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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의 그림

/허만하

잎 진 겨울나무 가지 끝을 부는 회초리 바람 소리 아득하고 어머니는 언제나 나무와 함께 있다. 울부짖는 고난의 길 위에 있다. 흰 수건으로 머리를 두르고 한 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다른 아이 손을 잡고 여덟팔자걸음을 걷고 있는 아득하고 먼길. 길 끝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어머니는 언제나 머리 위에 광주리를 이고, 또는 지친 빨랫거리를 담은 대야를 이고 바람소리 휘몰아치는 길 위에 있다. 일과 인내가 삶 자체였던 어머니. 짐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머니. 손이 모자라는 어머니는 허리 흔들림으로 균형을 잡으며 걸었다. 아득하고 끝이 없는 어머니의 길. 저무는  길 너머로 사라져가는 어머니. 길의 끝에서 길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머니. 하학길 담벼락에 붙어 서서 따뜻한 햇살을 쪼이던 내 눈시울 위에 환하게 떠오르던 어머니. 어머니, 나의 눈시울 위에 환하게 떠오르던 어머니. 어머니, 나의 눈시울은 어머니를 담은 바다가 됩니다. 어머니의 바다는 나의 바다를 안고도 흘러 넘칩니다. 어머니 들립니다. 어디까지 와있나. 임정리 아직 멀었나. 어디까지 와았나. 골목 끝에 부는 바람소리. 나는 한 마리 매미처럼 어머니 등에 붙어 있었지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걸었던 바람부는 길을 이젤처럼 둘러메고 양구를 떠났습니다. 나는 겨레의 향내가 되고 싶습니다. 가야토기의 살갗같이 우울한 듯 안으로 밝고 비바람에 시달린 바위의 살결같이 거칠고도 푸근한 어머니의 손등을 그리고 말 것입니다. 어머니가 끓이시던 시래깃국 맛을 그리겠습니다. 어머니, 나를 잡아 끌던 어머니의 손이 탯줄인 것을 나는 압니다. 잎 진 가지 끝에 바람에 부는 겨울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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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이 시를 읽는데 목이 메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철이 드는지,

짐이 어머니의 몸의 일부가 된다는 대목에서 같이 가슴이 아플 수 있어서 나는 그 녀석들이 좋습니다.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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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95 2004-09-2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똑한 중2들이군요...

하늘거울 2004-09-26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이 꽉 찬 아이들이네요. 가르치는 보람이 있겠어요. 찬미님 즐거운 연휴 되시길... ^^

프레이야 2004-09-26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미님, 늘 감동적인 수업을 하시는 것 같아요. 박수근의 그림 못지않게 허만하의 글이 주는 울림이 넘 좋습니다. 아, 친정엄마의 굽고 불룩한 등이 생각나요. 일부가 되어버린 짐인 것 같아 맘이 아리네요. 오늘 배 한상자를 미리 드리고 왔는데 돌아서 가시는 등이 오늘따라 더 그랬어요. 그래도 전 싹싹하게 대하지도 못했네요. 찬미님, 편안한 추석 보내세요^^

진주 2004-09-27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혜경님. 친정엄마한테 좀 더 살갑게 대해 드리지 못하고 맨날 무덤덤해요^^; 추석잘 보내세요,혜경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