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 사람들의 지혜
단정자춰 지음, 성진용 옮김 / 호미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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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의식하고 있는 삶 중간중간에, 선명하고 상서로운 꿈도 꾼 적이 있고 어지럽고 근심스러운 꿈도 꾼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만이 꿈인 줄 알고 자기 삶 전체가 꿈꾸는 것인 줄 모른다.이 책에서는 삶 전체라는 꿈 속의 꿈은 전체 속의 한 부분에 불과하니, 낮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밤에 정신을 잃는 법이고 낮에 정신을 모으면 밤에 마음의 상처도 치유되는 것임을 말한다. 숨을 들이쉬며 꿈꾸고 있음을 알 때, 새로운 숨을 내쉬기 전에 내면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기에... 꿈을 다스리면 삶이 풀린다고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싶다. 마음을 열고 꿈수행의 체험들을 읽다보면,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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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생육기
심복 / 을유문화사 / 199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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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복의 아내 운(芸)이의 한자 芸은, ‘성한 모양, 많은 모양’이라는 뜻을 지닌다. 그래서 그런지 운이는 재주가 많은 여자였고, 무성할 정도로 풍족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운이의 타고난 특성을 누구보다도 잘 간파하고 계발시켜준 것이 심복이 아니었나 싶다. 심복은 그녀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사랑을 추구했다. 자유로운 사랑이라고 하면, 으레 무슨 규범이나 예절에서 한참 벗어나 종횡무진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요즘 사람들에 비해, 이들 사랑이 보여주는 자유로움은 담백하고 정갈해보인다. 즉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상대의 특성을 살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아쉬운 점도 남는다. 그들의 사랑이 운이의 불운한 죽음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심복의 가슴에는 한스러움이 남았다. 물론 죽음이 사랑을 갈라놓지 못한다는 점만을 강조한다면 이들의 사랑은 애절한 로맨스로 볼 수도 있을 터이지만, 살아남은 자에게 남겨진 슬픔이 너무 크다면 그것은 지나친 사랑(아마도 집착)일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즉 상대에 대한 자신의 소유욕이 커져 상대와의 헤어짐을 어떤 깊은 상실감,허탈감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거라는 거다. 헤어짐 뒤에 남는 여운은 남은 자의 삶에 향기를 더해주어야 할 터인데, 남은 자의 삶에 향기보다는 상처만 깊이 더해준다는 것은 서로를 향한 사랑이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둘 사이안에서만 머물렀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 아닐까?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형상에 집착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상상력을 고갈시키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본다. 어찌 보면 만남 자체가 다 인연이기에, 그 형상 너머로 내게 던져주는 존재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길 때, 만남도 헤어짐도 모두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으로 삭혀질 거라 본다. 운이와 심복의 사랑은 그러지 못한 채 오로지 '마주보며 사랑하기'의 모습으로 남아서, 내게 아쉬움을 주는 사랑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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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여서 좋다
호건 힐링 지음, 이구용 옮김 / 청년정신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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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고통을 가져본 사람만이... 이 훌륭한 아빠 역할의 위대함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여자여서 좋다'라는 식의 사치성 냉장고 선전 로고에 비하면, 이 '아빠여서 좋다'라는 말의 가치는 감히 돈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살아가게 된 기억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펼쳐놓는데, 나또한 그의 둘째아이 웨슬리가 장애아임을 책을 읽어나가는 중에 그의 슬픈 목소리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이 여느 남성과 다르지 않지만 바로 아빠로서의 역할, 부성애에 대한 눈뜸을 통해 아내와 세상을 보다 섬세하게 이해하게 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늦은 밤 침대에서 한 장 한 장 이 책을 읽다보면, 금새 새벽이 되고 잠이 쉽게 들지 않게 된다. 저자는 오늘도 아이 셋의 따뜻한 잠자리를 챙기고 아이를 키우는 자신의 모습에 감사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덧붙여, 내 경우 역시 늦게 시작한 학업 때문에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지내고 있는 터라, 이 책을 통해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겪는 수줍은 사연들과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될 수 있어 고맙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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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혜원 월드베스트 36
김만중 지음 / 혜원출판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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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雲夢>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자 몇이나 될까? 예전에도 잘 넘어가지 않는 책장 앞에서 변명처럼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시 국문학 공부하는 이상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안고 책장을 넘기려니, 손놀림이 더욱 더뎌진다. 그러다, 문득... 이러고 있는 내 모습이 진정 나인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되자,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갔다.

성진이 양소유로 환생하여 여덟 낭자들과의 인연을 맺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재미 그 자체였다. 웃음도 나고, 긴장도 되고, 부럽기도 하고, 괜히 멋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포의 문장력 때문인지 양소유의 다재다능한 능력들은 마치 눈앞에서 펼치지는 듯한 매력남의 인상을 남긴다. 또, 우아한 난양공주와 정소저, 꾀많은 가춘운, 순정파 진채봉, 똑소리나는 계섬월, 단호한 용기를 지닌 적경홍, 신비로운 백능파, 멋진 검객 심요연에 이르는 여성들의 모습은 모두 내가 한번쯤 꿈꾸어온 이상적인 여인상이기도 했다.

이들을 둘러싼 다른 인물들도 매우 개성적이었는데, 태후로서의 엄격함과 자애로움을 갖춘 황태후라든가, 정많고 호탕한 정십상랑의 모습들을 김만중은 매우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군데군데 전체소설의 구조를 완성시키는 복선들이 눈에 띄었는데, 육관대사가 등장하는 장면들이 그것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타나 소유에게 넌지시 암시를 주고 떠나거나, 아니면 소유에게 성진의 삶을 기억하는지를 묻는 장면들은 참으로 절묘하다.

김만중이 장주의 胡蝶之夢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형상화낸 것은, 그가 높은 관념의 세계를 상상해내는 탁월한 사유체계를 가졌기 때문인 듯 싶다. 요즘 떠들썩하게 대중의 아부에 편승하여 노자나 금강경을 강의하는 도올이 구운몽의 높은 상징성을 제대로 알까 싶다. 그는 대중의 입맛에 맞게 성인의 말씀을 끌어내리는 데에는 탁월하나, 대중의 사유를 성인의 말씀으로 가기 위한 단계로 끌어올려주는 깨달음의 세계를 제시하지는 못하니..., 구운몽에 담긴 김만중의 목소리는 그에 비하면 참으로 깊고 오묘하다.

김만중은 <九雲夢>의 결말에서 만족함이 없는 세속적 삶을 깨닫고, 본성(本性)으로 도(道)를 얻어야 함을 말하였다. 흔히들 세속적 삶을 깨닫는 것을 깊은 산 속에 처박혀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인 양 착각한다. 하지만, 세속적 삶을 살아보지 않고서 어찌 그것의 허무함을 알리요? 세속적 삶 속에서 주어진 본분을 다하고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최대한 즐기며 인생에 혼신을 다하는 자만이, 그 다음에 찾아오는 허상에 대한 깨달음(이도저도 아닌 상태의 혼란이 아닌, 헛것과 본성이 자연스럽게 구분되어 자유롭게 처신하는 경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비가 곧 장주요, 장주가 곧 나비일 수 있는 것이다. 나비로서의 삶에 충실하여 그 기쁨을 누려야 달콤한 꿈에서 개운하게 깨고, 장주로서 나비의 꿈을 깊이 깨달아야 다시 나비가 되는 꿈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九雲夢>은 나비의 꿈을 강조한 것도 아니요, 장주의 깨달음을 강조한 것도 아닌 듯 싶다. 장주의 깨달음 운운하며 속세의 삶을 비난하고 천시하는 자들에게는 나비의 꿈이 주는 에너지가 전달될 것이오, 속세의 삶에 도취되어 도(道)의 세계를 부정하는 쾌락주의자들에게는 장주의 깨달음이 계시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로베르토 베니니가 감독하고 주연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를 보면 아들 죠수아를 위해 천진난만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아버지 귀도가 등장한다. 그는 죠수아의 눈높이에 맞추어 인생을 논하고 설계해준다. 육관대사가 성진에게 베푼 뜻있는 환생체험은 귀도의 거짓말 같다. 그리고, 내가 사는 삶도 누군가가 내 존재를 깊이 염두에 두어 베풀어주는 나비의 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니, <九雲夢>덕택에 '인생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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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예찬
쿠르트 쿠젠베르크 지음, 김경연 옮김 / 시공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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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유명한 편집장답다... 이 책 전체가 어떤 주제를 위해 다양한 내용들을 교묘하게 편집해놓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재구성이 아니라 편집... 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직접 구매하여 읽기는 좀 아까운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도서관에 꽂힌 것을 슬쩍 꺼내읽는 정도로 감상하는 것을 오히려 권하고 싶을 따름이다. 재밌게 읽은 부분은 저자가 데카메론의 아홉째 날 여섯번 째 이야기의 제목을 '침대에서 침대로'라고 지어 소개한 부분이다. 침대보다는 인간의 욕정이 뒤섞인 사건을 침대의 공간적 배치문제로 은유하고 있는 위트를 저자가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좀 감동적으로 읽은 부분은, 저자가 헤밍웨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한 대목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소개하고 있는 '침대없이'라는 작은 글이었다. 마리아와 로베르토의 사랑을 덮어주는 침낭은 그야말로 침대없이도 침대 이상의 부드러움을 만들어주는 것이었고, 저자는 이 점을 따뜻한 시선으로 설명해주는 듯 했다. 우리나라도 점차 다양한 침대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추세이지만, 서양인들의 잠자리와 침대의 상관관계를 아직까지는 우리 나름대로의 동양적 관점에서 상상해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 상상력 훈련을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경험해보는 것도 유쾌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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