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릴레이 - 전쟁 한가운데서 평화를 꿈꾸는 한 팔레스타인 가족 이야기
가마타 미노루 지음, 오근영 옮김 / 양철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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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이다. 감각에 의존해서 마음을 잃어버리고 영혼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이야기가 판을 친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도덕’과 ‘양심’과 ‘정의’가 오르내리고 있다. ‘도덕’과 ‘양심’과 ‘정의’가, 세기의 추억이 되어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기는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 열두 살 어린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있다. 이스마엘이다. 아들 아흐메드는 적군 이스라엘 병사의 총탄에 의해 쓰러졌다. 하지만, 적군의 총알은 아흐메드 부자(父子)의 영혼을 관통하진 못했다. 그 미움의 화살을 아흐메드 부자는 이해와 용서와 사랑의 부메랑으로 다시 이스라엘인들에게 되돌려주었다. 총상으로 뇌사상태에 빠진 아흐메드의 장기들이 이스라엘인들에게 골고루 나눠졌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이런 아름다운 용서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에 감동한 일본인 의사는 그 이야기를 적어 세상에 알리기로 한다. 이스마엘을 만나고, 아흐메드의 장기를 이식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만났다. 일본인 의사는 자신 또한 친부모에게 버려져 양부모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자랐기에, 누군가를 향한 아름다운 이타심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구 저편에서 사랑으로 ‘생명의 릴레이’가 이루어지는 장면의 주인공, 이스마엘을 만나러 갔던 것이다. 그리고 직접 만난 이스마엘을 통해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느끼고 책으로 전하게 된 것이다.

총칼로 싸우는 것으로 ‘평화’는 오지 않는다. 오로지 생명을 존중하고 아픔을 나누는 이해와 존중만이 ‘평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아흐메드의 심장을 이식받은 이스라엘 소녀 사마흐는 의사가 되어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생명을 나누는 신성한 의식은, 테러와 전쟁보다 더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팔레스타인 소년의 이야기를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금의 대한민국은 부와 권력을 위해 ‘영혼’마저 팔아버리는 권력자들이 판을 치고, 그들을 공공의 적이라며 분노하며 적대시하는 사람들의 보복들이 난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문화는, ‘복수’의 아이콘이 넘치고 ‘부익부 빈익빈’을 절대진리처럼 섬기며 과정 없이 결과만을 탐닉하는 무모한 열정이 미화되고 있다. 신문에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끝나질 않고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실패에 좌절해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넘치고 있다. 열두 살 소년 아흐메드는 난민 캠프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적군의 총탄을 맞고 사랑을 전하고 세상을 떴으나, 대한민국의 열두 살 아이들은 학원가를 전전하며 카톡으로 누군가를 헐뜯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벼락 부자가 된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며 죽어가고 있다. 감히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다는 것은 생각조차 않는다. 중학생들의 양심불량지수는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조사대상 중 33%의 중학생들이 ‘10억이 생긴다면 감옥에 가도 좋다’고 대답하는 사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하는 아흐메드 식의 사랑은,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에게 그야말로 '바보짓’으로 취급당하고 말 지경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흐메드의 펄펄 뛰는 심장은 사마흐에게 새 생명을 전해주었지만, 아흐메드와 이스마엘의 아름다운 영혼은 우리 사회에 ‘영혼’의 숨통을 트게 만들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본인 의사가 전쟁 속에서 평화를 일궈내는 그들을 만나러 갔듯이, 우리도 우리 주변에서 묵묵히 이스마엘처럼 용서와 화해를 이끌어내는 그 누군가들을 만나러 가야할 것이다. 누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용기를 가진다면, 생명의 릴레이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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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30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마음으로 잇는 생명줄을 순대선생 님도 즐겁게 이어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