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엠' 열두 개의 구역에서 남녀 한 쌍씩을 뽑아 단 한명만이 살아남는 게임 '헝거게임'의 나라다. 과거 반란에 대한 징벌로 시작한 이 게임은 이제 국가적 축제가 되었다. 게임 참가자에게는 전속 디자이너가 붙어 최대한 멋있고 아름답게 꾸며주고 퍼레이드에 인터뷰까지 최상의 환경이 주어진다. 국민들은 열광하고 심지어 '스폰서'까지 붙는다. 4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제물이 되는 그 순간까지... 그러니까 요약하면 이런거다. 매년 23명의 아이들의 목숨을 댓가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오멜라스라는 도시가 있다. 왕도 없고 노예도 없다. 칼을 휘두르지도 않는다. 주식 시장이나 광고, 비밀경찰, 폭탄도 없다. 그렇다고 무미건조한 도시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들에게는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들이 있고 아이들은 행복하게 자라난다. 마약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몇 시간 동안 꿈꾸는 듯 한 나른함을 안겨 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한 섹스의 쾌락과 함께 마침내는 깊은 우주의 신비와 비밀을 담은 황홀경을 선사하면서도 중독성이 전혀 없는 '드루즈'가 주어진다. 좀 더 소박한 취향을 가진 이들에게는 맥주도 있다. 이 즐거운 도시에 그밖에 무엇이 필요할까? 그 즐거운 도시의 아름다운 공공건물들 중 하나에는 지하실 방이 있다. 창문도 없는 그 방에는 거미줄 쳐진 지하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빛이 문틈으로 간신히 들어올 뿐이다. 가로로 두 걸음, 세로로 세 걸음 정도인 그 방에 어린아이 한 명이 앉아 있다. 아이는 옥수수 가루와 기름 반 그릇으로 하루를 연명한다.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아이는 자신의 배설물 위에 계속 앉아 있었기 때문에 엉덩이와 허벅지는 짓무르고 곪은 상처로 가득하다.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가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들의 행복, 이 도시의 아름다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 아이들의 건강, 학자들의 지혜로움, 장인의 기술, 그리고 심지어는 풍성한 수확과 온화한 날씨조차도 전적으로 그 아이의 지독하리만치 비참한 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런 나라 따위 개나 줘버리라지.
 
[헝거게임]의 예고편만 봤을 때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일본 만화 '배틀로얄'이 떠올랐다. 그러나 142분의 긴 런닝타임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필자를 사로잡은 [헝거게임:판엠의 불꽃]은 보는 내내 '어슐러 K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생각나게 했다.
 
만약 필자가 '판엠'에 살고 있다면 어떨까. 필자의 성격상 아마도 십중팔구는 그들처럼 '헝거게임'에 열광하고 그 체제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리라. 하지만 필자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래서 감사한다. 적어도 평화의 댓가로 23명의 무고한 목숨을 요구하는 나라에게 그따위 평화는 개나 줘버리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볼까 말까 꽤 망설였다. 워낙에 SF나 판타지를 좋아하는데다 독특한 소재의 영화라면 사족을 못 쓰는지라 예고편을 봤을 때부터 콕 찍어놓긴 했는데 지난달에 마찬가지로 찍어놨던 [존 카터]가 그야말로 형편없었던 데다가 네이버 평점마저 애매한 7점대 후반이다 보니 이거 또 B급 블록버스터의 요란한 빈 수레가 아닐까 의심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겠는가! 결국 재개봉한 [타이타닉]과의 사이에서 선택하게 된 [헝거게임:판엠의 불꽃]은 대박이었다.
 
활을 당기는 모습이 이유 없이 요염한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압권인 것은 '판엠'의 세계관이었다. 원작을 아직 보지 못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영화는 지루한 설명이나 구차스러운 변명 없이 '판엠'의 세계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어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탄탄한 세계에 대한 기대와 상상력을 더해주었다. 더불어 영화 속 '헝거게임'의 모습도 매우 현실적인 느낌이었던 것이, 비록 화려하고 자극적인 액션은 없었지만 자연 속에서 생존게임이라면 실제로 저렇게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작위적인 영웅주의도 없고 어설픈 대사의 치장도 없다. 예고편에서 보면 주인공이 활 하나 들고 신나게 쏴 잡아댈것 같이 보여주는데 그런 장면 없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극한의 상황에서 말없이 행동으로 우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없음'들이 게임의 현실감을 살려주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주인공의 로맨스가 좀 개연성이 없이 시작해서 설득력이 부족한 것과 클라이맥스에서의 강렬함이 다소 부족한 정도. 어떻게 보면 이게 결코 작은 부분이 아닌 것이 '헝거게임'에서의 생존이 이후 이야기의 단초가 되는 것 같은데 이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주인공의 로맨스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로맨스가 클라이맥스와도 이어지는데 이 장면에서 뭐랄까, 극에서의 정점을 꽝!! 하고 찍어주는 그런 폭발력과 힘이 다소간 모자란 느낌이다.
 
극의 결말은 자연스럽게 다음의 이야기를 예고하면서 마무리 하게 되는데 비록 상업주의의 냄새가 없지는 않으나 노골적으로 '인기 있으면 돌아오고'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는다. 필자는 진심으로 '판엠'의 다음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헝거게임:판엠의 불꽃]은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판타지 영화와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영화다. 화려한 액션과 죽고 죽이는 살벌한 게임을 보고 싶은 분이라면 피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판엠'의 거대한 세계, 무고한 아이들의 목숨으로 연명하는 역설적인 세계를 보러 오시라. '제니퍼 로렌스'의 뛰어난 연기는 보너스! 

 

"왜 우승자를 뽑는지 알아? 벌이라면 모두 죽이는 게 더 효과적인데 말이야. 쉽고 빠르고. 그런데 왜 한사람을 남길까? 희망이야. 두려움보다 강한 게 희망이야. 하지만, 그 희망이 커지도록 놔두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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