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8월 14일 정오의 하늘을 기억한다"
....
청소년문학의 으뜸인 한 편의 '성장소설'이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첫 장, 둘째 장, 셋째 장까지....
작가의 문체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열다섯 살 소년의 여름을 그렇게 '열다섯 살'답게 감쪽같이 속여서 서술해내는 능력은,
참으로 대단한 재주임에 분명하다.
노란 우비를 입은 네 명의 여행자와 파란 개 한마리가
'고래'도 아닌 '코끼리'를 타고 있는 이 책의 표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등돌린 채 큰 배낭을 멘 사람-그는, 정신병원을 탈주한 할아버지였다-
안경을 쓴 채로 약간 비열한 웃음을 띠고 있는 녀석-그는, 어느 절 주지에게 시달리다 탈출한 승주였다-
매끈한 긴 다리가 순정만화 여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그는, 미친 개장수 아버지에게 허구헌날 두들겨맞는 정아였다-
다소 고개를 숙인 듯한 또 한 녀석-그는, 실종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어머니의 재혼에 열받아 남의 일을 떠맡아 나선 준호, '나'였다-
그리고, 미친개장수를 닮은 미친개 한 마리 '루스벨트'....
이들 네 명의 주인공,그리고 개 한 마리의 탈출기는,
최소한 준호'나'에게는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추억된다.
아주 지독하게 집중적으로 실시된 잠깐의 합숙 훈련...
그런데, 그 합숙 훈련의 배경에는 광주항쟁과 민주화운동이 있었다.
그것의 상징이 바로 운동권 수배자 '주환'이었다.
결국 '자아'의 경계가 치열하게 형성되는 '네 명의 탈출기'의 배경에
현대사의 한 장면이 '서사'로 자리잡은 셈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자아'속으로 '서사'가 투영되지도 않았고
'서사'의 한 장면을 '자아'가 차지하지도 못했다.
-차라리, '고래'대신 '주환이와의 깊은 대화'가 자리잡았으면 더 좋았을 듯 싶었다,
나라면 그렇게 썼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문학이 '거대한 독서시장'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마당에
'청소년 문학상'에 당선된 이 작품의 의의를 뭐라고 하면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제목이나 구성은 '당선작'다운 면이 있으나,
주제나 인물은 그다지 '생생하거나 절절하지' 않다.
언젠가,
작가 정유정씨나 또는 다른 어떤 작가가
한국판 '데미안'-자아가 알을 깨고 나오는 이야기-을 써주었으면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