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엠' 열두 개의 구역에서 남녀 한 쌍씩을 뽑아 단 한명만이 살아남는 게임 '헝거게임'의 나라다. 과거 반란에 대한 징벌로 시작한 이 게임은 이제 국가적 축제가 되었다. 게임 참가자에게는 전속 디자이너가 붙어 최대한 멋있고 아름답게 꾸며주고 퍼레이드에 인터뷰까지 최상의 환경이 주어진다. 국민들은 열광하고 심지어 '스폰서'까지 붙는다. 4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제물이 되는 그 순간까지... 그러니까 요약하면 이런거다. 매년 23명의 아이들의 목숨을 댓가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오멜라스라는 도시가 있다. 왕도 없고 노예도 없다. 칼을 휘두르지도 않는다. 주식 시장이나 광고, 비밀경찰, 폭탄도 없다. 그렇다고 무미건조한 도시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들에게는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들이 있고 아이들은 행복하게 자라난다. 마약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몇 시간 동안 꿈꾸는 듯 한 나른함을 안겨 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한 섹스의 쾌락과 함께 마침내는 깊은 우주의 신비와 비밀을 담은 황홀경을 선사하면서도 중독성이 전혀 없는 '드루즈'가 주어진다. 좀 더 소박한 취향을 가진 이들에게는 맥주도 있다. 이 즐거운 도시에 그밖에 무엇이 필요할까? 그 즐거운 도시의 아름다운 공공건물들 중 하나에는 지하실 방이 있다. 창문도 없는 그 방에는 거미줄 쳐진 지하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빛이 문틈으로 간신히 들어올 뿐이다. 가로로 두 걸음, 세로로 세 걸음 정도인 그 방에 어린아이 한 명이 앉아 있다. 아이는 옥수수 가루와 기름 반 그릇으로 하루를 연명한다.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아이는 자신의 배설물 위에 계속 앉아 있었기 때문에 엉덩이와 허벅지는 짓무르고 곪은 상처로 가득하다.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가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들의 행복, 이 도시의 아름다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 아이들의 건강, 학자들의 지혜로움, 장인의 기술, 그리고 심지어는 풍성한 수확과 온화한 날씨조차도 전적으로 그 아이의 지독하리만치 비참한 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런 나라 따위 개나 줘버리라지.
 
[헝거게임]의 예고편만 봤을 때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일본 만화 '배틀로얄'이 떠올랐다. 그러나 142분의 긴 런닝타임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필자를 사로잡은 [헝거게임:판엠의 불꽃]은 보는 내내 '어슐러 K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생각나게 했다.
 
만약 필자가 '판엠'에 살고 있다면 어떨까. 필자의 성격상 아마도 십중팔구는 그들처럼 '헝거게임'에 열광하고 그 체제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리라. 하지만 필자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래서 감사한다. 적어도 평화의 댓가로 23명의 무고한 목숨을 요구하는 나라에게 그따위 평화는 개나 줘버리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볼까 말까 꽤 망설였다. 워낙에 SF나 판타지를 좋아하는데다 독특한 소재의 영화라면 사족을 못 쓰는지라 예고편을 봤을 때부터 콕 찍어놓긴 했는데 지난달에 마찬가지로 찍어놨던 [존 카터]가 그야말로 형편없었던 데다가 네이버 평점마저 애매한 7점대 후반이다 보니 이거 또 B급 블록버스터의 요란한 빈 수레가 아닐까 의심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겠는가! 결국 재개봉한 [타이타닉]과의 사이에서 선택하게 된 [헝거게임:판엠의 불꽃]은 대박이었다.
 
활을 당기는 모습이 이유 없이 요염한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압권인 것은 '판엠'의 세계관이었다. 원작을 아직 보지 못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영화는 지루한 설명이나 구차스러운 변명 없이 '판엠'의 세계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어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탄탄한 세계에 대한 기대와 상상력을 더해주었다. 더불어 영화 속 '헝거게임'의 모습도 매우 현실적인 느낌이었던 것이, 비록 화려하고 자극적인 액션은 없었지만 자연 속에서 생존게임이라면 실제로 저렇게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작위적인 영웅주의도 없고 어설픈 대사의 치장도 없다. 예고편에서 보면 주인공이 활 하나 들고 신나게 쏴 잡아댈것 같이 보여주는데 그런 장면 없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극한의 상황에서 말없이 행동으로 우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없음'들이 게임의 현실감을 살려주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주인공의 로맨스가 좀 개연성이 없이 시작해서 설득력이 부족한 것과 클라이맥스에서의 강렬함이 다소 부족한 정도. 어떻게 보면 이게 결코 작은 부분이 아닌 것이 '헝거게임'에서의 생존이 이후 이야기의 단초가 되는 것 같은데 이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주인공의 로맨스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로맨스가 클라이맥스와도 이어지는데 이 장면에서 뭐랄까, 극에서의 정점을 꽝!! 하고 찍어주는 그런 폭발력과 힘이 다소간 모자란 느낌이다.
 
극의 결말은 자연스럽게 다음의 이야기를 예고하면서 마무리 하게 되는데 비록 상업주의의 냄새가 없지는 않으나 노골적으로 '인기 있으면 돌아오고'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는다. 필자는 진심으로 '판엠'의 다음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헝거게임:판엠의 불꽃]은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판타지 영화와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영화다. 화려한 액션과 죽고 죽이는 살벌한 게임을 보고 싶은 분이라면 피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판엠'의 거대한 세계, 무고한 아이들의 목숨으로 연명하는 역설적인 세계를 보러 오시라. '제니퍼 로렌스'의 뛰어난 연기는 보너스! 

 

"왜 우승자를 뽑는지 알아? 벌이라면 모두 죽이는 게 더 효과적인데 말이야. 쉽고 빠르고. 그런데 왜 한사람을 남길까? 희망이야. 두려움보다 강한 게 희망이야. 하지만, 그 희망이 커지도록 놔두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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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포럼, 자본주의를 버리다 - 포스트 캐피털리즘: 다시 성장이다
매일경제 세계지식포럼 사무국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다보스 포럼'은 매년 초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으로 말하는 것으로, 세계 각국의 정계(政界)·관계(官界)·재계(財界)의 수뇌들이 모여 각종 정보를 교환하고, 세계경제 발전방안 등에 대하여 논의한다. [다보스포럼, 자본주의를 버리다]는 2012년 '다보스포럼'을 '매일경제'에서 취재하여 요약한 보고서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실제 포럼에서도 그리고, 이 보고서에서도 자본주의의 위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경제 위기와 이에 대한 타개법뿐만 아니라 미래 기술과 대체 에너지, 환경 문제 등 다방면의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자본주의'가 위기라고도 하고 아직 '자본주의'의 위기까지는 아니라고도 한다. 무엇이 옳은지 혹은 옳다고 느껴지는지 필자는 모르겠다. 우선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본질적인 정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자본주의 국가인 만큼 피상적인 정의라도 말할 수 있어야 마땅할 텐데 막상 이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정의해 보려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다. 어쨌거나, '자본주의'가 뭔지도 모르게 되어버렸으니 이것이 위기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경제가 위기라는 것은 알겠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시사문제에 무관심한 채 신문도 뉴스도 거의 보지 않는 오타쿠 타입의 필자인지라, '도대체 왜 경제가 위기인가?'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필자와 같이 둔감하고 무관심한 사람이 위기를 느끼고 있다면 이거야말로 심각한 상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2012년의 '다보스포럼'에서는 이러한 경제 위기가 화두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출발을 한 해의 경제전망과 함께 시작하는 포럼에서 경제 전망 대신 첫 프로그램으로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토론회(Debate on Capitalism)'가 제시되었고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우리는 죄를 지었다. 이제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할 때가 됐다"고 발언했으며, 돈 놓고 돈 먹기의 수치놀음으로 전락해버린 '대마불사(Too big to fail)'를 부르짖던 금융업계의 도덕 불감증을 질타하기도 했다.

 

허핑턴포스트의 '아리아나 허핑턴'은 "아담 스미스가 자본주의를 처음 만들 때는 도덕적 감성과 윤리적 배경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지금 자본주의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이 두 가지 요소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라며 다시 아담 스미스 시대의 국부론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금의 자본주의와 '아담 스미스'가 말한 자본주의에는 크게 두 가지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 윤리적 기반이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그럴 만하다'라고 보고 그에 따른 정당한 보상도 주어져야 한다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경쟁이 공정하거나 윤리적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고민은 2차적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먼저이고, 경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그 다음이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가 말한 자본주의는 순서가 거꾸로다. 건강한 경쟁이 이뤄지는 사회적 기반이 이뤄져야만 건강한 자본주의가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자유주의 만능'이라는 철학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익만을 추구하면 아비규환(阿鼻叫喚)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제까지 자본주의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가 주장했던 자본주의는 이런 형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 역시 "아담 스미스도 '보이지 않는 손'이 반드시 공익을 보장한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이 자본주의를 고장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국부론'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어쨌거나 이렇게 근본적인 '도덕(道德)'을 이야기하며 경제 위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보고서가 진행된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이 책은 '요약 보고서'라는 것이다. 상당히 방대하고 전문적인 포럼의 내용들이 비교적 간략하고 쉽게 정리되어 있어 읽기 쉽고 흐름을 파악하기 좋은 반면 자세하고 친절하게 각 주장의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반지식을 요구하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중국의 경제성장이 8%면 괜찮고 7%면 위기라는데 어째서 그러한지, ECB(유럽중앙은행)가 은행에 장기적인 유동성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데 대체 유동성 지원은 뭐고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의 내용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이건 필자의 경우고 전반적으로는 치우치지 않은 시각으로 요점정리가 잘된 보고서로 경제 문제뿐 아니라 '청년실업' '건전한 소비'등의 사회 이슈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 '웹 앱(Web App)'등의 미래 기술, '대체 에너지' '바이오 에너지' 같은 에너지와 환경문제까지 폭 넓게 다루고 있어 세계적인 흐름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으니만큼 경제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읽어 볼 만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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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슬 시티
김성령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에 따라 취향은 제각각이고 좋은 소설의 기준도 제각각일 것이나 한 가지 만은 대부분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좋은 작품에서는 그 세계와 함께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인다.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다보면 등장인물이 무슨 일을 벌일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작가 자신이 쓰고 만들어놓은 인물들과 이야기임에도 때론 그들 스스로도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좋은 소설이 아닐까? 탄탄한 설정과 잘 만들어진 캐릭터가 작가의 틀 안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는 순간, 그것들이 씨실과 날실로 엮이어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니러니 한것은 명작을 읽을때는 오히려 이러한 점들을 잘 느끼지 못하고 평작을 통해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항상 곁에 있을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잃고 난 뒤에서야 절실하게 깨닫는 것처럼...

 

[바이슬 시티]는 작가만이 있는 소설이라고 느껴진다. 작가의 생각과 언어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캐릭터들은 작가가 그어놓은 선 위를 꼭두각시처럼 밟아 나간다. 돌출행동이 없으니 위기또한 있을리 만무하다. 개연성 없는 이벤트들은 독자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작가와 꼭두각시 캐릭터에 의해 완성되어 버린다.

 

설정또한 단순하다. ‘왜'와 ‘어떻게'가 빠진채 미국의 한복판에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그러면서도 민주주의 체제하에 있는 거대 도시를 떠억하니 심어놨다. 그리고 ‘대통령'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른다는 한마디로 ‘바이슬 시티' 존재 자체, 그리고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순되는 일들을 모두 합리화 해버린다. 그냥 책 소개에서의 설정만을 보면 꽤나 독특한 설정이긴 하다. 알려지지 않은 목적으로 격리되어 세워진 도시. 안개처럼 깔리는 음모의 기운이 느껴지면서 무언가 커다란 미스테리가 함께 할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왜'도 없고 ‘어떻게'도 없어 전혀 설득력이 없다. 다가오지가 않는다. 현대의 우화로서, 또는 [눈먼자들의 도시]와 같은 사고실험으로서의 작품이라면 이러한 설정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제한된 상황에서 어떤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것이 중요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바이슬 시티]는 이도 저도 아닌 그냥 일반 소설이다. SF도 환타지도 아니다.

 

어쩌면 한 바구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한 것일까? 어떻게 보면 제한된 공간이라는 설정은 어떤 사고실험의 의도라고 볼 수도 있고,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현대 사회 부조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으니 우화적인 요소를 갖추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그렇게 볼 수도 있을 뿐이다. 끊임없이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던가 ‘지배당’의 세뇌가 어떻다던가 이야기 하고는 있지만 그 안에 사람들의 모습은 그냥 우리 도시의 사람들과 별다 바가 없다. 이러한 환경이라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순을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제한'적인 공간, ‘격리'된 도시를 느낄수가 없다. 그저 이러저러한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산문이나 지식 교양서적이 아닌 다음에야 그 상황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소설인 것이다. [바이슬 시티]의 이야기는 이러한 제약위에 성립되는 것인데도 가장 근본이 되는 이 부분이 설득력이 없다보니 이후의 이야기도 그저 미리 놓여진 레일위를 평이하게 달려갈 뿐이다. 한 가지 더 아쉬운 것은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살려내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은 추리소설도 스릴러 소설도 아니다. 그러나 이미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격리된 도시라는 설정에서 미스테리의 요소는 이미 주어진 것이다. 이를 좀더 활용했더라면 완성도는 일단 둘째 치고라도 독자의 몰입도를 높여 좀더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막에, 황무지에 생명력 넘치는 밀림이 펼쳐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근본 지질이 약한 땅 위에 선 캐릭터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을것이다.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지 못하니 하나하나 작가의 손으로 옮겨줄 수 밖에 없을테고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모두 작가의 의도대로만 흘러갈 수 밖에 없었으리라. 이렇게 작품에서 작가는 신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자신의 작품에서 작가가 신이 된다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으리라. 문제가 있다면 독자들에게까지 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바이슬 시티]는 확실히 15세의 나이에 보이기 힘든 예리한 사회 인식이 담겨 있기는 하다. 대범한 상상력에 더해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의 작품을 두달만에 집필했다는 것은 작가의 범상치 않는 필력을 짐작하게도 해준다. 그러나 그 뿐 아직 자신만의 색깔도 보이지 않고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소설로서의 완성도가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작가 '김성령'은 작가로서의 가능성은 결코 모자라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가능성만 가지고 사라져간 작가들이 얼마나 많을까? [바이슬 시티]는 좋은 재료를 가지고 볼 품 없는 작품이 나온 격이다. 훌륭한 장인이라면 길가의 돌맹이를 가지고도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필자는 완성작을 가진 작가들을 높이 평가한다. 완성도가 어떻다든가 재미가 어떻다든가 하는점을 떠나서 하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써 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필자의 입장에서 더구나 전문 비평가는 고사하고 관련 교육도 받아보지 못한 입장에서 하나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필자의 생각의 틀렸을까 심히 두렵다. 무엇보다 부끄럽다. 그러나 처음부터 느낀대로 두들겨 보자고 시작한 리뷰였으니 그저 읽고 느낌대로 두들기려고 노력할 뿐이고, 이번 [바이슬 시티]의 느낌은 앞서와 같다. 다만 산고의 고통끝에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은 작가에게 좋은 말을 써주지 못해 죄송할 다름이다. 작가 '김성령'이 제련된 언어와 완성도로 돌아오기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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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TV를 전혀 보지 않는 편이라 어제 '김어준의 뉴욕타임즈'를 통해 '김용민 막말' 사건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언론의 이런 행태가 이제는 한심함을 넘어 혐오감에 욕지기까지 나온다. 


'김구라' 방송은 천박하긴 할지언정 언제나 사회와 정치를 풍자하는 방송이었다. 김용민의 말들도 듣기엔 혐오스러울 지언정 내용은 일종의 반어법을 사용한 풍자이다. 거기에 대고 인권 유린이니 성차별이니 하고 있다니 웃기지도 않는다. 전체를 듣지 못하고 일부만 방송등을 통해 듣게된 일반인들이 이런 말을 한다면 이해 못할바도 아니다. 그러나 국내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고 수많은 경쟁을 뚫고 언론에 종사하는 이른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이 마치 까막눈인양 방송의 전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듯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김용민을 포함한 4인방의 팟캐스트 방송인 '나는 꼼수다'에서는 수도 없이 우리 MB 가카를 존경한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이건 왜 MB의 안티로 소개하는가? 그들이 김용민을 까는 논리라면 '나꼼수'는 MB 찬양 방송이 되어야 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필자는 욕을 끊었다. 끊었다니 좀 우스운 말이긴 하지만 어쨋거나 고등학교 때까지는 필자도 욕을 접속사로 달고 살던 사람이다. 담배를 끊은 사람이 담배냄새를 더 싫어하듯 필자 역시 이런 욕이나 막말을 들으면 상당히 거북하다. 그러나 그 거북함과 혐오감을 참고 이번 파문을 일으킨 방송의 성격을 생각하면서 전체를 잘 들어보길 바란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정말 성차별과 인권유린, 노인비하발언인지를.


분명 김용민 후보가 한 말들이 욕지기가 나올정도로 더럽고 혐오스럽기는 하다. 그걸 가지고 언론이 까고 있다면 인정할 수 있다. 언론이 비판기능을 상실한채 자극적인 소재만 쫒는것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들 스스로도 그 방송의 이야기가 사실은 인권유린등을 풍자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는것을 알면서도 단지 김용민의 막말만을 강조하면서 그들이 인권유린등을 옹호하고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행태는 완전히 어용 언론이 되어 본질자체를 왜곡시키는 주구 노릇을 하고 있는 형태다. 그 기자란 것들과 언론 PD란 것들은 쪽팔리지도 않나. 뻔히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이따위로 신나게 왜곡하면서 정권의 주구노릇 하는것이. 객관성도 없고 의식도 없고 비판도 없이 그저 자극적인 소재만을 쫒다못해 주구 노릇까지 하는 언론,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조차 망각한 그들이 과연 언론이기나 할까? 


옛말에 모르고 한것은 죄가 아니라고 하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지금 언론이라는 것들의 행보는 알면서도 일부러 하고 있으니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오히려 이런 언론과 정부에 대해 막말을 서슴없이 내뱉을 수 있는 '김용민' 후보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한심한 언론, 언론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언론. 늬들이야 말로 정말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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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있는지도 몰랐던 회색 뇌세포가 굳어버린 느낌이라 아직 리뷰할 책들은 쌓였는데 손구락이 제대로 굴러가 주지를 않네요. 처음부터 수(秀)타는 아니었지만 분당 300타의 경(輕)타만 믿고 달려온지 어언~ 그러니까 어언~ .... 두달밖에 안됬군요. 깨작깨작 리뷰 한편씩 올리면서 시작한 블로깅이... 대따 오래되었거니 느껴졌건만...ㅋ 결국 2달만에 손구락이 무거워저 버렸으니 제 깊이가 얼마나 얕은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군요... 쿨럭...; 뭐, 처음부터 환상같은건 없었으니 좌절도 없긴 하지만서도..ㅎㅎ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그냥 가벼운 기분으로 요 몇달사이 충동구매한 책 자랑질이나..음핫핫~~~ 퍼퍽!!

 

이상하게 공부하고는 담을 쌓은 주제에 책은 놓지않고 꾸준히 읽어온 '오름군'. 속독도 다독도 아닌 주제에 쓸데없이 책 욕심은 많은데다 지난 두어달간 블로깅 한다고 여기저기 눈팅만 많이하다보니 결국 언제 읽을지도 모를 책들만 쌓여버렸군요. 당분간은 책 사지 말아야지 해놓고... 반값이벤트 따위만 보면... '작심 3일'이란 말이 있자나. 결심하고 3일만 지키면 된다는 말이야~! 으하하하~~ 퍼퍽!  

 

 

 

엄청 너저분한 '오름'군의 책장. 그나마 앞 턱에 너저분한 잡동사니를 치워서 그나마 이정도에요..ㅋ 2~3개월 전까지만 해도 태반이 읽었던 책들만 먼지를 덮어쓰고 있었는데, 지름신 강림으로 이제는 태반이 읽히기를 기다리고 있는... 언제 다 읽나...ㅠㅠ;

 

 

 

가장 최근에 지른. 다른거 사러 옥션에 들어갔다가 셋트 도서 반값에 딱 걸려버린 그 책. 어렸을때 친구집의 백과사전을 부럽게만 바라보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은근히 백과사전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예~전에 보고 갖고는 싶었는데 돈이... 돈이...ㅠㅠ 그랬던것이 뚝 짤라 반값! 세권 셋트로 79900원(맞나?). 눈 딱 감고 질러버렸다니까요...ㅋ

 

 

 

 

 

티몬서 처음 구매한 상품. 저 뽀대에 뻑 가서 확 질러버린. 둔기급 두께의 양장인데 화면으로 볼때도 그랬지만 직접 보면 정말 맘에 든다구요. 엄청난 양의 삽화까지... 아직 유아기적 그림책의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한 저에게는 그야말로 보물..ㅋ 4권 셋트로 85000원.

 

 

 

 

 

르몽드 디플로마띠끄라는 뭔가 한 수 있어뵈는 이름에 끌려 구매한 책. 역시 어린시절 백과사전에 대한 동경이 남아있는..ㅋㅋ

 

 

 

그 외 기타...ㅋ 환타지, SF 등을 좋아하다보니 성향이 딱 보이죠. 예전부터 좀 정리된 내용으로 읽고싶던 북유럽 신화에, 추리문학의 조종이라고까지 하는 '에드거 앨런 포' 전집. 그러고보니 예전부터 '포'의 명성은 들어왔는데 이상하게 제대로 출판된 장편집은 없더라구요. 여기저기서 회자되는 작품들을 보면 장편이 없지는 않은것 같은데...쩝. [우울과 몽상]도 단편집이라는..;;

 

 

 

그리고...

 

 

 

 

 

대망의 [아발론 연대기] 8권 박스 셋트! '희망이여~~ 비이~치여~ 아드칸 하느리여~~~!' 로 시작하는 어린시절 TV 애니를 봤을때부터 동경해오던 '아더왕' 이야기가 총 망라되어 있다니, 거기다가 반값이벤트까지... 그래! 사는거야! 카드결재일은 아직 한달이나 남았어! 삶은, 질르는거야~~ㅅ!

 

요즘에는 이상하게 신청하는 서평이벤트마다 당첨되버리는 바람에 더욱 우리 애기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네요. 언제 다 읽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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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3-3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넘 부럽네용^^
백과사전은 읽는 것도 버리는 형편이라 그닥 미련은 없지만 양장 4인방은 저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군요ㅜ.ㅜ

휘오름 2012-03-31 09:39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흐~ 자랑질 성공인가요..^^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