를 공부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 싶다.

고로 나는 한국문학통사 5권과 함께, 각종 설화집,민담집,고전소설집,고전시가집, 근대문학전집들을 함께 소장하길 적극 권한다. 그리고 가로세로를 채워가며 국문학사를 공부해나가길 권한다. 조동일교수의 남다른 통찰은 분명 국문학계의 획기적인 성과로 남겠지만, 그 뒤를 이어 나갈 새로운 통찰의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면... 국문학사를 생동감있게 연구해나가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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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 교수의 명강의 노하우&노와이 희망의 교육 5부작 5
조벽 지음 / 해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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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와이'를 타이틀로 건 책들은 많다. 하지만, 진짜 노와이를 담은 책은 드물다. 21세기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부러운 학문분야가 바로 공학이다. 공학이 바로 인간을 위한 접근을 해오면서 인문학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효율적인 인간학을 개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조벽 교수는 공대 교수이고.. 바로 학생들에 대한 인간적 관찰과 분석과 대안을 공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사실 공학적이라고 말하면 뭔가 투박하고 기계적인 듯한 편견을 가지기 쉽지만, 제대로 된 공학은 엉성하고 모호한 비유로 가득한 인문학 저서들보다 훨씬 인문학의 본질을 잘 담고 있다. 바로 인간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전제되고 있을 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제시하는 노하우,노와이가 명강의를 위한 진짜 방법과 진짜 이유들일 수 있다는 공감을 할 수 있다. 제일 맘에 드는 것들은 바로 책 중간중간 잔소리코너였는데... 그 잔소리가 참으로 소중한 잔소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임용을 준비하면서 각종 수험서 안에 박제화된 교육공학 이론들을 답답하게 마주하고 있는 예비교사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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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책 읽기 - 독자의 탄생과 한국 근대문학
천정환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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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사를 공부하다보면 가장 답답한 것이,바로 역사감각의 문제이다. 유명하다 싶은 국문학사 관련 책들을 보면 모두 국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대학교수들의 매너리즘에 빠진 상투적인 서술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막상 국문학사 강의를 듣다보면 주교재도 맘에 들지 않고 부교재들로도 그 답답함을 풀 수 없었다. 무슨 수능사회탐구 영역의 문제유형처럼 몇 가지 사회역사문화적 요인들과 작품,작가를 연결시켜놓고는 문학사를 서술했다고들 하니... 제일 답답한 학문의 영역 중 하나가 바로 국문학사인 것 같았다.

하지만, 우연히 이 책을 사 읽고 나서는...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작품,작가,독자의 관계를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접근과 풍부한 자료로 저자가 제시해주고 있었고 나는 내 스스로 가졌던 의문들을 풀 수 있는 단서들을 많이 찾아냈다. 이광수의 '무정'이 정말 근대성을 가지는 작품인가? 염상섭의 소설들이 과연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이 될 만한 한 것들인가? 친일행각을 벌인 작가들이 보여주는 작품내적 한계들은 무엇이었나? 이런 문제들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해법이 풀리기 시작한 이상, 한국근대문학사를 공부하기 위해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며 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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