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그리고 무한 - 칼링가 상 수상자 대표작 김영사 모던&클래식
조지 가모브 지음, 김혜원 옮김, 곽영직 해제 / 김영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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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그리고 무한]은 빅뱅이론의 창시자 조지 가모프가 수학과 과학의 기본 개념을 통해 '과학이란 무엇인가? 우주의 생성 원리는 무엇인가?'에 대해 일반 대중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소개할 목적으로 쓴 책이다. 총 4부로 나누어진 책은 1부와 2부에서 수 체계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여 3부, 4부의 미시우주와 거시우주를 본격적으로 이야기 한다. 물리학의 기초적인 전체지형도를 그릴 수 있게 하여, 현대물리학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기 전 기초필독서로서의 역할과 가치를 지닌다.

 

어디에서 그리고 무슨 내용으로 만났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필자는 '조지 가모프'의 이름을 들어봤다. 평소 SF를 좋아하다 보니 기초 과학에 대한 개념을 SF를 통해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는 편인데, 이런 SF 소설이나 영화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새삼 대학이라도 가서 전공 강의를 수강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일반교양의 수준에서 좀 더 기초 과학의 개념을 배울 수 있는 책을 찾던 중에 예스 24 리뷰어 클럽에서 서평 이벤트로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신청하였는데 감사하게도 서평단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필자는 이 책 [1,2,3 그리고 무한]의 내용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리뷰어 클럽 내에 '난쏘공(난해한 책을 향해 쏘아지는 공격적인 리뷰)'란이 있는데 필자의 기준으로 이 책은 '난쏘공'에 분류되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이것은 책이 어렵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필자의 수준이 문제인듯 하다. 책 자체가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서로 쓰여졌고 실제 독자의 평도 쉽고 술술 읽힌다는 평인데다 직접 읽어본 느낌도 여러 재미있는 일화들과 함께 저자가 손수 그린 많은 그림들까지 더해서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는듯 한데 왠지 필자는 전체 흐름을 매끄럽게 타지 못하고 계속 겉도는 기분으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특히 중고 수준의 간단한 공식들이 등장할 때마다 고등학교 때 수학하고 물리공부를 좀 열심히 할껄 하는 후회가 마구 밀려든다.

 

책으로만 보자면 두툼하면서도 단단하게 잘 짜여진 양장으로 멋스럽다. 양장이라면 이렇게 나와 줘야 한다는 느낌이랄까? 내용 또한 위상 기하학, 4차원 세계, 상대성 이론, 원자화학, 핵물리, 엔트로피, 유전자, 진화, 우주론등 과학 전반에 대한 폭넓은 저자의 지식을 기반으로 수의 개념부터 공간, 미시우주, 거시우주로 점차 확장되는 식으로 전반적으로 논리적으로 진행되고 무엇보다 저자가 손수 그린 수많은 그림들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50여 년 전에 쓰여진(1948년 초판 1961년 개정판) 책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출판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알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500여 페이지의 잘 빠진 양장의 정가가 1,4000원이니 가격까지 착하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우수한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인 필자의 문제다. 이번 주에 직장을 옮기게 된 필자의 어수선한 주변 상황을 핑계해 본다. 조만간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한 번 느긋한 마음으로 도전해 보리라 마음먹으며 부족한 리뷰를 마무리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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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찔한 경성 - 여섯 가지 풍경에서 찾아낸 근대 조선인들의 욕망과 사생활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 / 꿈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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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OBS 특별기획 프로그램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에서 우리 근대의 변화상을 담은 여섯 가지 주제를 골라 엮어낸 책이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 중에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전체 흐름을 따라가는 거시적 관점과 어떤 사건과 이야기를 통해 시대상을 파악하는 미시적 관점이 있다고 했는데 [이토록 아찔한 경성]은 전형적인 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한국의 근대화는 일제 강점기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한홍구 교수님의 [특강]에서 교수님 자신이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서는 원로급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만큼 실제적으로도 그리고 정서적으로도 우리의 근현대사에 깊이 접근하는 것에 일종의 터부가 있었음을 농담 섞인 말로 표현하신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런 프로그램과 책이 나와 주는 것은 그만큼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는 TV 방영분중 총 6가지 주제를 정리해 놓았는데 살펴보면, 1부 '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에서는 당시의 여러 광고를 보여주며 그 시대의 소비문화를 엿볼 수 있다. 2부 '대중음악으로 본 근대의 풍경'에서는 당시에는 어려운 노래였다는 트로트의 기원과 변천사를, 3부 '사법제도로 본 근대의 풍경'은 사법제도를 통해 일본의 수탈 중심의 식민지 사관을 잘 보여주며 나아가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식민지식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꼬집고 있다. 4부 '문화재로 본 근대의 풍경'은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삶을 위주로 문화재의 수탈과 환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고, 5부 '미디어로 본 근대의 풍경'에서는 신문, 라디오를 중심으로 당시의 언론 환경과 문화 그리고 일제에 이용당한 이야기들을, 마지막 6부 '철도로 본 근대의 풍경'에서는 철도가 놓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의 애환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광고와 사법 그리고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의 수많은 광고 사진들과 문구들이 상당히 재미있게 느껴졌을 뿐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심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법 제도 편은 단순이 일본의 수탈을 목적으로 한 식민지 사관뿐만 아니라 일제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작용이 지금에 사법 시스템에까지 이어져 우리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미디어, 신문과 라디오라는 언론 매체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지배의 도구로 사용하려던 목적 때문에 억압받고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언론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는 듯 하니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느낌이랄까.

 

기본적으로 TV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어서 였는지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는 반면 아무래도 차근차근 순서대로 문제를 짚어나가고 서술해 나가는 느낌보다는 핵심만 요약해서 이야기하는 느낌이라 다소 아쉬웠는데 각 챕터 말미에 '역사토크 만약에'를 통해 문답형식으로 여러 가지 역사적 가정을 통해 이러한 부분들이 보완된 느낌이었다.

 

'비용'을 이야기할 때는 '이익'을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 분명 일제 강점기가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용에 이익이 따라가듯 일제의 근대화에 대한 공을 이야기 할 때는 우리가 지불한 '비용'또한 함께 이야기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책의 서두에 실린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느리게'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우리가 좀 더 '빨리' 배우고 역사를 통해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 [이토록 아찔한 경성]같은 책과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와 같은 다양한 관점의 역사 프로그램들이 많이 만들어 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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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포럼, 자본주의를 버리다 - 포스트 캐피털리즘: 다시 성장이다
매일경제 세계지식포럼 사무국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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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 포럼'은 매년 초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으로 말하는 것으로, 세계 각국의 정계(政界)·관계(官界)·재계(財界)의 수뇌들이 모여 각종 정보를 교환하고, 세계경제 발전방안 등에 대하여 논의한다. [다보스포럼, 자본주의를 버리다]는 2012년 '다보스포럼'을 '매일경제'에서 취재하여 요약한 보고서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실제 포럼에서도 그리고, 이 보고서에서도 자본주의의 위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경제 위기와 이에 대한 타개법뿐만 아니라 미래 기술과 대체 에너지, 환경 문제 등 다방면의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자본주의'가 위기라고도 하고 아직 '자본주의'의 위기까지는 아니라고도 한다. 무엇이 옳은지 혹은 옳다고 느껴지는지 필자는 모르겠다. 우선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본질적인 정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자본주의 국가인 만큼 피상적인 정의라도 말할 수 있어야 마땅할 텐데 막상 이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정의해 보려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다. 어쨌거나, '자본주의'가 뭔지도 모르게 되어버렸으니 이것이 위기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경제가 위기라는 것은 알겠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시사문제에 무관심한 채 신문도 뉴스도 거의 보지 않는 오타쿠 타입의 필자인지라, '도대체 왜 경제가 위기인가?'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필자와 같이 둔감하고 무관심한 사람이 위기를 느끼고 있다면 이거야말로 심각한 상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2012년의 '다보스포럼'에서는 이러한 경제 위기가 화두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출발을 한 해의 경제전망과 함께 시작하는 포럼에서 경제 전망 대신 첫 프로그램으로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토론회(Debate on Capitalism)'가 제시되었고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우리는 죄를 지었다. 이제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할 때가 됐다"고 발언했으며, 돈 놓고 돈 먹기의 수치놀음으로 전락해버린 '대마불사(Too big to fail)'를 부르짖던 금융업계의 도덕 불감증을 질타하기도 했다.

 

허핑턴포스트의 '아리아나 허핑턴'은 "아담 스미스가 자본주의를 처음 만들 때는 도덕적 감성과 윤리적 배경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지금 자본주의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이 두 가지 요소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라며 다시 아담 스미스 시대의 국부론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금의 자본주의와 '아담 스미스'가 말한 자본주의에는 크게 두 가지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 윤리적 기반이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그럴 만하다'라고 보고 그에 따른 정당한 보상도 주어져야 한다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경쟁이 공정하거나 윤리적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고민은 2차적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먼저이고, 경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그 다음이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가 말한 자본주의는 순서가 거꾸로다. 건강한 경쟁이 이뤄지는 사회적 기반이 이뤄져야만 건강한 자본주의가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자유주의 만능'이라는 철학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익만을 추구하면 아비규환(阿鼻叫喚)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제까지 자본주의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가 주장했던 자본주의는 이런 형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 역시 "아담 스미스도 '보이지 않는 손'이 반드시 공익을 보장한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이 자본주의를 고장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국부론'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어쨌거나 이렇게 근본적인 '도덕(道德)'을 이야기하며 경제 위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보고서가 진행된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이 책은 '요약 보고서'라는 것이다. 상당히 방대하고 전문적인 포럼의 내용들이 비교적 간략하고 쉽게 정리되어 있어 읽기 쉽고 흐름을 파악하기 좋은 반면 자세하고 친절하게 각 주장의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반지식을 요구하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중국의 경제성장이 8%면 괜찮고 7%면 위기라는데 어째서 그러한지, ECB(유럽중앙은행)가 은행에 장기적인 유동성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데 대체 유동성 지원은 뭐고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의 내용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이건 필자의 경우고 전반적으로는 치우치지 않은 시각으로 요점정리가 잘된 보고서로 경제 문제뿐 아니라 '청년실업' '건전한 소비'등의 사회 이슈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 '웹 앱(Web App)'등의 미래 기술, '대체 에너지' '바이오 에너지' 같은 에너지와 환경문제까지 폭 넓게 다루고 있어 세계적인 흐름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으니만큼 경제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읽어 볼 만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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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894년 여름 -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의 여행기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 지음, 정현규 옮김, 한철호 감수 / 책과함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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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스트리아 여행가인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이 1894년 여름에 조선을 다녀가 1895년 독일에서 출간한 여행기를 번역한 것으로, 서양인의 눈으로 본 개항기 조선의 사회, 문화 보고서다.

 

 

 

이렇게 꽤나 기대감을 갖게 한 책은 그러나 총칼의 무력에 기반한 우월감에 젖어 있는 오만한 유럽인의 편향적이고 왜곡된 시선이 전면에 흐르는 매우 실망스러운 여행기였다. 여행기라는것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것을 적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여름 한철 고작 몇개월로는 절대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일들이 마치 직접 보고 겪은듯이 묘사되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은 일부분 뿐이고 태반이 자료를 참고하거나 다른 이에게서 듣고 적은 것이다. 더구나 어디서 어디까지가 들은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자신이 겪은 일인지 그리고 느끼고 생각한 것인지 구분이 안된다. 전부 다 자신의 경험처럼 쓰여져 있는데 여기서부터 저자를 믿을 수 없다.

 

기술의 발달로 과거만큼 세계 각국의 문화적 차이가 크지 않은 현대에도 타국에 잠깐 들른 정도로 그 나라를 이해한다고 말하면 어불성설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100여년전의 외국인이 한철, 그것도 서울에서만 체류한 것으로 우리나라를 제대로 볼 수 있을리 만무하니 그의 여행기에서 보이는 다양한 오류는 어느 정도 감안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을 적어야 하는 여행기에, 그것도 조선을 다룬 서적이 타인의 보고로 된 책밖에 없어서 직접 방문 했다는 주제에 거의 태반이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는 것은 기본적인 성실성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더구나 저자는 제대로된 역사인식도 없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히 교양이 있거나 똑똑해 보이지도 않는다. 비록 여행기 곳곳에서 꽤나 날카로운 인식과 풍부한 견문이 엿보이고 제법 세세한 사항을 성실하게 기록한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저자가 참고한 자료와 이야기 대부분이 조선 현지인이 아닌 중국과 일본 그리고 얼마 안되는 조선 주재의 유럽 영사들에게서 들었다는것을 확연히 알 수 있는데, 이렇게 외국인의, 그것도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중국과 일본 그것도 아니면 총칼과 대포로 쇄국을 뚫고 들어온 유럽 열강의 편향된 시각으로 색칠되어 있는 자료를 기반으로 한 이 여행기에 신뢰가 갈리 없는 것이다. 애초에 편견에 가득찬 잘못된 여행가이드를 읽고 여행을 한 셈이다. 그것도 아무 비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데다가 여행 자체도 매우 짧은 기간에 극히 일부의 지역만을 다녀갔을 뿐이니, 저자가 여행 경험만 많을 뿐 얼마나 한심한 헛똑똑이인지 이로써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스운것은 저자가 끊임없이 우리나라를 미개한 나라로 표현하는 것이다. 중세부터 시작해서 19세기까지 페스트로 인해 수천만의 사망자를 기록하고, 목욕 문화 자체가 없어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가리기 위해 향수를 개발한 동네에서 온 주제에 조선의 거리와 집들이 지저분 하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 조선의 기후환경도 고려하지 못하는 한심한 소견으로 일본 집들의 개방성을 칭찬하고 조선의 집들은 음침하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나라에는 귀족의 부패도 없고 여인들의 정략결혼도 없다는듯 조선 관료의 부패와 왕가 외척세력과 정략결혼을 비난하고 있다. 중세 봉건제도 하에서는 영주가 초야권까지 있던 동네에서 그리고 레이딘 퍼스트라는 말로 교묘하게 성차별을 하는 자신들은 인식하지도 못하고 조선의 여인들이 노예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딱 그꼴이다.

 

물론,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당시 조선의 모습이 전부 잘못되었다거나 자랑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는 세계적으로는 대 격변기이자 조선 왕조로서는 몰락의 시기였다. 누가 보더라도 당시 조선의 모습이 그리 보기 좋지는 않았을텐데, 남의 나라에 강도처럼 총칼들고 쳐들어와 그 몰락에 한축을 담당한 유럽인에게 이러쿵 저러쿵 듣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여행기 전반에 들어내고 있는 유럽의 우월성 이라는 것도 생각해 보면 고작 총칼에 의지한 힘자랑일 뿐이다. 저자 스스로 생각하듯 그네들의 문명이 대단해서가 아닌 것이다. 자기 나라 배때기 불리겠다고 주권국에 쳐들어가 근대화를 빌미로 식민지화하고 착취하고 말 안들으면 쏴죽이는 그네들 이야말로 야만인인 것이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수백만을 학살할 나라 사람에게 미개인 취급 받는것이야 말로 개그가 아니고 무엇이랴. 저자의 우월감의 근원은 총칼을 기반으로하는 무력일 뿐인 것이다.

 

왜 출판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이 한심한 여행기에서도 생각할 거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 여행기를 읽으며 몰락하는 왕조의 모습을 생각했다. 역사를 연구가의 입장에서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각 왕조의 끝이 서로 다른 모양일지 모르겠지만 일반인인 필자가 읽어본 몇몇 역사 교양서에서 본 왕조의 끝은 어느나라 어느왕조를 막론하고 서로 그림으로 그린 듯 똑같았다. 지도자의 무능과 향락, 외척과 귀족 권력의 극대화, 당연한 듯 이어지는 부정과 부패, 격심하게 벌어지는 계층간 격차...등등, 판에 박은듯 했다. 고등학교 시절 한 국사 선생님은 이러한 왕조의 몰락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나라가 망할 때가 되어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운명론’과 이런 일들로 인해 망하게 되었다는 ‘결과론’의 시각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어느 것이 정답인지, 어떤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왕조가 아닌,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이러한 왕조의 몰락기의 양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름아닌 세계 패권국이라는 미국이다. 현대판 경제 카스트라고 할 수 있을만한 극심한 계층 격차와 부의 편중, 금력과 무력을 동원한 무리한 확장정책,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등 미국이라는 이름만 왕조로 바꿔주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만큼 훌륭하게 전제 왕조 말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다녀갔던 조선도 이러한 왕조의 말기에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말기의 현상이 조선에도 나타났음을 이 여행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데 특히 이번 여행기를 읽으며 안타까웠던 것은 여행기에 실린 고종 임금님의 승정원 일기를 읽으면서였다.

 

나의 생각과 뜻은 밤낮으로 백성과 국가의 안녕을 향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하길 원한다.

 

도처에서 나는 몰락과 가난을 목격하고 있다. 백성들은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커다란 짐이다. 왜냐하면 나는 선조들이 걸어온 길을 이어서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법 질서가 혼란을 겪게 되었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상벌은 아무 효과를 내지 못하고, 거짓말과 위조가 판을 치고 있다. 재정 담당 부서와 군사 담당 부서에서는 주도적인 원칙이 무시되고 있고, 관리들은 그 자리를 감당할 능력이 없으며, 모든 것이 퇴보하고 무너지고 있다. 관리들은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최고위 관료들조차도 더러운 소유욕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이들은 부하들을 다루는 데는 너무 관대하다. 그들이 의무를 위반해도 처벌하지 않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오늘만 괜찮으면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러니 국가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나는 너무나도 슬프고 부끄럽다.  총체적인 개혁과 단호한 조처 없이는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조정(삼정승)’의 의무다. 이를 위해 이들은 민간 행정과 재무 행정 그리고 장군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이들이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정확히 보고를 해주길 원한다. 말하는 것이 의무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심각한 죄를 짓는 것이다. 하지만 말을 하기는 해도 듣는 사람이 없다면 그 죄는 내게 있다.

 

내 말을 명심하라! 그대들에게 의무를 다하라고 두 번 요구하지 않기를 바란다!

 

 

- [승정원일기], 고종 31년 갑오(1894) 6월 6일(양 7월8일)

 

이러한 인식을 가진 나랏님이라면 적어도 무능과는 거리가 멀지 않았을까? 심지어 여행기 내에서 저자가 반란군으로 묘사한 동학혁명을 이끌었던 전봉준 장군의 글에서조차 “현재의 주인인 우리의 왕은 관대하고, 공평하며, 자비롭다. 천지신명이 그가 깨끗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정직하고 근면한 신하들이 그를 보좌했다면, 우리는 요순의 덕치와 문제, 경제 시대의 치세를 누렸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끝에는 말할 수 없는 비장함이 있음인데 한 나라의 몰락임에 말해 무엇하랴! ‘운명론’이 옳은지 ‘결과론’이 옳은지는 알 수 없으나, 이와 같은 나랏님을 갖고서도 왕조의 몰락을 막을 수 없었다면 이것이 결코 단순한 원인으로 시작하고 쉽게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알 수 있으리라.

 

흔히 말하듯 과거는 미래의 열쇠이다. 더구나 우리의 역사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아니라 ‘아산지석(我山之石)’인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지나간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고 미래를 여는 열쇠로서 되돌아 봐야할 때라는 생각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교훈도 없고, 독특한 시각도 없고, 객관적 사료의 가치도 떨어져 보이며, 무엇보다 재미도 없는, 도대체 왜 출판되었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이 여행기에서 그나마 우리가 가졌었던 나랏님이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었음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간만에 먹여보는 제멋대로 별점은 재미있다에 1, 외형 및 편집에 2, 소장가치에 0 대충평균 1점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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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거짓말
이유리.임승수 지음 / 레드박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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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에 맞춰 괴담(이었으면 좋았을!) 이야기나 늘어놓겠거니 지레 짐작으로, 처음에 그렇게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읽기 시작한 [국가의 거짓말]은 참으로 충격적인 진실들을 담고 있었다.

 

반값 등록금, 4대강 사업, 부동산 정책 등 우리의 불편한 진실이라고 하는 것들이야 다 우리 위대한 가카를 음해하기 위한 음모(였으면 좋았을!) 괴담(이었으면 좋았을!) 이야기일 뿐이다. 정부가 등록금 대주면 대학생들 공부 열심히 하고 공짜 정신이 머리에 깃들면, 장학금 타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다 사라지고, 세금으로 부실대학 사학 재단의 배만 불려주게 된다. 더구나 정부에 돈이 어디에 있다고. 5년간 홍수 피해 없던 4대강의 홍수를 막고, '중장비'들의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자연계 파괴는 눈물을 머금고 감수해야 하는 사업비만 22조에 매년 유지비만 1조원이 나가는 4대강 삽질을 해야할 판에 자기가 출세하려고 대학 가는 학생들에게 줄 돈이 어디에 있다고 반값 등록금 운운하는 것인가. 대학 진학률이 80%라서 이제 필수 교육 아니냐고? 부모님들은 등록금 대느라 등골이 휘고, 학생들은 아르바이트 하느라 입시보다 치열한 학점경쟁 취업경쟁에 뒤쳐진다고? 대학 안가면 될 거 아닌가. 가카 다 해보셔서 잘 아시는 것이다. 국민을 위해 고심하고 계신 가카께 가해지는 이런 음해성(이었으면 좋았을!) 이야기들이야 이미 익숙한 일이니 사뿐히 즈려밟고 넘어갈 수 있었으나 뒤이어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무시하고 넘기기에는 너무나 참혹하고 참담한 이야기들이었다..

 

내가 발딛고 사는 사랑하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민간인 20만명을 학살한 일이 있다고 한다. 6.25 전후로 벌어진 일이라고 해서 전쟁의 혼란중의 벌어진 일이라 착각하면 안된다. 해방후부터 6.25 전까지 ‘이승만’ 정부의 공식 지시로 민간인을 ‘학살’한 것이다.

 

2차대전 막바지, 1945년 4월 1일 시작된 82일간의 오키나와 상륙전에서 오키나와 주민 14만 9000명 일본군 7만 5000명 미군 1만 4000명 총 24만명 사망자가 발생했다. 더구나 14만여명의 민간인 사망자는 폭격이나 교전으로 죽은것이 아니다. 대부분이 자국군의 손에 죽거나 조국의 ‘자살 권고’에 자살한 것이다.

 

이상은 전쟁의 부수적이거나 부분적인 인명 피해일 뿐이다. 이렇게 일부 국지적인 피해만으로도 도시하나의 인구가 사라졌다. 이것만으로도 너무 엄청나서 현실감이 없는데 2차 대전 전체 사망자 수는 천만 단위에 이른다고 한다. 고작 몇 년만에 일국을 세울 수 있는 인구가 죽어나간 것이다. 오키나와 사건의 말미에 이 책의 저자중 한 사람인 ‘이승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끔 글로 간단하게 어떤 사건을 정리하는 것이 너무나 주제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오키나와 사건을 떠올리며 쉽게 쉽게 자판을 두드리기에는 너무나 힘겹고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누가 뭐라 하든 인간의 발명품 중 최악은 전쟁임에 틀림없다.”

 

얼마전에 있었던 2백년 만의 최대 재해라는 아이티 지진 피해자가 부상자 포함 약 50만이다. 이제 1,2차 세계대전 이라고 하지 말고 1,2차 세계재앙 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사람 목숨을 천문학적 숫자로 카운팅 하게 만든 전쟁이 거짓말로 시작되었다면?

 

“선전이란 본질적으로 - 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 일종의 예술이다. 그리고 선전원은 민중 심리를 조종하는 예술가라 말할 수 있다. 선전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매일 매시간 민중의 맥박에 귀 기울이고 어떻게 맥박이 뛰는지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맥박에 맞춰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 괴벨스 -

 

이러한 선전의 천재 괴벨스는 신 발명품인 ‘라디오’를 사용해 국민을 상대로 제대로 사기를 친다. 이렇게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의 막이 올라간 것이다.

 

“자본주의는 전쟁을 먹고 자라난다. 전쟁의 형태를 취하든 무장 평화의 형태를 취하든, 군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적자이자 논리적 귀결일 뿐이다.” - 로자 룩셈부르크 -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은 9.11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 제조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쳐들어간 ‘부시’ 정권을 마치 미리 내다보고 있는듯 하다. 왜 ‘미국’이 아니라 ‘부시’ 정권이냐고? 세계 제2의 산유국 이라크 침공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것은 ‘미국’이 아니라 ‘부시’와 그 일당들이니까. 이런거 보면 ‘부시’는 우리 가카의 롤 모델이 아니었을까 하고 심히 추정되는 바이다.

 

생체 실험은 어떤가? 마루타로 유명한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731 부대 이야기냐고? 그렇지 않다. 전 세계 패권국으로 국제 경찰을 자칭하는 정의로운 ‘미국’의 이야기다. 1932년부터 40여년간이나 남부 지방에서 흑인들의 매독을 고쳐준다는 거짓말로 시작된 매독 생체 실험의 이야기이자 HIV 양성 고아 들에게 독극물이나 다름없는 에이즈 약제를 강제로 주입하고 있는 현재 ‘미국’의 이야기이다.

 

[국가의 거짓말]의 총 4부로 나뉘어진 스물 세개의 이야기는 이렇게 믿기 힘든 사건들의 실체를 국가의 거짓말들과 팩트를 바탕으로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쉽고 흥미 진진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국가가 얼마나 내 삶에 속속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야말로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참담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다.


3부까지는 그나마 지난 일들을 다루기 때문에 대부분 진실이 밝혀졌거나 각국 정부가 이미 인정한 내용들로 비록 믿기 싫고 힘든 내용이라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난 일인 것이다. 그러나 4부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들로 필자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4부의 이야기는 타이틀만 보면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을 거의 음모론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아직 해당 기관이나 정부가 부정하고 있어 음모론으로 치부되고 있을 뿐 이미 음모론의 수준은 예전에 뛰어넘은 팩트와 논거를 가지고 있다. 차라리 이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들은 그냥 음모론이었으면 싶다. 진심으로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 괴벨스 -
“모든 진실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째는 조롱이고, 둘째는 거센 반발이며, 셋째는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극과 극은 과연 서로 통하는 것일까? 나치의 선동 책임자가 말하는 거짓과 위대한 철인이 말하는 진실. 양 극단에 있는 두 화자들처럼 양 극단에 놓여있는 거짓과 진실이 묘하게 닮은 꼴인것은 그저 우연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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