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집짓기  

-예진수님의 칼럼中에서

온통 물, 흙, 바람 뿐인 산골에서는 집도 사람도 자연을 닮아간다. 덕유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전북 무주군 진도리. 폭이 좁아지는 비탈길을 따라 1㎞쯤 쭉 올라가다보면 풍광좋은 산중턱에 귀농인들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억새로 지붕을 이은 흙벽돌집과 그 옆에 흙벽에 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 등 모양이 조금씩 다른 토담집 7~8채가 산을 따라 병풍처럼 펼쳐져있다.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는 힘을 잃어 버렸습니다. 까치가 자기 집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과 어린이들이라도 자기 힘만큼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봅니다. 자기 능력에 맞는 규모의 집을 스스로 지어보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은 (문명화에 찌든) 자신의 병을 고치는 ‘치유의 집짓기’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서울서 살다 귀농한 김광화(48)씨는 목수들의 도움을 받아 흙벽에 기와를 얹은 집을 직접 지었다. 기둥과 서까래 등으로 얼개를 짠 뒤 댓가지나 싸리로 외(흙을 바른 틀)를 촘촘하게 엮고 흙을 쳐서 바른 심벽집이다. 집을 지을 때 부인과 자녀 등 온 가족이 참여했다.

한평반 남짓한 뒷간과 네평정도되는 창고는 순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세웠다. 뒷간 하나를 짓는데만 여섯달이 걸렸다. 농사를 하다 짬이 나면 기둥을 세우고, 밭을 매다 지붕을 씌우고, 비가 살살 내릴 때면 외를 엮어 흙으로 치는 식이었다.

김씨는 “스스로 집을 지을 경우 큰 태풍 등으로 귀퉁이가 떨어져나간다해도 내 손으로 바로바로 고칠 수 있다”며 자립적 집짓기의 강점을 설명했다.

김씨의 이웃인 르포작가 J(여)씨의 집은 특이하게도 수몰되기 직전 대청댐 수몰지구의 한옥집을 뜯어다 지었다. 목수들이 뜯어 옮기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말렸지만 수몰지구에 살던 사람의 동의를 얻어 100년 가까이 된 한옥집 3칸집의 기둥, 문짝, 마루는 물론 창살까지 그대로 뜯어왔다. 이 틀을 그대로 살리고 흙벽돌을 쌓아 집을 지었다. 사라지기 직전이었던 평야지대의 전통이 산골 기슭에서 숨쉬게 된 것이다.

최근 J씨와 이웃에 사는 여성 목수 김민선씨, 또다른 이웃 여성 등 여성 세 사람만의 힘으로 아랫채와 지하 술 및 효소 창고 등을 짓고 있다. J씨는 이곳에 살림살이를 두지 않고 자기를 돌아보는 소중한 공간으로 남겨놓을 생각이다.

이처럼 자기 힘으로 지은 생태주택을 정결한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어하는 마음의 뿌리에는 생태주택이 주는 의미가 단순히 새집증후군 등으로부터 건강과 쾌적함을 지켜주는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함, 정신적 아름다움 등을 뜻한다는 점을 웅변하듯 말해준다.

자연과 함께 살다 오랫 세월이 흐른 뒤 공기와 바람속에 풍화되어 사라지게 되는 우리의 전통적 토담집이 이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건축형태다.

이 산촌에서 2㎞남짓 떨어진 푸른꿈고등학교는 국내에서는 드물게 태양광 발전, 옥상 녹화, 생태적 집짓기 등 생태건축 개념이 한꺼번에 적용되고 있는 일종의 소생태계(비오톱)를 이루고 있다.

이 학교 송만호(33)교사는 “생태건축의 3가지 요소는 첫번째가 흙, 나무 등 자연적 소재를 쓰는 것이며 두번째는 에너지와 오수시스템 등 자원을 순환하는 체계”라며 “이보다 더 중요한 세번째 요소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생태적인 삶의 방식을 갖췄느냐는 점”이라고 말했다.

푸른꿈고등학교에서는 화장실과 식당, 기숙사 등에서 나오는 오수를 자연순환형 시스템을 통해 맑은 물로 바꾼다. 생활 오하수를 자갈층과 침전조에서 여과한 뒤 긴 자갈 수로에서 다시 한번 걸러내고 이밖에도 자연늪지 여과조, 자연수로 여과조, 자연연못 저장조를 통과시키도록 해 오수를 맑게 한다.

탁한 오수가 놀라울 정도로 깨끗해져 자연수로에 미꾸라지와 가재 등이 뛰논다. 이 물은 이웃 논으로 들어가서 쌀을 만들고 이곳의 쌀은 다시 학교 식탁에 오른다. 자신들이 버린 오수를 이용해 농사지은 쌀이 다시 식탁에 오르는 순환 사이클이 완성되는 것이다.

생태건축연구소(www.ecoarch.org)는 이미 7~8년전부터 새집증후군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왔다. 이 연구소 이윤하(40·시인)소장은 “흙과 돌, 짚 같은 자연친화적인 재료로 짓는다고 다 생태건축은 아니며 자연계의 생태고리와 연결돼야 한다”며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건축현장과 가까운 곳의 재료를 쓰자는 정신은 이런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설계회사인 노둣돌대표이기도한 이 소장은 도심 한복판에서 생태건축물을 짓는 실험에 나서고 있어 도시 생태건축의 한 획을 긋는 모델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회사가 설계한 연면적 280평 규모의 안양시내 비웅암은 비구니스님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국내 건축물로는 드물게 지열시스템을 채택할 계획이다. 땅속 10m이하에서는 연중 일정한 온도(섭씨 15도)를 유지하는데 이 온도를 이용해 생활에 필요한 냉방과 난방, 급탕에 활용하는 것이 지열시스템. 지하에 매장돼 있는 열을 고밀도 플라스틱 파이프를 통해 물이나 부동액이 회로안을 순환하도록 하고 겨울에는 대지로부터 얻은 열을 이 시스템에 의해 건물내로 전달한다. 비웅암은 땅에서 나는 자연발생 샘물을 옥상으로 끌어올려 옥상녹화를 할 계획이다.

또 전체 소요전력의 80%인 4㎾규모의 태양광 시스템을 설치하고 빗물을 모아 정화정치를 통해 일정 수준의 물을 화장실 변기와 테라스 청소, 허드렛물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우수(雨水)처리 시스템도 갖출 계획이다.

방 곳곳에 자연채광이 쏟아지고 새집 증후군의 원인이 되는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인체 피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천연 페인트와 천연 벽지를 쓸 계획이다. 빛우물이 가득 고이는 안 뜰을 만들어 풀과 나무도 심는다. 노둣돌이 설계한 심양당도 개인주택으로는 드문 흙벽돌집이며 빗물을 모아 재활용하는 시설을 갖췄다.

우주라는 말이 집우(宇) 집주(宙)라는 단어로 이뤄져있듯 산촌 벽지와 도시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생태건축붐은 우주 생태계의 순환고리회복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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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리 2004-09-28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는 이런 집에 살고 싶어요. 퍼 갈께요.
추석이 저물어 가네요...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