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진경문고 5
정민 지음 / 보림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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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대단하다. 이 책을 읽은 후 내 입에서 나온 맨 처음 감상이다. 정민 선생님이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자식들을 위해 썼다고 서문에서 밝혔듯이 마지막 장까지 책 전반에 걸쳐 아버지다운 자상함이 스며있었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한시를 좋아한다는 말을 섣불리 꺼낼 수 없었던 터에 정민선생의 책은 한시를 대중에게 보급하는데 일조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한시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 주었을 것이다.

정민선생님의 아들 벼리는 초등학생이고 이 책의 분류도 초등학교 고학년을 겨냥했다. 그래서 책 표지도 다소 어린이책같은 분위기이다. 그러나 문학에 특별한 감성을 가지지 않은 아이라면 초등학생에겐  버거울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책이 그러하지만 특히 시는 글자를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중학생 이상은 되어야 한시에 대해 깊이 있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민선생님은 청소년과 성인들의 손목을 잡고 한시감상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기초지식부터 안내하였다. 비단 한시에만 국한되는 것이아니라 詩, 나아가 문학 이해의 원론을 제시하였다.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다 보여주지 않는다][간결한 것이 좋다][시는 그 사람과 같다]등 그의 목소리에 차분히 귀를 기울이면 시(또는 문학)를 보는 눈이 열릴 것이다. 이이의 [산속]에서는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 가 길읽은 나그네로 하여금 절의 위치를 알려주어 안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산속 / 이이

약초캐다가 어느새 길을 잃었지

천 봉우리 가을 잎 덮인 속에서.

산 스님이 물을 길어 돌아가더니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일어난다.

 

시에 젖어 있다보면 천년의 시간 장벽을 뛰어넘어 옛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다. 당송의 시도 실렸지만 특별한 재미는 우리 조상들의 시에서 토속적인, 한국적인 우리 고유의 심상에 젖을 수 있다는 점이다. 분주하지 않고 정적이며 또 그 가운데 면면히 흐르는 우리겨레만의 멋과 기상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산수의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잘 표현하고 있어 신토불이란 말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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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5-01-2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느낌표에서 선정해 주었죠? 이상하게 그 곳에서 선정해 주면 안 읽게 되는 묘한 반발심이 있어서 여지껏 못 읽었네요. 결국 읽고나선 정말 좋은 책이구나. 진작에 읽을 걸 하며 읽은 책이 꽤나 되면서... 일단 보관함에 넣어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추천과 함께 Thanks도 함께 눌러요. 제가 이 책을 사게 되면 님에게 땡스투 마일리지가 돌아갈 거예요. 저도 한시 감상을 하고 싶네요.

진주 2005-03-26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의 댓글을 이제사 보게 되네요. 제가 쓴 리뷰지만 왜 이렇게 어렵게 썼나 싶은 생각도 마구 들구요...제 리뷰는 허접해도, 책은 아주 좋은 책이랍니다. 저는 벌써 수업에서 세 번째로 이 책을 사용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중1 수업과 6학년 수업 등 에서도 한 번씩 더 쓸 계획을 하고 있어요. 참 괜찮은 책입니다. 지금쯤은 미네르바님도 이 책을 읽으셨겠네요.
 

/독서토론/

도요새에 관한 명상

저자 : 김원일

발표: 이재성

2001. 11. 15.


▶ 작가 소개:

1942년 경남 김해 진영에서 출생하여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서라벌예대, 영남대 를 졸업하였으며 1966년 매일신문에 <1961.알제 리>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현대문학 상, 한국일보 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우경문화예술상 등을 수상.

1966년 등단이래 비중있는 작품들로 문학적 위치를 다져온 중견작가의 중단편전 집 총 5권, 30여 년 문학 인생의 발자취를 발표순 에 따 라 수록했다. <김원일 중단편전집> 은 6.25 전쟁으 로 말미암은 역사의 비극과 가족사의 아픔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주로 발표해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김원일 씨의 중단편 이 총망라된 다섯 권 짜리 전집이 다.

훼손된 가족사와 당시의 사회구조 속에서 소외된 민중의 삶을 그려내는 데 천착 해 온 작가의 문학세계를 정리한다는 의미를 지니 는 이 전집은 김원일 문학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장편소설 <노을>에서 <불의 제전>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 온 중견 작가 김원일 씨는 중단편이 보여주는 완결미, 구성의 함축성, 문자의 정확성 등이 결 국 후반기에 쓰여진 많은 장편소설의 밑거름이 되 었 다고 하면서, 이번 전집의 세밀한 개작작업을 통해 주 제는 그대로 살렸으나 문장의 난맥상, 구성의 미흡함 등을 나름대로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 전집은 장편소설만을 발표해 온 작가의 중단편들을 한자리에 모아 그의 문학 세 계의 변화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마 련한다 는 의미 외에도 전 문학 생애 동안 분 단문제를 소설의 화 두로 삼아온 작가 나름의 문학적 위치와 그 소설 행간 에 숨어 있는 작가의 체험적 삶이 어떻게 형상화되었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김원일 문학의 참맛을 음미해 볼 수 있 는 좋은 계기 가 될 것이다.

 

제1권 <어둠의 혼>, 제2권 <오늘 부는 바람>, 제3권 <도요새에 관한 명상 >, 제4권 <잃어버린 시간>, 제5권 <마음 의 감옥>

저서로는 『노을』『바람과 강』『마당 깊은 집』『겨울 골짜기』『늘푸른 소나 무 』『불의 제전』『어둠의 혼』『마음의 감 옥』『사랑하는 자는 괴로움을 안다』등이 있 다.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김원일 문학의 두 줄기 큰 계보인 <불의 제전1~7>과 <늘푸 른 소나무6>에 가려져 작품의 가치에 상응 하는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사실 이 작품이야 말로 1970년대 에 20년 30년 후의 시대를 예비했던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작품의 큰 줄기는 운동권 출신인 김병국이 운동에 좌절한 후 새롭게 다가오는 영역에서 발견한 오염된 생태 계에 관한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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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리도요 [中-, whimbrel, Numenius phaeopus]

분류 : 도요목 도요과

분포지역 : 열대와 남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및 호주

크기 : 몸길이 약 43cm

몸길이 약 43 cm로 쇠부리도요보다 훨씬 크고 마도요나 알락꼬리마도요보다는 소형이 다. 비교적 짧고 직각으로 굽어진 부리와 갈색 세로무늬가 있는 위꽁지덮깃을 가지고 있으 며 정 수리 중앙에는 가는 담색 두앙선(頭央線)이 있고 두앙선 양쪽에는 넓은 암색선이 있다. 울음 소리 는 7음절의 특이한 소리를 낸다.

봄과 가을에 흔히 한반도를 통과하는 나그네새이다. 가을보다는 봄에 많은 무리 가 눈에 띈다. 다른 도요새와는 달리 내륙의 건조한 밭에서도 무리를 볼 수 있는데 초여름까지 늦 게 통과 한다. 해만 ․해안 및 하구의 갯벌, 하천, 염전, 농경지, 소택지, 초습지 등 물가에 도래한 다. 단 독 또는 20~50마리에서 100마리 이상의 큰 무리까지도 형성하며 때로는 큰윗부리도요, 흑 꼬리도 요, 알락꼬리마도요 등의 무리와도 혼성군을 이룬다. 갯벌을 걸어다니면서 먹이를 찾지만 농경지 의 건조한 땅이나 풀밭에 내려서 곤충류를 찾아 먹기도 한다. 날 때에는 V자 모양이나 가로 로 줄 지어 직선비행을 한다. 드물게는 나무 위나 쓰러진 나무 위에 앉기도 한다. 흔히 날아오르거 나 날 면서 울어댄다.

5월 하순에서 6월 중순에 3~5개의 알을 낳는다. 포란기간은 21~25일이다. 동물 성인 연 체동물의 복족류, 작은 조개류, 작은 새우, 작은 어류, 지렁이류, 곤충류 등 다양한 먹이를 먹는 다. 전북구에 불연속적으로 분포되어 북위 53°까지의 툰드라지대 남쪽에서 번식한다. 열대와 남아 프리카, 남아메리카 및 호주 등지에 걸쳐 월동한다.


   

  마도요                                    깝짝도요


    중부리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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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기행>(12)오이도 도요새에 관한 영상 - 문화일보 1999년 9월 28일


여러분은 시화호에 발을 담가본 적이 있는가. 흙 묻은 발을 씻으러 왔다가 남몰 래 슬픔 을 비우는 대부도 주민이 아닌 바에야 누가 썩은 물에 발을 담그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그 날 시화 호에 발을 담갔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놓고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올리고서 물 속으로 걸 어들어 갔다. 간조 때라 물은 종아리를 적시며 찰랑거렸다. 물빛은 간장을 부은 것처럼 거무스름했 지만 바닥이 훤히 비칠 정도로 맑았다. 우리가 물에 들어간 것은 도요새와 물떼새를 가까이 보기 위해 서였다. 처음에 물에 들어갈 때는 이처럼 생각이 단순했다.


방조제와 기역자로 맞물려 있는 오이도 갯벌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새가 몰 려와 있 었다. 방조제에서 물 속으로 한참 걸어 들어가면 호수 안쪽에서 갯벌의 새떼를 관찰할 수 있게 된 다. 그러나 새떼들이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진 몇 컷만 찍고나 면 멀찌 감치 달아나 있다. 시나브로 발걸음을 옮겨도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망원렌 즈와 쌍안경으로 녀석들을 자꾸 끌어당겨본다. 그렇게 해서라도 섭금류(얕은 물에서 먹이 를 찾 는 새들)와 한데 어우러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위안을 얻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그때 쯤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녀석들보다 더 나을 것도 없고 우리나 녀석 들이나 대등한 생명체임을 깨달은 것은. 깨달았다기 보다는 평소에 품고 있던 상념이 갑자기 피 가 통한 듯 꿈틀대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 느낌은 물 속에 잠긴 발 밑에서부터 올라와 온몸 으로 퍼 져나갔다. 게다가 영적인 대화라도 청하듯이 무념무상에 빠져 있는 백로의 눈부시게 흰 자 태라 니! 녀석들이 먹이를 찾느라 감각을 집중시키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드 넓 은 호수에 무리지어 점점이 서 있는 백로는 야산 소나무에 하얗게 앉아있던 백로와는 또 다른 신 비감을 던져준다.


처음에 이곳에 오자마자 만난 것은 방조제 밑에 모여있던 백로떼였다. 가풀막은 깨진 바 위조각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백로떼는 파도가 때리는 물가에 위태롭게 서서 자신의 발밑 을 하염 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의 눈길은 서둘러 녀석들의 뒷덜미를 더듬었다. 뒷머리에 20여 개의 장식깃을 달고 있는 천연기념물 노랑부리백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동행한 이 지역 환경지킴이 최종인씨가 가르킨 대로 바람에 장식깃을 휘날리는 노랑부리 백로를 서너 개체 촬영했는가 싶었다. 허나 나중에 현상 해보니 어느 게 어느 건지 구분 이 되지 않았다.


노랑부리백로처럼 발이 노란색이지만 부리가 검고 장식깃도 두개 뿐인 걸 보면 쇠백로가 틀림없다. 그러면 장식깃은 없으면서 부리가 노란 것은 무엇일까. 부리 끝이 검은 것은 중백로이 고 그렇지도 않은 것은 감으로는 중대백로인 것 같다. 중대백로는 검은 부리와 발, 그리 고 눈 앞 의 녹색으로 동정을 하며 겨울이나 되어야 부리가 노란색으로 바뀌는 것으로 알려져 있 다. 하지 만 나이가 들어도 노래진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여름을 서해안에서 보내고 겨울에는 필리핀으로 날아가 는, 흔하 게 보이던 철새가 노랑부리백로였다고 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으로 서식지가 줄어들 면서 언제부터인가 세계적인 희귀조가 되어버렸다. 87년 경기도 옹진군 외딴섬 신도에서 4 백여개 체가 번식 하는 것이 발견되었고, 최근 서해안 조사에서 6백마리 이상이 확인되었다. 전세 계 개체 수가 2천여마리에 불과하니 북한까지 합친다면 한국에서 절반 가까이 번식한다고 해도 과 언이 아 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먹이를 찾으러 시화호에까지 날아든 노랑부리백로가 최종인 씨 눈에 띄기 시작했던 것이다.


ꡒ시화호 물이 방류 되고 깨끗한 바닷물이 들어와 섞이면서 먹이 환경이 좋아졌 다는 증 거입니다. 무엇보다 시야가 확 트이고 새들을 위협할 만한 요소가 없잖아요. 황오리는 2천 5백마 리까지 날아온 적이 있어요. 전국 최대 규모죠.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저어새도 여섯마리가 발견 된 적도 있고, 검은머리물떼새는 둥지가 1백20개나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나그 네새 를 대충 훑어보면, 왕눈이물떼새, 검은가슴물떼새, 알락도요, 알락꼬리마도요, 쇠청다리도 요, 중 부리도요, 붉은어깨도요, 청다리도요, 민물도요, 꼬까도요 등이 보이는군요.ꡓ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40여종의 도요새는 저마다 한가지 이상씩 갖고 있는 독특한 특징으로 구분을 한다. 알 락꼬 리마도요는 부리가 낫같이 아래로 휘고 길쭉한 반면 중부리도요는 휘었어도 이보다는 짧고, 청다 리도요의 부리는 위로 살짝 휘었다. 부리가 위로 휜 것은 뒷부리도요도 이에 못지 않으나 다 리가 짧고 황색인 점이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카메라 파인더에 비치는 족족 이름을 알아맞추기 가 어 디 그리 쉬운가. 붉은가슴도요와 붉은어깨도요, 알락도요와 삑삑도요처럼 닮은꼴들이 섞여 있으 면 특히 그렇다.


물떼새는 도요새보다 부리가 짧고 가슴에 띠를 두르고 있는 점이 다르다. 한참 달 려가다 먹이를 잡으면 고개를 들고 서 있는 모습도 계속 갯벌이나 물 속에 부리를 처박고 먹이를 찾는 도 요새와 쉽게 구분이 된다. 도요새는 긴 부리를 갯벌에 집어넣고 부리 끝의 작은 구멍 속에 있는 압 력감지기로 먹이를 찾아낸다고 한다. 녀석들이 머물다가 간 물 속을 들여다보면 그 격렬 한 흔적 을 엿볼 수 있다. 갯바닥은 새 발자국이 빈틈없이 촘촘히 박혀 있고 간혹 먹다가 흘린 갯지 렁이 가 보이기도 한다.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갯지렁이가 재빨리 구멍 속으로 몸을 숨긴다. 조개 나 게 도 잡아먹겠지만 오염으로 폐사한 것으로 보이는 빈 조가비만 여기저기 눈에 띌 뿐이다.


북극 툰드라 지대에서 여름을 보낸 도요새․물떼새는 가을에 중간 기착지인 서해 안 갯벌 를 찾아와 완벽하게 몸을 만든 다음 1만km 이상을 논스톱으로 비행하여 남반구의 호주까 지 날아 간다. 그리고 다시 봄이 되면 한반도를 거쳐 툰드라 지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난해 봄 조 사된 바로는 50만마리나 되는 도요새․물떼새가 서해안 갯벌을 찾았다. 남북반구를 가로지르는 나그네 새의 이동 비밀은 조류학자들의 집요한 추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가사의로 남아있다. 다만 낮 이 길어지거나 해가 짧아지면서 내분비선이 변해(이 때 깃 색깔도 바뀐다) 먼 길을 떠나게 되는 것 이라든가, 태양과 별의 위치에 따라 방향을 잡는다는 정도가 밝혀졌을 뿐이다.


도요새․물떼새는 이처럼 우리가 자연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 그리고 자연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바로 이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 들 나그네새가 어느날 갑자기 이곳에 나타났을 때 시화호가 되살아나는 징표가 아닌가 해 서 자연 의 놀라운 복원력에 경외감을 느낀 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 까. 어느 한 지역에 갑자기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은 서해안 전체에 심각한 변화가 있다는 징후에 지나지 않 는다. 게다가 시화호 밑바닥이 썩어서 엄청나게 주위를 오염시키고 자신들의 식탁도 안 전하지 않 다는 것을 녀석들이 시시콜콜 알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요새․물떼새에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없다. 보라! 저 힘찬 날 개짓을. 일제히 날아올라 군무를 펼치는 새떼를 보면서 누가 감히 희망이 아닌 것을 얘 기할 수 있 겠는가. 여러분은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가면서 썩어가는 바다를 살렸다는 설 화를 들어 본 적이 있는지. 달마는 껍질을 벗고 바다로 들어가 거대한 이무기의 시체를 건져내지 만 자신의 껍질은 못찾고 엉뚱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나와 험상궂은 얼굴이 되고 만다. 우리는 고 작 신발만 벗고 시화호에 들어갔지만 껍질을 벗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요 새, 물떼새 가 하늘에 달마의 얼굴을 검게 수 놓고 있었다.


<글 : 오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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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새에 관한 명상’


줄거리 :

1 병식의 눈 ; 무기력한 아버지와 돈에 눈이 먼 어머니, 그리고 새에 미친 형의 모 습이 묘 사된다. 이는 사실 단순히 병식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욕망의 논리로 세상 을 바라 본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무기력이란 경제적 무능력, 즉 자본주의적 욕망 실현의 좌절 과 불가 능성을 말하는 것이고, 어머니의 능력 있음도 그 반대의 측면에서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형 병국 은 미친 사람 또는 아웃사이더쯤으로 묘사되고 치부되는데, 이는 형이야말로 동생의 욕망 체계로 보자면 가장 저 편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병국의 눈 ; 보편적인 사회적 시각으로 보자면 그는 실패자라 할 만하다. 속칭 일류대라 는 곳의 문을 밟아보았으나 이념의 문제에 가진 천착으로 인한 대학생활의 실패로 해서 실패한 투 쟁가가 된다. 그리고 그의 관심은 ‘생명에의 고귀함’이라는 데로 옮겨간다.

병국의 고민 속에는 생태의 오염 문제가 단지 자연환경의 오염문제로만 국한되 지 않는다 는 데 특징이 있다. 그의 생태적 안목으로는 인간의 정신체계도 처절하게 오염되어 있 다. 동생의 새 사냥이나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허영심이 모두 인간 정신체계의 오염으로 비춰진 다.


3 아버지의 눈(아버지와 병국의 관계) ; 병국과 가장 가까운 인물로 상정되어 있 다. 그 친 근성이란 아버지의 욕망과 병국의 욕망의 유사성에서 왔으며, 죽어가는 생명과의 유사함 과 그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그 소설적인 공통 고리란 형식적으로는 바다라는 존재 때문이며 내 용적으로 는 바다가 도요새와 물새들의 낙원이라면 아버지에게 바다란 두고 온 고향으로 갈 수 있 는 길이 다.


4 작가의 시점 ; 작가는 이 장에서 어용노조와 노동자들의 어려움, 자본주의 사회 의 전반 적인 성적 타락, 돈의 논리와 생태학적 상상력과의 적대성 등을 정리해 놓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사는 이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안온하게 그려내지 만은 않는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복잡 다단한 이야기들을 작가 특유의 고유한 문체로 그 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는 많은 이야기와 삶의 교훈 또는 쉽사리 느끼지는 못할 의미들이 담 겨져 있다.

이 소설의 첫 번째 특징은 환경오염의 문제와 싸우는 김병국의 모습이 결코 운동 권에서 의 좌절의 잔영이 아닌 힘찬 형상으로 그려져 있으며, 그것이 이념의 지평이 아닌 생명의 지평에 서 수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현대 사회의 끊임없는 무한 욕망의 논리가 병식과 어머니의 모습에 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으며, 작가는 분명히 이를 질 타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특징으로는 분단문제에 대한 아버지의 시각이라 할 만하다. 아버지가 평 생을 뿌리 없는 삶이 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분단의 상처, 즉 두고 온 고향과 가족 때문이었 다.

한편 어머니와 병식은 돈과 쾌락이라는 욕망에 편중되어 세상을 바라본다. 병국 의 경우 는 그 삶의 근거와 계기가 변화하는 인물인데, 이념에서 생명으로의 전화가 그것이다. 온 전한 생 명에의 목마름이 도요새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으로 표현된다.

병식과 그 일당이 죽은 야생조류를 박제상에게 넘기고 그 박제 과정을 지켜보는 장면은 인간의 정신생태계의 오염과 자본주의의 황 금지향성과의 관계를 끔찍하게 연결시켜 놓은 장면 에 해당한다.


이씨는 메스를 들었다. 오후 네시경의 기운 햇살이 칼날 끝에 튀어 빛났다. 이씨 는 메스 로 힘들이지 않고 꼬마물떼새 목을 잘랐다. 이름 그대로 작은 새여서 이씨 손놀림이 가래 떡 베듯 경쾌했다. 병식이와 족제비는 이씨 옆에 서서 그 수술 장면을 보았다. 도막난 새 목과 몸 통에서 맑지 못한 피가 조금 흘러나왔다. 검붉은 피는 도마에 응고되었다. 이씨는 다리․날개꽁지 를 잘 라버리자, 새는 몸통만 남았다. 제 모양을 갖추지 못한 그 몸통을 보자 병식은 어깨를 으쓱 올렸 다. 얼굴을 찡그리며 개숫가에 침을 뱉었다. 이씨는 메스를 놓고, 새 대가리라는 말이 있듯 탁 구 공보다 조금 큰 꼬마물떼새 대가리를 쥐었다. 잘라낸 목 쪽을 통해 기관과 식도 일부와 심줄을 잡 아 빼고, 거기에 핀셋을 쑤셔넣더니 융기가 심한 한덩이 뇌를 뽑아냈다. 뇌는 실핏줄로 싸발린 핏 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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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아비산 용액이 묻은 솜 을 새 의 잘린 목구멍을 통해 빈 기관 안에 쑤셔 박았다. 핀셋에 집힌 한 뭉치 솜이 그 속으로 들어 갔 다. 이어 이씨는 새 몸통을 뒤집어 왼손에 놓더니 메스로 목에서부터 배를 거쳐 항문까지 얇게 갈 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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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항문에서부터 껍질을 벗 겨내 었다. 병식은 문득 지난 겨울, 대학입시 원서를 낼 때가 생각났다. 명함판 사진을 찍어 입시원 서 를 붙일 때, 시진 뒷면 한 겹을 벗겨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굴이 찢어질까 봐 침칠하며 한 겹을 두 쪽으로 조심스럽게 나누어낼 때에 비해, 이씨는 콘돔을 까발릴 때처럼 껍질을 익숙하 게 벗겨나갔다. 오징어 껍질을 벗길 때처럼 얇은 피막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새란 날짐승은 원 래 필요 없는 살점이 없지만, 꼬마물떼새의 경우는 얇게 싸발린 대흉근 안쪽에 용골돌기가 불거 져 나와 있었다. 박피를 끝내자 껍질 벗긴 새 몸통은 누가 보아도 무슨 살덩이인지 알아볼 수 없 는 형체로 변하고 말았다. 이씨는 새 몸통을 도마 옆으로 던지고 껍질 안쪽을 하늘로 보게 도마에 펴 놓았다. 이씨는 아비산 액을 묻혀 안면에 칠했다. 그 일이 끝나자 이씨는 이제 새 대가리를 쥐 고 박피할 채비를 차렸다.


산업현장에서 사용자들이 그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행하는 반환경적 작태 역 시 그러하 다.

더불어 이러한 모습에 좌절한 병국이  선술집에 다다랐을 때 듣게되는, 아 버지와 친구분과의 대화는 병국의 심정만큼이나 비 관적이 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환경, 즉 생명에의 관심과 통일에의 염원이 같은 뿌리에 닿아 있음 을 암시 하는데, 통일이란 새벽같이 올 거라고 믿고 있는 실향민과 돌아올 도요새에 대한 염원을 놓지 않 는 병국의 희망이 마무리 부분에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 . . . . . 그러나 어김없이 새, 새벽은 찾아오지요, 이 고비만 넘기면 토, 통일 은 그렇 게 찾아옵니다. 설령 내가 죽을 때까지 고향 땅 못 밟는다 해도 아들놈은 바, 반드시 이 아 비 뼈 를 거기다 옮겨 묻어줄 거예요.」


바다와 하늘은 잔광마저 어둠에 묻혀 지워졌고 멀리 장진포 쪽 등대만이 빤하게 불을 켜 고 있었다. 병국의 눈앞에 홀연히 한 마리의 도요새가 날아올랐다. 도요새의 유연한 비상 은 날개 를 아래위로 움직여 나는 날개치기 비행이 아니었다. 날개를 펼친 채 기류를 이용하여 나 는 돛 역 할의 비행이었다. 맞바람 상승 기류를 타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공중 높이 올라갔다 바람 을 옆으 로 받아 활공으로 미끄러져내리는 율동이 눈앞에 잡힐 듯 떠올랐다..

「도요새야, 너는 동진강 하구를 떠나 어디에 새로운 쉼터를 개척했니?」

             ;              ;              ;              ;              ;              ;    - 끝 -


토론주제 :

▷ 공업의 발전은 필연적인가?

▷ 환경친화적인 산업의 방향은?

▷ 보편적인 의미의 ‘발전’이란 어떠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가?

▷ 현재 이루어지는 환경보호 정책, 국민적 인식은 어떠한 정도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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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집짓기  

-예진수님의 칼럼中에서

온통 물, 흙, 바람 뿐인 산골에서는 집도 사람도 자연을 닮아간다. 덕유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전북 무주군 진도리. 폭이 좁아지는 비탈길을 따라 1㎞쯤 쭉 올라가다보면 풍광좋은 산중턱에 귀농인들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억새로 지붕을 이은 흙벽돌집과 그 옆에 흙벽에 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 등 모양이 조금씩 다른 토담집 7~8채가 산을 따라 병풍처럼 펼쳐져있다.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는 힘을 잃어 버렸습니다. 까치가 자기 집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과 어린이들이라도 자기 힘만큼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봅니다. 자기 능력에 맞는 규모의 집을 스스로 지어보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은 (문명화에 찌든) 자신의 병을 고치는 ‘치유의 집짓기’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서울서 살다 귀농한 김광화(48)씨는 목수들의 도움을 받아 흙벽에 기와를 얹은 집을 직접 지었다. 기둥과 서까래 등으로 얼개를 짠 뒤 댓가지나 싸리로 외(흙을 바른 틀)를 촘촘하게 엮고 흙을 쳐서 바른 심벽집이다. 집을 지을 때 부인과 자녀 등 온 가족이 참여했다.

한평반 남짓한 뒷간과 네평정도되는 창고는 순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세웠다. 뒷간 하나를 짓는데만 여섯달이 걸렸다. 농사를 하다 짬이 나면 기둥을 세우고, 밭을 매다 지붕을 씌우고, 비가 살살 내릴 때면 외를 엮어 흙으로 치는 식이었다.

김씨는 “스스로 집을 지을 경우 큰 태풍 등으로 귀퉁이가 떨어져나간다해도 내 손으로 바로바로 고칠 수 있다”며 자립적 집짓기의 강점을 설명했다.

김씨의 이웃인 르포작가 J(여)씨의 집은 특이하게도 수몰되기 직전 대청댐 수몰지구의 한옥집을 뜯어다 지었다. 목수들이 뜯어 옮기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말렸지만 수몰지구에 살던 사람의 동의를 얻어 100년 가까이 된 한옥집 3칸집의 기둥, 문짝, 마루는 물론 창살까지 그대로 뜯어왔다. 이 틀을 그대로 살리고 흙벽돌을 쌓아 집을 지었다. 사라지기 직전이었던 평야지대의 전통이 산골 기슭에서 숨쉬게 된 것이다.

최근 J씨와 이웃에 사는 여성 목수 김민선씨, 또다른 이웃 여성 등 여성 세 사람만의 힘으로 아랫채와 지하 술 및 효소 창고 등을 짓고 있다. J씨는 이곳에 살림살이를 두지 않고 자기를 돌아보는 소중한 공간으로 남겨놓을 생각이다.

이처럼 자기 힘으로 지은 생태주택을 정결한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어하는 마음의 뿌리에는 생태주택이 주는 의미가 단순히 새집증후군 등으로부터 건강과 쾌적함을 지켜주는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함, 정신적 아름다움 등을 뜻한다는 점을 웅변하듯 말해준다.

자연과 함께 살다 오랫 세월이 흐른 뒤 공기와 바람속에 풍화되어 사라지게 되는 우리의 전통적 토담집이 이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건축형태다.

이 산촌에서 2㎞남짓 떨어진 푸른꿈고등학교는 국내에서는 드물게 태양광 발전, 옥상 녹화, 생태적 집짓기 등 생태건축 개념이 한꺼번에 적용되고 있는 일종의 소생태계(비오톱)를 이루고 있다.

이 학교 송만호(33)교사는 “생태건축의 3가지 요소는 첫번째가 흙, 나무 등 자연적 소재를 쓰는 것이며 두번째는 에너지와 오수시스템 등 자원을 순환하는 체계”라며 “이보다 더 중요한 세번째 요소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생태적인 삶의 방식을 갖췄느냐는 점”이라고 말했다.

푸른꿈고등학교에서는 화장실과 식당, 기숙사 등에서 나오는 오수를 자연순환형 시스템을 통해 맑은 물로 바꾼다. 생활 오하수를 자갈층과 침전조에서 여과한 뒤 긴 자갈 수로에서 다시 한번 걸러내고 이밖에도 자연늪지 여과조, 자연수로 여과조, 자연연못 저장조를 통과시키도록 해 오수를 맑게 한다.

탁한 오수가 놀라울 정도로 깨끗해져 자연수로에 미꾸라지와 가재 등이 뛰논다. 이 물은 이웃 논으로 들어가서 쌀을 만들고 이곳의 쌀은 다시 학교 식탁에 오른다. 자신들이 버린 오수를 이용해 농사지은 쌀이 다시 식탁에 오르는 순환 사이클이 완성되는 것이다.

생태건축연구소(www.ecoarch.org)는 이미 7~8년전부터 새집증후군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왔다. 이 연구소 이윤하(40·시인)소장은 “흙과 돌, 짚 같은 자연친화적인 재료로 짓는다고 다 생태건축은 아니며 자연계의 생태고리와 연결돼야 한다”며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건축현장과 가까운 곳의 재료를 쓰자는 정신은 이런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설계회사인 노둣돌대표이기도한 이 소장은 도심 한복판에서 생태건축물을 짓는 실험에 나서고 있어 도시 생태건축의 한 획을 긋는 모델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회사가 설계한 연면적 280평 규모의 안양시내 비웅암은 비구니스님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국내 건축물로는 드물게 지열시스템을 채택할 계획이다. 땅속 10m이하에서는 연중 일정한 온도(섭씨 15도)를 유지하는데 이 온도를 이용해 생활에 필요한 냉방과 난방, 급탕에 활용하는 것이 지열시스템. 지하에 매장돼 있는 열을 고밀도 플라스틱 파이프를 통해 물이나 부동액이 회로안을 순환하도록 하고 겨울에는 대지로부터 얻은 열을 이 시스템에 의해 건물내로 전달한다. 비웅암은 땅에서 나는 자연발생 샘물을 옥상으로 끌어올려 옥상녹화를 할 계획이다.

또 전체 소요전력의 80%인 4㎾규모의 태양광 시스템을 설치하고 빗물을 모아 정화정치를 통해 일정 수준의 물을 화장실 변기와 테라스 청소, 허드렛물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우수(雨水)처리 시스템도 갖출 계획이다.

방 곳곳에 자연채광이 쏟아지고 새집 증후군의 원인이 되는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인체 피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천연 페인트와 천연 벽지를 쓸 계획이다. 빛우물이 가득 고이는 안 뜰을 만들어 풀과 나무도 심는다. 노둣돌이 설계한 심양당도 개인주택으로는 드문 흙벽돌집이며 빗물을 모아 재활용하는 시설을 갖췄다.

우주라는 말이 집우(宇) 집주(宙)라는 단어로 이뤄져있듯 산촌 벽지와 도시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생태건축붐은 우주 생태계의 순환고리회복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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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리 2004-09-28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는 이런 집에 살고 싶어요. 퍼 갈께요.
추석이 저물어 가네요...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center>

-박수근의 그림

/허만하

잎 진 겨울나무 가지 끝을 부는 회초리 바람 소리 아득하고 어머니는 언제나 나무와 함께 있다. 울부짖는 고난의 길 위에 있다. 흰 수건으로 머리를 두르고 한 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다른 아이 손을 잡고 여덟팔자걸음을 걷고 있는 아득하고 먼길. 길 끝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어머니는 언제나 머리 위에 광주리를 이고, 또는 지친 빨랫거리를 담은 대야를 이고 바람소리 휘몰아치는 길 위에 있다. 일과 인내가 삶 자체였던 어머니. 짐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머니. 손이 모자라는 어머니는 허리 흔들림으로 균형을 잡으며 걸었다. 아득하고 끝이 없는 어머니의 길. 저무는  길 너머로 사라져가는 어머니. 길의 끝에서 길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머니. 하학길 담벼락에 붙어 서서 따뜻한 햇살을 쪼이던 내 눈시울 위에 환하게 떠오르던 어머니. 어머니, 나의 눈시울 위에 환하게 떠오르던 어머니. 어머니, 나의 눈시울은 어머니를 담은 바다가 됩니다. 어머니의 바다는 나의 바다를 안고도 흘러 넘칩니다. 어머니 들립니다. 어디까지 와있나. 임정리 아직 멀었나. 어디까지 와았나. 골목 끝에 부는 바람소리. 나는 한 마리 매미처럼 어머니 등에 붙어 있었지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걸었던 바람부는 길을 이젤처럼 둘러메고 양구를 떠났습니다. 나는 겨레의 향내가 되고 싶습니다. 가야토기의 살갗같이 우울한 듯 안으로 밝고 비바람에 시달린 바위의 살결같이 거칠고도 푸근한 어머니의 손등을 그리고 말 것입니다. 어머니가 끓이시던 시래깃국 맛을 그리겠습니다. 어머니, 나를 잡아 끌던 어머니의 손이 탯줄인 것을 나는 압니다. 잎 진 가지 끝에 바람에 부는 겨울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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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이 시를 읽는데 목이 메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철이 드는지,

짐이 어머니의 몸의 일부가 된다는 대목에서 같이 가슴이 아플 수 있어서 나는 그 녀석들이 좋습니다.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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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95 2004-09-2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똑한 중2들이군요...

하늘거울 2004-09-26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이 꽉 찬 아이들이네요. 가르치는 보람이 있겠어요. 찬미님 즐거운 연휴 되시길... ^^

프레이야 2004-09-26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미님, 늘 감동적인 수업을 하시는 것 같아요. 박수근의 그림 못지않게 허만하의 글이 주는 울림이 넘 좋습니다. 아, 친정엄마의 굽고 불룩한 등이 생각나요. 일부가 되어버린 짐인 것 같아 맘이 아리네요. 오늘 배 한상자를 미리 드리고 왔는데 돌아서 가시는 등이 오늘따라 더 그랬어요. 그래도 전 싹싹하게 대하지도 못했네요. 찬미님, 편안한 추석 보내세요^^

진주 2004-09-27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혜경님. 친정엄마한테 좀 더 살갑게 대해 드리지 못하고 맨날 무덤덤해요^^; 추석잘 보내세요,혜경님.
 
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처음 이 책에 끌린 건 일본출판계와 전세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는 화려한 소문과는 상관이 없었다. 순전히 삽화로 곁들여진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이 좋았기 때문이다. 수채물감으로 투명하게 어린이만 그린 치히로의 독특한 솜씨에 매료되어 있던 나에겐 "창가의 토토"는 그림책으로만 여겨졌다. 그때까지는 분명 책 속의 글자가 내겐 여백과도 같았음을 고백한다.

우리집 아이(그때 4학년)가 창가의 토토를 탐독하는 걸 보았다. 아이는 책 속에서 "킬킬"웃기도 하더니 어느 날은 "도모에- 도모에- 도모에~~~."하는 노래를 한다.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서며 '나도 도모에학교로 가고 싶다'라고 중얼거렸다. 애를 학교에 보내고도 녀석의 눈망울이 어쩐지 가슴에 짠하여 아이가 읽다가 간<창가의 토토>를 집어 들었다.

토토. 나는 비로소 토토를 만났다. 설거지가 쌓여있고 세탁기가 혼자서 빨래를 끝내곤 널어주기만 기다리더라도,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부지런한 오전을 반납하고 토토를 만났다.

퇴학당한 1학년짜리 토토의 모습에서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던 아이의 가방 짊어진 뒷모습이 겹쳐졌다. 전학 온지 얼마 안 된 우리아이는 그 즈음 외로움을 타고 있었다. 그래서 학원에 보내 달라고 떼를 썼다. 얼른 들으면 이해가 안 되겠지만 사귀고 싶은 친구들이 <**입시학원>에 다니기 때문이란다. 초등학교 3학년만 되도 입시학원에 보내는 교육열이 높은 지역이었다. 놀이터에는 조무래기들만 놀고 있으니 학원엘 가야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씁쓸한 현실이었다.

알고 보니 "도모에-도모에-도모에~" 이 짧은 노래는 도모에 학교의 교가였다.(그것도 잠시였지만) 교가만큼이나 단순한 학교, 어른들의 갖가지 욕심이 배제된 학교였다. 기형적인 부모의 욕심이 없다면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 도모에 학교에서 아이들은 주변 숲을 산책하고 분필로 마음껏 낙서를 하며 야외에 나가 손수 밥을 지어먹거나 꼬마농부가 되어 땀흘리며 농사도 지으면서 공부한다. 가장 허름한 옷을 입고 등교하고 알몸으로 수영하면서 아이들은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들을 너무나 많은 끈으로 묶어 놓은 것 같다. 억압과 규범이 아니라 아이를 좀 더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천진난만하게 동심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면 토토와 같은 사회부적응아도 스스로 질서를 배우는 것이다. 토토는 도모에에 와서 어느새 남을 배려하고 친구를 위해 희생할 줄도 알게 되었으며 조용히 해야 할 때에는 조용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넌 사실 착한 아이야"라고 아이들을 격려하는 고바야시 소사쿠 교장선생님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있는 반일감정을 조금 걷어내게 하는 인물이다. 교육자로서의 그의 모습이 존경스럽다. 우리나라에는 근래에 와서 "대안교육"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지만, 도모에학원은 이미 2차대전 말기에 있었으니 소사쿠 교장의 노력이 대단하다. 그는 유럽각지의 학교를 다니며 도모에를 구상한 것이다.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랄 수 있게, 인격을 존중하고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그래서 그 아이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교육의 현장이 펼쳐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초등학교 5~6학년 부터 읽을 수는 있지만, 절대로 어린이용 또는 청소년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아이들 교육에 관심있는 어른들이라면 읽어 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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