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
고든 뉴펠드 외 지음, 이승희 옮김 / 북섬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즘 아이들은 왜 이래?"라는 말을 즐겨하는 어른들치고,

어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그 이유가 바로 아이들에게만 있는 것인 양

'요즘 아이들은 옛날하고 달라'라고 분석하는 것이 또한 대세이다.

그것은 반쯤 맞는 말이다.

정말 요즘 아이들은 옛날하고 너무 다르다. 달라지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또래지향성'문화가 만연되어 생기는

아이들의 언행은 가히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그런 '또래지향성'문화가 아이들을 하나의 '괴물'로 전락시키게끔 방조한 것은

바로 어른들의 '미성숙함' 때문이었다.

그러니, '부모는 중요하다' '교사는 중요하다'라고 지적하는 이 책의 충고는,

하루 빨리 '어른들이 성숙해져야 한다'는 명제가 되고 만다.

그래야 아이들의 방황하는 손을 잡아줄 성숙의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 책은 부모들이 일독해야 하고 교사들이 일독해야 하는 책이 된다.

그리하여,

부모이자 교사인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두어야 할 책이 된다.

요즘 아이들의 심리와 문화에 대한 예리한 분석으로

우리가 스스로 성숙함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촉구하는

이 책의 본문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pp.56-59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를 보살피는 일이 과소평가되고 있다. ....  보육시설이나 유치원을 거쳐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하루 대부분을 또래들과 어울리며, 어른의 중요성은 사라진 환경 속에서 보낸다. ...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 대화, 독서는 더 이상 없다. 동기 사회는 정확히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안전, 함께 있음, 주목, 조언, 훌륭한 마음의 양식, 오염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주지 않는다.

p.74

모든 아이는 애착을 통해 성숙하고 그 다음에서야 사회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애착의 단계 없이 사회성으로 건너뛸 수는 없다. 아이의 사회성 계발을 맹신하는 부모들은 너무 일찍 아이들을 자신의 품에서 떨어내려 한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상처받고  또래에게로 애착과 의존성을 옮기게 된다. 애착의 대상이 바뀌는 순간 부모의 권위와 힘도 사라진다.

p.91

부모의 역할은 자연스럽고 직관적이어야 하지만, 그것은 아이들이 우리에게 애착을 형성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부로로서의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이들이 전적으로 우리에게 의존하도록 해야 한다. 신체적인 의존뿐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의존 또한 되찾아아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절대적인 순리이다.

p.99

주의력결핍장애가 처음에는, 아이가 선생님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학교 문제로 간주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주의력 결핍장애로 진단받은 아이들 수의 폭발적인 증가와 우리 사회의 또래지향성의 발달이 나란히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주의력결핍장애현상은 또래지향성이 지배적인 곳에서 더 심각하다는 사실 또한 우연이 아니다.

p.108

아이들은 청년기에 이를 때가지 가치관을 내면화시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또래지향적인 아이들의 행동이 변했다고 그들의 가치관이 변한 것은 아니다. 아이의 애착 본응의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다. 학습, 목표를 향한 노력, 우수함의 추구, 사회에 대한 경의, 가능성의 인식, 재능의 발달, 열정 추구, 문화 감상과 같은 부모의 가치들은 훨씬 즉흥적이고 단기적인 또래의 가치로 대체된다. 외모, 연예인, 또래에 대한 충성, 함께 붙어 지내기, 저급한 대중문화에 순응하기, 또래들과 잘 지내기가 교육이나 개인의 가능성 실현보다 더 높이 평가된다.

p.109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아이의 욕망은 부모 역할을 훨씬 수월하게 해주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이는 주의 깊은 보살핌과 믿음을 필요로 한다.

p.119

참된 독립성이 발다하고 성숙함이 이루어지면서 대항의지는 사라진다. 성숙한 인간은 복잡한 감정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독립을 원하면서도 애착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상충하는 마음의 상태를 받아들일 줄 알게 된다. 결국,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지에 대해 반사적으로 저항할 필요가 없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이 맞으면 주의를 기울이고, 아니면 그냥 자기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p.121

또래지향적인 십대는 자기 부모의 요구에 대해 무조건 화를 내거나 반항한다. 이런 왜곡된 형태의 대항의지를 건강한 십대의 자기주장으로 착각하는 어른들은 너무 일찍 부모 역할에서 꽁무니를 빼곤 한다. 많은 부모들이 그저 쉽게 포기해버린다. 분노 혹은 좌절감으로 그냥 물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조기 은퇴는, 여전히 우리를 내면에서 간절히 필요로 하는 아이를 유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이 또래들로부터 우리에게로 돌아오게끔 노력해야 한다.

 

p.128

아이들이 속한 각각의 종족 내에서, 가치관과 문화는 무지하고 미성숙한 개인에서 개인으로 수평으로 전달되고 있다. '문화의 퇴조'라고 할 수 있는 이런 과정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문명사회 활동의 기반 중 하나를 좀먹고 있다.

p.129

미국의 저명한 발달 전문가 하워드 가드너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4년동안 부모로부터 저절로 흡수하는 것이, 나머지 공교육 과정 전체를 통틀어 흡수하는 것보다 많다고 한다.

 

pp.131-132

또래지향성이 만들어낸 문화에는 지혜가 없다.  ... 또래지향성이 초래한 문화는, 엄격한 의미에서 불모의 문화다. 자기 문화를 재생산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에게 유용한 가치관을 전달하지도 못한다. ... 또래문화는 인간을 교화하거나 재능을 길러주지 못하고, 숨겨진 자질을 조금도 일깨우지 못한다. 또래지향성이 증가하면 젊은이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도 감소한다. 그들에게 현재와 미래는 과거와는 전혀 연관 없는 진공 상태에 존재한다. 정치적, 사회적 의사결정도 그런 무지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p.147

오늘날 많은 아이들이 또래들의 무자비함에 상처를 입고 있다면, 그것은 이전보다 요즈음 아이들이 더 잔인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또래지향성으로 인해 아이들이 또래의 조롱과 감정적 공격에 더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어른들에 대한 아이들의 애착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우리는 아이들이 방패를 놓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또래의 손에 칼을 쥐어준 꼴이 되었다.

p.155

아이들이 무엇에도 끄떡 않는 초연한 상태가 되면 인생을 무한한 가능성과 연관시키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서 한없는 잠재력을 보지 못하고, 세계가 자기 표현을 반기고 성장시키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또래지향성이 강요한 초연함이, 아이들을 한계와 공포 속에 가두는 것이다. 오늘날 그런 아이들 중 대다수가 우울증, 불안, 다른 장애들로 인해 치료받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p.186

많은 어른들은 공격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잘 모르는 청소년 집단과 맞서는 것을 주저한다.

p.210

이제는 여학생들고 서로 간에 신체적인 공격을 통해 지배권을 획득하려 한다. 이런 여학생들 간의 사움은 예전에 비해 조숙하지 안혹, 점잔빼지 않고, 억제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다른 말로 '걸파워'라는 표현이 있는 이는 전혀 경우가 다른다. 여자애들이 서로 왕따를 시키고 공격하는 현상은 정서적 퇴보이지 여성 해방이 아니다.

 

p.218

우리는 아이들끼리 어울리게 함으로써 평등한 관게를 키울 수 있다는, 위험이 따를 정도로 순진한 생각을 해왔다. 우리는 '파리대왕'과 같은 상황의 무대가 준비된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우리 아이들을 고아로, 학교를 일일 고아원으로 만들고 있다.

 

p.226

성이 또래지향적인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과 또래지향성이 성에 미치는 여향을 목도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들이 빠지게 될 문화는 비정상적으로 뒤틀린 성에 흠뻑 젖어 있다.

p.228

"옷, 화장, 행동에 대한 현재 유행하는 패션 스타일은, 아직 미성숙한 어린 여자아이들의 성적 특질을 부추긴다. " ... "사춘기 소녀들의 일기나 일지에는 몸이 첫번째 관심사이고, 두번째는 겨우 또래 관계이다."

 

pp.236-237

성은 동시에 존중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기대감과 염려를 불러일으켜야 하고, 축복과 경계의 원인이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그런 결정을 혼자 내릴 수 있기에는 지혜, 통찰력, 충동 조절 능력이 부족하다. ...  청소년기의 성은 성적 실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서적 절망과 애착 허기이다. ... 아이들의 성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그들을 원래 속해야 할 자리, 즉 우리에게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pp.239-240

아이들은 능력이 있지만 동기가 없고, 똑똑하지만 성적이 낮고, 영리하지만 지루해 한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자면, 교육은 한 두 세대 전보다 훨씬 더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 되었다. 오늘날 많은 교사들이 증언하듯이, 가르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학생들은 옛날보다 배움을 존중하거나 수용하지 않는다.  ... 비교적 최근까지도 교사들은 문화와 사회가 낳은 강한 어른지향성의 덕을 볼 수 있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 한 학생의 학습능력은 배움과 이해에 대한 욕구,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관심,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 영향 받고 교정 받는 일에 대한 개방성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산물이다. 또한 교사와의 결합,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 기꺼이 도움을 부탁하는 마음, 기대에 부합하고 성취하려는 열망, 특히 일에 대한 성향이 작용한다. 이런 모든 요소들은 애착에 뿌리를 두고 있거나 애착의 영향을 받는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이의 학습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질엔 네 가지가 있다. 타고난 호기심, 통합적인 마음, 교정을 통해 유익함을 얻는 능력, 교사와의 관계이다. 건강한 애착은 이 네 가지 자질을 향상시키지만 또래지향성은 이 모든 것을 갉아먹는다.

pp.242-244

자기 동기 부여를 위해서는, 통합적 마음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 통합적 마음이란 상반되는 충동이나 생각을 처리할 수 있는 마음이다. 잘 발달된 통합적인 능력을 지닌 아이의 마음속에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생각은 결석에 대한 염려를 일으키고, 아침에 일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지각에 대한 걱정을 불러낸다. ... 통합적인 배움을 위해 아이는 두 개의 마음(뒤섞인 상반된 느낌)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성숙해야 한다. 조절 요소가 존재하려면 아이가 적절한 애착을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 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한 사실을 넘어서 주제를 발견하고, 더 깊은 의미를 인식하고, 은유를 이해하고, 밑에 깔린 원리를 찾아내야 한다. 재료의 본체에서 정수를 정제해낼 줄 알거나 조각들을 모아 조화로운 전체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구체적인 사고 이상의 단계에서는 늘 통합적 마음이 요구된다. ... 우리의 교수법과 교과과정은 아이들이 당연히 통합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한다. 교육자로서 우리가 부족한 무언가를 가르치려다 실패할 때, 우리는 아이들의 사고나 행동을 가라앉히느라 무엇에 대항하고 있는지도 알아채지 못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하게끔 강요하고, 그것이 실패할 경우 그 대가로 아이들에게 벌을 준다. 통합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식으로 생각한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이런 가정은 오늘날 우리가 교실에서 부딪히는 학생들과 같은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통합적인 지성이 결여된 아이들은 이런 형식의 가르침으로는 다룰 수 없으므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pp.253 -254

교사라는 말의 어원은 '지도자'이다. 특히 아이들을 지도하는 사람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따를 때에만 이끌 수 있고, 학생들은 자신이 애착을 형성한 사람들만을 따른다. 갈수록 교사들은 거꾸로 학생들의 본을 따르고, 학생들을 앞에 내세우며 교육의 참뜻을 손상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애착의 문제에 착수하는 것만이 가르치는 일을 수월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학생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교사로서 직무를 다하는 일이다. 학생들이 마음을 열려면 우리는 먼저 그들의 애정을 얻어야 한다. 교육에 대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이런 특수화와 전문가의 시대에, 우리는 가르치는 일이 교사들의 유일한 임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배움을 촉진하고 또래지향성을 방지하는 애착의 역할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교육을 부모와 교사, 아이들과 접촉하는 모든 어른들이 똑같이 나누어야 할 사회적 책임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p.259

관계를 맺고 싶은 멋진 이성을 유혹할 때 구애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처엄, 부모 역할을 하거나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이런 본능을 이용해야 한다.

 

p.264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신체적으로 붙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붙드는 것이 중요해진다. 우리는 아이들이 잡을 수 있는, 소중하게 붙들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고 놓아주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

p.265

궁극적으로 우리가 줄 수 있는 선물은 아이의 존재 자체에 대한 우리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누군가 원하고, 특별하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여기고, 소중히 생각하고, 진가를 알고, 그리워하고, 기뻐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p.270

우리는 아이들의 성숙에 대해 너무 많은 책임을 지려 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이 우리 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독립은 성숙의 열매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우리의 임무는 그들의 의존욕구를 보살피는 일이다.  진정한 의존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을 잘해냈을 때, 자연은 성숙을 촉진시키는 맡은 바 임무르르 마음껏 할 수 있다.

p.273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 방위의 역할을 하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기능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갖는 힘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이 역할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p.275

아이들은 방향을 잡아주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과, 그들이 알든 모르든 간에, 우리는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최고의 재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시간과 장소, 사람과 사건, 의미와 상황에 대해 방향을 정해주면, 아이들은 그만큼 더 우리와 가까워지려 한다. 아이들이 혼돈스러워 하는 표정을 지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자신 있게 아이들의 삶에서 안내자로서 통역자로서 우리의 지위를 맡아야 한다. 하루를 시작할때 다음과 같이 방향성에 대해 아주 짧은 언급만 해도, 아이들과의 친밀함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p.286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즉각적으로 끊임없이 말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혼란스러워하고 부모는 자신의 가치를 양보하는 꼴이라고 믿는다. 그런 두려움은 잘못된 것이다. 아이의 혼란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는 대개 자신에게 기대되는 바와, 자신이 지킬 수 없거나 지키기 싫은 것들을 잘 안다. 지킬 수 없는 것은 대개 성숙의 문제이고, 지키기 싫은 것은 보통 애착의 문제이다. 아이는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문제보다는, 부모에게 자기 자신이 가치가 있고 중요한 사람인가라는 문제에 더 집착한다.

pp.288-291

또래지향적인 아이의 의도적인 오만과 불복종은, 부모의 애착 감성을 모조리 교란시킨다. ... 아이들로부터 멀어지지 않으려면 성인에 가까운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또래지향적인 아이들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성인의 자세이다. ... 실제로 무슨 말을 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말을 하는 어조, 부드러운 눈, 다양한 접촉이 모든것을 말해준다.

 

p.316

아이를 효율적으로 다루는 능력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을 다루는 능력이다. 아이에게 베풀고 싶어 하는 그 동정을 우리 자신에게서도 찾아야 한다.

p.325

부모는 위엄을 유지해야만 한다. 제어되지 않은 감정의 분출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을 피해야 한다. 희생물이 되었다는 느낌에 휘말리면 책임을 지고 있는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할 수가 없다.

pp.344-345

우리의 사랑에 대해 불안감이 너무 커서 우리의 분노와 실망을 감수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가 진실을 감춘다는 것을 지혜롭게 알아차린다면, 아이의 절대적인 안정감을 회복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현실을 벗어나려고 할 사람은 누구인가?"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썼다.

"바로 현실로부터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다."

.. 틀은 아이의 환경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필요한 의식과 일과를 부여한다  ... 좋은 틀은, 사람들이 틀 자체나 그 아래 깔린 계획에 관심을 집중하지 않게 만들고, 지시하기와 강압을 최소화시킨다.

 

pp.361 -362

미성숙한 인간에게 우정이라는 개념은 의미가 없다. ... 진정한 친구는 그것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개의치 않고 우리의 발달과 성장을 지지한다. 이런 개념의 우정은, 상호 존중과 개성이라는 굳건한 바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성숙에 도달하고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가능하게 되기 전까지 인간에게 진정한 우정은 불가능하다. ...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전까지, 아이들에게 친구는 필요하지 않다. 단지 애착이 필요할 뿐이다. ... 우정에 대해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발달적으로 볼 때 아이들은 또래들과의 관계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훨씬 더 필요로 한다. 즉 자기감각과 내적 경험의 분리가 나타나야 한다. 사람은 자기 생각과 느낌을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해야 하고, 이런 능력 역시 성숙의 산물이다. 자기 자신과의 과녜를 맺었을 때, 사람은 자기 자신과 동행하는 것을 좋아할 수 있고, 자기 자신에게 동의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거나 반대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

 

p.368

진정한 자존감은 난 이런저런, 혹은 다른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저런 혹은 다른 것들을 할 수 있건 없건 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런 독립적인 자존감의 공백을 긍정과 지위, 성취와 같은 대체물로 채우려는 노력은 무익하다.

 

p.380

학생과 살아있는 관계를 형성한 교사는 아이를 맡고 있는 다른 교사들과 교직원들과의 관계를 용이하게 해주는 중매쟁이로서의 힘을 갖는다

p.384

아동기가 끝나기도 전에 부모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재앙이다. 아이들은 미성숙한 상태로 남아 성장을 위해 그리고 삶이 제공하는 자유로운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순수, 민감한, 순진한 개방성을 빼앗긴다. 인간으로서의 충만한 유산을 사취당하는 것이다. 누가 우리 아이들을 기를 것인가? 영원불멸의 대답은 우리가 아이들의 멘토요, 안내자요, 양육자요, 표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임무가 완성될 때까지 아이의 손을 놓지 말아야 한다.

<2>

배움에는 언제나 '가치'라는 게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따르고 싶어하는 대상이 되려면,

스스로 '가치'를 느끼며 만들어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손을 다정하게 내밀 수 있으려면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어른들(부모집단, 교사집단...)은 모두

부동산, 주식, 학벌, 혈연 등등을 운운하며 '가치없는 것'들에만 열광한다.

그러니, 어른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기는커녕

뿌리쳐버리는 모습까지 보인다.

우리 사회가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따라하는 아이들의 '또래문화'를

전면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것도 바로 자신의 모습에 화살을 돌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과의 거리감이 느껴진다면,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되뇌여야 할 것이 있다.

'너나 잘하세요!'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들이 먼저 우리 어른의 손을 놓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슬며시 손내밀면 언제든지 잡고 싶어하는 게 아이들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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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6 1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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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지배한 빌 게이츠 청소년 경제인 평전 1
김이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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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에 대한 의견들은 분분하다.

책도 무진장 많다.

학교의 도서부원들과 이 책을 함께 읽었다.

아이들은 약 2시간여에 걸쳐 이 책을 쉽게 읽고 A4 한 장 분량의 감상문도 뚝딱 써내려갔다.

읽기가 쉽고,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도 선명해서 아이들이 감상하기에 좋은 책이었다.

(본문 중간중간에 청소년들에게 당시 컴퓨터 발전상황이나 빌게이츠의 생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쓰여진 부연설명의 짧은글들이 무척 좋은 시도로 보였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것은

책 뒤에 부록으로 붙은 '빌게이츠를 통해 배우는 성공 비결'이었다.

  1. 성공한 자의 7가지 습관
  2. 직원 관리 비결
  3. 경영 철학과 경영 노하우
  4. 시간 관리 노하우
  5. 위기관리 노하우
  6. 사회환원

중학교 1학년이나 2학년 정도의 남학생들이 읽고 토론하기에 좋은 책이라고 총평을 덧붙인다.

(단, 토론을 할 때 스티브 잡스에 대한 배경지식,동영상을 곁들이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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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삼국지 - 미디어 환경변화를 읽는 하나의 시각 SERI 연구에세이 83
김영환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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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연구서'에서 나오는

'SERI 연구에세이' 시리즈 중 마음에 드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교양과 전문의 경계영역을 바탕으로

대중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인터넷 포탈사이트 등의 새로운 미디어매체에 대해

쉽고 재밌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최근에는

활자화되어 인쇄된 종이신문보다는

인터넷상으로 접하는 기사를 즐겨 읽고 스크랩하니,

종이 신문이나 기존 방송국이 가지는 매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차츰 퇴색하고 줄어듦을 느낀다.

삼국지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

현 미디어 지평에 대한 조언들을 참고로

인터넷 중독에 가까운 증상들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에게

매체의 역사와 전망과 그속에서 갖추어야 할 자세나 태도에 대해 당부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독서노트에 필요한 내용들을 발췌정리해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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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내 안의 파란 열정
로렌 도켓 지음, 이수빈 옮김 / 현실문화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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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들어 읽게 된 책이다.

우울한 상태를 대변하는 '파랑'(블루)이 열정이 될 수 있다니...

멋진 발상의 전환이지 않은가?

실제 우울증을 경험하고 극복해낸 혹은 담담하게 겪어내고 있는 이들의

체험적 고백들이 중간중간에 나온다.

우울증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 고백들의 표현들이 결코 과장된 게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울증이 열정으로 승화되기 위한 그 지점...

물을 끓여서 수증기로 날려보내기까지 열을 제공해야 하는 그 지점...

열정으로 전환되는 삶의 100 ℃는 어디인가 ?

그리고 그 열의 실체는 무엇인가?

p.59

우울증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된 여성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깨달은 이들이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위대한 지도자로서 우리를 삶의 진실이라는 숲으로 이끌어준다.

또 다른 이들은 우울증이 세상에서 인간의 위체를 이해하고 다른 이에 대해 진정한

동정심을 갖는 데 도움이 되는 진정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pp,60-61

서구사회에서 우울증은 반드시 치료해야 할 병이다.

하지만 다른 세계에서 우울증은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불교와 힌두교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동양에서 우울증은

깨달음의 첫걸음으로 여겨진다.

 

p.198

'우울증 전문가들은, 진정으로 우울증을 이겨내고 우울증을 유발하는 사건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인생을 대하는 방식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열이란,

내면의 변화에 대한 집중이 아닐까?

그리고, 열정으로의 승화된다는 것은

영적(정신성)배움의 자세를 갖추어 좀더 겸허해진다는 게 아닐까?

겸허한 사람만이

타인의 슬픔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나눌 수 있을 것이며

세상의 모순들과 사람들의 악의적인 실수와 방탕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강해지는 길이다.

우울증을 겪은 뒤 정신적 지도자가 되는 경우는,

바로 그가 강해졌기 때문이리라...

고통을 통해 강해지는 길,

바로 우울증을 피하기 위해 폭력으로 비난으로 난동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 우울증을 통해 폭력이 아닌 창조로, 비난이 아닌 침묵으로 거듭나는 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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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자기 교육이다 동문선 현대신서 174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지음, 손승남 옮김 / 동문선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가을이다.

학교 맞은 편 시립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골라들었다.

가을은 2학기, 학교는 기계처럼 돌아가고 아이들은 지친 낙엽처럼 교실과 복도를 뒹군다.

나는, 틈틈이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며

교육에 대한 내 믿음이 어떤 좌표를 가지고 있는지 검토해본다.

상호작용, 편안함, 자기도야...

해석학의 입장에서 교육내용이나 교육과정이나 교육현상을 검토해보면

당연히 '상대성'과 '구체성'에 근거한 섬세함과 여백의 의의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런 것들의 주체가 바로 우리 스스로의 내면의지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자기교육이다... '

라는 가다머의 문구가 내겐 다음과 같이 와닿는다.

'삶은 기본적으로 자기삶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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