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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을 추억하다
자핑아오 지음, 박지민 옮김 / 오늘의책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대다수 수필집은 수준미달인 경우가 많아, 자주 손이 가지 않는 책의 한 부류이다. 그 수준이란 걸 굳이 정하자면, 문체나 주제의식을 꼽을 수 있는데, 뭐랄까, 그런 걸 세세히 나누어 분석하기 이전에 딱 느낌이 오는, 그것도 최소한의 사람냄새나는 수필집은 정말 만나기 어렵다. 색다른 주제의식과 남다른 문체를 꿈꾸다 보니, 수필집은 붓가는 데로 써내려가는 유쾌한 쏟아짐이 아니라, 꼬질꼬질 엮여서 결국 무슨 말이 알아듣지 못할 미로속의 장난같은 혼탁함으로 가득차 있곤 하다. 특히, 최근 한국수필을 보면 소위 한 자리한다는 문학가나 학자들이 저마다 자기 이름을 드높이려는 욕심에 그 혼탁한 지면들을 늘리고 있으니 정말 안타깝다.
그런 와중에 아주 유쾌한, 제대로 된 수필집을 만났다. 바로 이 책이다. 난 이 책의 저자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 수필집을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난 그의 수필이 그의 내면에서 우주로 뻗어내는 기운을 아주 잘 담아내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고, 그래서 그를 아주 금새 신뢰하게 되었다. 수필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묵묵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세상과의 인연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정신적-영혼의- 절차가 필요하다. 한국의 문단을 어지럽히는 수필가들에게, 시와 소설을 넘나들며 시적 환희와 소설적 애환을 엮어내는 이 곡예사의 글을 꼭 참고하라고 권해주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