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쇼 선생님께 보림문학선 3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이승민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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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엉뚱한 관점 : 삽입된 그림에 대해- 

이 책을 서점에서 처음 맞닥뜨렸을 때 나는 표지의 작은 소년을 보고 반했었다. 그림 속의 그 애 이름은 리 보츠이고  'Dear Mr. Henshow'라고 공책 맨 윗칸에 써놓고 한창 진지하게 편지를 써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는 얼마나 쓰기에 열중하는지 책상에 거의 엎드리다시피 얼굴을 공책에 바짝 대고 연필은 야물딱지게 꼭 쥐었는데 그 손도 예쁘다. 입술에도 힘을 주어 앙다물고 있다. 용쓰는 어깨 힘이 느껴지고 온 마음을 집중해 편지에 몰입한 것이 느껴진다. 책을 읽는 내내 표지에서 봤던 그림의 아이가 그대로 나와서 말을 하고 학교에 가고 다시 표지의 그 자세 그대로 헨쇼 선생님께 편지와 일기를 쓰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어릴 제 나는 꽤나 세심한 독자라서, 책 내용과 삽화 내용이 약간씩 다르게 표현된 부분을 보면 답답했다. 그림 그리는 화가가 글을 대충 훑어보고 그렸다는 느낌이 들어 저걸 어떻게 알려주나 싶었다. 나중에 나는 글을 쓰게 된다면 곁들이는 그림도 반드시 내가 그리겠다는 생각도 그래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글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재주를 겸한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삽화와 글은 따로 떨어질 수 없이 하나가 되어야 되고, 그러면서도 그림은 독자적으로 아름다우면 가장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보림에서 번역하여 만들어 낸 이 책, 이승민씨 그림은 나의 그런 관점에 충실하다. (비록 지금 이 리뷰에선 책 내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지만, 내용도 너무 좋아서)원서도 구입할까 싶어 클릭했다가 표지그림보고 헉겁을 떼며 사지 않았다는 나도 참 웃기는 사람이다. 원서의 그 아이는 정말이지 만정이 뚝 떨어지는 모습이다. 책 표지 그림 때문에 안 산다는 사람은 조선천지에 나밖엔 없을 지도..아무튼 그만큼 나는 이승민씨가 그린 리보츠가 사랑스럽다.  

 

앞날개나 뒷날개에 책에 대한 정보를 기록할 때, 누누이 느끼지만 제발이지 그림의 재료까지 알려주면 안 될까? 이승민씨에 대한 소개글은 있었지만, 이 그림을 그린 재료가 무엇인지 나는 사뭇 궁금하다. 홀딱 반했다는 표지그림은 전체적으로 연필자국이 드러나는 밑그림에 색깔을 살짝 입혀 놨고 내부엔 흑백으로만 연출되는데, 굵고 부드러운 선으로 농담 표현도 되는 이것의 재료가 무엇이냐고? 중학교 미술시간에 '연필, 목탄, 콩테..'라고 달달 외운 기억은 나지만 4B연필 외엔 한번도 써보질 않았으니.   

 

아무리 어른이 되어도 예쁜 동화책에 가슴 설레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동화인데도 막내가 중학생이 되는 우리집 서가에 아직도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골치가 아프고 심란할 때 나는 이런 동화들을 뒤적거리며 뒹굴다보면 어느 새 마음이 개운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림만 좋다고 책이 이뻐지는 건 절대 아니다. 책 속의 리보츠는 품어주고 싶은 사랑스런 남자애다. 출판사에서 올린 책소개글에처럼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쓸쓸한 성장기를 읽다보면 엄마처럼 꼭 보듬어주고 나직한 목소리로 응원해주고 싶다. 결론은 그림까지 좋으니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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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1-13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 표지 보고왔어요. 정말 우리나라 그림이 훨씬 낫네요. ㅎㅎ
전 제 책은 표지에 거의 신경을 안쓰는데 아이들 책은 표지가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표지가 좋으면 그냥 사게 돼요. ^^

진주 2009-01-13 08:23   좋아요 0 | URL
크..특히 두꺼운 쌍꺼풀 보니까 만정이 뚝 떨어지더만여 ㅋㅋ~
제가 한 때 디자인 공부를 좀 했는데, 표지디자인이 상당히 끌리더라구요.
계속 할 걸 그랬다 싶어요^^

바람돌이 2009-01-14 00:44   좋아요 0 | URL
이런 진주님 같은 글솜씨에 디자인까지 공부하셨다구요. 정말 대단 대단... 지금 다시 시작하실 생각은요? 괜찮을 것 같은데... ^^
 
입큰 비비 블레미쉬밤(비비크림) - 50ml
이넬화장품
평점 :
단종


- 언젠가 윤이를 위한 여드름 피부 기초화장품 세트 체험단으로 화장품 리뷰를 쓴 이후, 두 번째 화장품 리뷰이다. 평소 화장을 자주 하지 않아 뭐가 좋은지도 모르고 할 말도 없어서 화장품 리뷰는 생각지도 못하는데 오늘 아침 인터라겐님의 마스카라 리뷰를 보며 요즘 내가 애용하는 입큰비비도 입소문 내고싶다고 필 받아 올린다. 이것은 리뷰를 가장한 페이퍼라고나 할까..-

 

수영장의 재밌는 현상 중 하나는, 한 반에서 레슨을 받고 물 속에서는 서로 인사를 나누다가도 밖에서는 못 알아본다는 점이다. 수영장 건물 차 마시는 공간에서도 그러할진대 바깥, 예를 들면 대형마트나 공원 등 수영장과 동떨어진 곳에서 마주칠 때 더욱 그러하다. 머리칼 한 올 안 나오도록 수영모를 쓰고 화장끼 없는 맨 얼굴만 봐오다가 머리를 풍성히 내리고 화려하게 화장하면, 한바퀴 핑그르르 돌면서 원더우먼으로 변신하고 잿투성이 신데렐라가 예쁜 공주님으로 변신하는거랑 마찬가지다. 그래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상대방 앞에서 내 반응은 십중팔구 

'누구....신...지?' 

하며 눈만 끔벅끔벅. 

 

나는 그녀들처럼 화려하게 변신하는 화장술도 없고, 공들여 화장하는 정성도 부족하며(한마디로 게으르다는 말씀ㅡ.ㅡ), 무엇보다 갑갑하고 무거운 느낌이 싫어서 화장을 안 한다. 메니큐어도 손톱이 무거워지고 답답해서 바르는 못하는 지경이니 메이크업 베이스부터 화운데이션 파우더 등을 차곡차곡 발라야하는 화장을 하면 무겁고 답답하며 다른 날보다 더 피로를 느끼는 것 같다. 또 화운데이션만 발랐다하면 가렵기는 왜 그리 가려운지. 쓱쓱 비비고 싶은 걸 참느라 일에 집중이 안 된다.

 

그러나, 피부결 좋다느니 깨끗하다는 말은 마흔 넘어서면 듣기 힘들고 갓 세수한 얼굴을 거울로 바라보며 맑고 예뻐보인다는 자뻑에도 빠져들기가 심히 힘든 나이가 되어버렸다. 언제부터 노화현상이 진행되어 왔는지. 얼굴빛이 누리팅팅하고 칙칙하다. 게다가 잡티는 왜 자꾸 생기는 거얏? 그래도 나는 화운데이션 보다는 차라리 나는 우유 한 모금 남겨서 세안한다든지, 흑설탕에센스(아..이거 맹그러서 빨리 조선인님께 한 병 부쳐줘야하는데..)나 비타민과 에센스가 듬뿍 들었다는 시트지를 얹는 노력을 더 선호한다. 

 

나같은 사람한테는 비비크림이 제격이다. 화장한 감 없이 가볍고 자연스러우며 얼굴색을 화사하게 보정시켜 준다. 특히 지난 성탄절에 레이시즌2님께서 선물해주신 입큰 비비가 지금껏 사용해 본 제품 중에 가장 맘에 든다(더구나 알라딘에서 당분간 덤으로 하나 더 준다니^^). 손가락에 짜면 빡빡한 내용물이 나오는데, 되게 보이는 예상과 달리 얼굴에 문지르는 순간 부드럽고 촉촉하게 스며든다. 뭘 발랐다는 이질감이 금새 사라지고 스킨이나 로션을 바르는 것같이 피부에 동화된다. 설명서를 보니까 내가 느꼈던 그 순하고 촉촉한 느낌이라는 게 알로에 성분 때문이리라고 추측해 본다. 피부측정하는 데서 내 피부는 중성의 건강한 피부라고 하던데, 건성이나 나같은 피부 타입에 적합할 것 같다. 그렇다고 번들거리는 유분기가 느껴지는 건 아니고 주위에 지성 피부인 사람의 화장품을 얻어 발랐을 때 지나치다 싶을 만큼 퍽퍽한 걸 감안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간편하게 어두운 피부를 감추고 싶거나 숨쉬는 가벼운 피부를 원하는 사람한테 좋고, 부수적으로 그저께 올렸던 주책스런 페이퍼의 '윤이 누나~'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동안의 잇점도 있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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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9-01-10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과 저와 레이시즌2님이 나왔지요. 호호

진주 2009-01-11 19:26   좋아요 0 | URL
헤헤헤~^^

바람돌이 2009-01-11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안의 조건이 이거란 말이죠? ㅎㅎ

진주 2009-01-11 19:27   좋아요 0 | URL
걍 두꺼운 화장보다는 한듯만듯한 자연스런게
좀 더 어려보일거라는 생각에서..ㅎㅎ

프레이야 2009-01-12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비비크림만 바르고 다니는 이유도 님이랑 똑 같아요.
우힛~ 마흔 넘어서부터 오히려 더 그러고 다녀요.
이건 장바구니 담아갑니당~

진주 2009-01-13 09:51   좋아요 0 | URL
ㅎㅎ역시 그러셨군요^^
요거요거..쓸 수록 순하고, 맨얼굴같이 착 감기는 맛이 좋아요^^
예전에 쓰던 건, 뿌연 감이 심해서 화운데이션 살짝 바른 느낌이었어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티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던데..그래야 잡티가 커버된다면서요. 이건 그런 티 전혀 없이 피부색을 밝혀줘서 좋아요. 진한 점같은 건 비비로는 무리죠? 이번 겨울엔 점 빼러 가야할까봐요 ㅎㅎ

두 개 줄 때 언능 사세요 사세요 사세요~~ㅎㅎ

인터라겐 2009-02-23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비크림만으로 커버가 된다면 진주님은 아직 탱탱하고 깨끗한 피부를 유지하시는 거랍니다..
흐흐 전 비비크림으로 커버가 안되어서 그위에 또 찍어 발라야 해요...
화장을 지우면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도 몰라 보고 짖는 비애가.... 이넬 비비크림 메모했습니다...
 
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러두기 1 : 이 글은 오직 소설로서 읽혀지기 바란다 - 

책장을 펼치면 맨 먼저 단정하고 온화한 우리 눈에 익숙한 이순신의 영정 그림이 나타나고,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의 주인공인 장군의 칼 사진이 있고, 그 뒤로 장군의 친필 난중일기와 각종 친필 필적들과 선조임금의 국문 교서가 실렸다. 또한 책 뒷쪽엔 충무공의 연보를 비롯한 각종 해전의 전투모습을 그린 지도도 실려있다. 충무공 이순신은 실존인물이며 난중일기의 전투 내용도 실화라는 것을 잠시라도 잊을 사람은 없다.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본질이 '허구'인 소설 장르의 이순신 이야기에 독자를 '그럴듯하고 있음직한' 혼돈 속으로 최대한 빠트리기 위한 장치로 그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자료들을 먼저 선보인 것일까? 


그래놓고는 친절한 김훈 선생님께서는 어린 독자 혹은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헷갈릴 독자 들을 위해 '일러두기'에 이 책이 소설임을 짚어주는 센스를 발휘하다. 실제와 혼돈을 느낄 위험소지가 있다고 여겨서 내린 작가의 이타적인 배려였는지, 아니면 그동안 우리의 틀에 박힌 성웅 이순신의 이미지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펼쳐질 너무나 인간적인 이순신 장군에 대한 각계각층의 독자들의 공격을 대비하여 안전하게 도망갈 구멍 하나 터놓는 이기적인 방편이었는지 김훈은 본문이 시작하는 머리에 앞서 미리 쐐기를 박아 두었다. 생각건대 일러두기까지 꼼꼼하게 보는 독자가 몇 있으랴. 내 생각은 후자 쪽, '이기적 배려'로 더 기우는 것이다. 소설가로서 독자가 실제와 분간도 못할만큼 푹 빠지도록 만드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독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도 인식 못하는 사이에 사실과 소설의 경계를 넘어뜨려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중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의 고민을 듣게 되었다. 생전 책이라곤 안 보던 녀석이 밥도 안 먹고 그 뚱뚱한 책을 끼고 틀어박혀 있더란다. 기특해서 아들녀석이 학교 간 사이에 훑어 보았고, 책장을 넘기다간 수위 놓은 성적인 묘사에 놀라 '중학생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성적인 표현이 된 책을 읽혀도 될까요?'하는 고민과 함께, 참고하라고 친절하게도 문제의 장면들이 나오는 책 본문 몇 장을 손수 타자해서 올려주셨다. 일테면, '나는 여자를 안듯이 그 여자를 베어주고 싶었다. 내 몸을 그 여자의 몸 속으로 밀어넣듯이, 그렇게 칼날을 여자의 몸속으로 밀어넣고 싶었다(p48)'같은 부분.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어머님은 잘 모르실지 모르오나 요즘 아이들은 이너넷을 통해 훨훨 더 자극적이고 노출 심한 끔찍한 것들을 이미 접하여 그 방면으론 나름 면역이 된 아이들이다'라는 안심처방과 '다시 한 번 더 일러두기를 꼼꼼하게 읽고 명심할 것-김훈도 이 부분을 예상하고 일러두기 1번 안전장치만으론 부족해서 2번 안전장치도 잊지 않았다. 

-일러두기 2. '여진'이라는 여성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실명의 여인이다.그러나 41~49쪽 사이에 기술한 이순신과 여진의 관계는 글쓴이가 지어낸 것이다.-

라는 중복된 안전장치 말이다-과 그러면서 나는 아이가 아직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며 읽기엔 어려 역사공부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니 내 아이라면 좀 더 큰 다음에 읽히면 좋겠다는 사견을 말한 적 있다.  

 

이렇듯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소설의 허구성을 전제로 고결한 영웅의 모습 보다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전개된다. 인간이기에 느끼는 내면적인 갈등과 생각, 욕망 등을 그린 1인칭 서술형 필치에서 나는 이순신이라는 인물보다는 어쩐지 작가 김훈이 더 오버랩되어졌다. 이순신이라는 이름으로 말하는 작가 김훈의 말 정도. 어쨌거나 책은 재판에 재판을 거듭한 베스트셀러답게, 상당히 두꺼운 몸집으로 중압감을 주는 양장본임에도 가름줄이 없어도 될 만큼 '단숨에 읽혀버릴'자신감에 가득찬 책이었다. 매 쳅터 머릿부분의(쳅터의 우리말 표현이 뭐였더랑??)아름다운 문장들은 봐도 봐도 싫증나지 않았고 밑줄 긋고 싶은 역설적인 멋지구리한 표현들도 있었다. 책이 말하고 싶었던, 즉 이순신의 이름으로 김훈이 말하고 싶었던 바와는 어느 정도 동떨어졌겠지만 솔직한 나의 리뷰는 여기서 끝~

 

2009.1.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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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9-01-14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두 아들 녀석들 읽히려고 이 책 샀답니다.
저희 집 아들 녀석들은 이제 고2, 중3이니 읽혀도 무난하리라 생각됩니다만,,,ㅎ ㅎ ㅎ
요즘 애들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앞서가는 거 맞아요.^^;;
리뷰 재미나게 읽고 갑니다.^^ 제 서재에 코멘트 남겨주셔서 반가웠습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진주 2009-01-14 16:04   좋아요 0 | URL
더욱 반가우신 뽀송이님^^
개인차는 있겠지만..저는 무조건 대학가서 봐도 된다고 말 해줍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
달시 웨이크필드 지음, 강미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지난 가을, 나는 꼼짝없이 마라톤 구간에 갇힌 적이 있다. 사전 정보없이 그런 길로 접어든 우둔함을 스스로 원망하며 약속시간보다 늦어지리라고 급히 전화 연락을 취하고 나처럼 오도가도 못하는 기다란 차의 행렬 속에서 건너편의 우리와 정반대로 대로를 마음껏 활개치며 달리는 그들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들-마라토너들. 시에서 매년 열리는 축제의 시작을 마라톤으로 시작하는데 42.195km를 완주하는 정식마라톤과 반만 달리는 하프마라톤 코스가 있는데, 내가 봤던 그들은 하프 마라토너들이었다.  평소에 건강관리하고 운동 꽤나 한다는 일반인들이 대부분이라 달려온 등장인물들은 백발에 흰수염을 멋있게 휘날리는 할아버지, 중년의 상징인 뱃살을 날려버리고 대신 납작한 배와 축구선수같은 탄탄한 허벅지의 아저씨들, 그 중에서도 가장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포니테일로 긴 머리를 묶고 복근이 살짝 보이는 짧은 티셔츠와 핫팬츠를 입은(등번호판 외엔 자유로운 복장이었다)젊은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녀들의(그런 여성이 한 둘이 아니었다) 건강하고 자신넘치는 뜀박질하는 모습에 나는 완전 매료되었다. 나도 뛰고 싶어졌다. 비록 내가 학창시절 소위 말하는 벤취소녀로서 허약하고 운동엔 영 젬병이지만 유일하게 달리기 하나만큼은 얼마나 잘 했던가를 기억해냈다. 단거리와 오래달리기 둘 다 자신있었다. 머리칼 날리며 바람을 가르는 느낌과 땅을 박찰 때의 느낌이라든가 달리기 시작하면 아랫배와 다리의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만큼 가벼웠던 느낌들이 차례로 기억났다. 그렇게 달리기를 좋아하면서 너무 오랫동안 달리지 않고 살았던 나는 급기야는 내년이나 내후년 쯤에는 저 하프 마라톤 행렬에 나도 끼고 싶다는 구체적인 희망을 가졌다.  

 

그런 나에게 도서관 신착도서 꽂이에서 이 책은 제목만으로 번뜩 눈에 띄었다. 달시 웨이크필드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I Remember Running)'. 조금씩 달리는 훈련을 하던 중에 겨울을 만나 한창 게을러지고 있는 나에게 달리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차게 만들어 줄 그런 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빌려왔다. 라인강변을 달리며 내게도 같이 뛰자고 의욕을 북돋워주던 요시카 피셔 장관의 '나는 달린다'정도의 기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읽어보니 이 책은 내가 애초에 원했던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럼 실망했냐고? 그렇지 않다. 달리는 희열 이상의 삶에 대한 경외심과 눈부신 경탄이 있었다. 책 뚜껑을 덮을 때는 너무나 가벼운 동기로 이 책을 집어들었음을 지금은 고인이 된 달시에게 미안한 맘까지 들었다.  

 

서른 셋의 그녀는 175cm에 52kg의 아름다운 몸매의 소유자였으며, 달리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하이킹과 호수에서 수영하는 것을 즐기는 누구보다 건강하며 활동적인 젊은 여성이었다. 대학에서 영문학 작문법을 가르치며 데이트 주선업체에 회원으로 가입해 연인을 찾기도 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단지 특이한 점이라면, 아기를 낳아 기르고 싶은 모성애가 남달랐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녀는 아기를 갖고 싶어서 결혼할 남자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최후의 방법으로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받아 인공임신까지 계획할 만큼 아기에 대한 열망은 간절했다. 다행히(내 주관으로는 지극히'다행히') 인공수정 일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스티브와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됨으로 인공수정계획은 무산되었지만 말이다.  

 

사람은 자기 인생을 얼마나 계획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일까. 달시가 인공수정을 계획하고 진도대로 착실히 실행하고 있었지만 예기치 않게 '스티브'를 만나는 변수가 있었듯이,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계획과는 상관없는 궤도를 달리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그 즈음 그녀의 계획을 완전 뒤집어 엎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복병이 나타났으니, 그것은 ALS였다. 운동뉴런증후군으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슈워츠가 알았던 루게릭이라고 더 잘 알려진 병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녀가 스티브를 만나고, ALS가 발병하고, 결혼과 출산, 그리고 호흡곤란으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까지의 2년 정도의 다난한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달리는 자만이 아는 기쁨을 안고 멋지게 달리는 모습은 한 장면도 묘사되지 않았지만 달리지 못하는 다리를 갖고도 누구보다 씩씩하게 뜀박질하던 그녀의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현대의학으로는 불치병을 앓았지만 인생을 긍적적으로 바라보며 발과 손 다리와 팔 그리고 온 몸의 근육이 차례로 마비되어 갔지만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성품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건강할 당시 그녀는 장애인에 대해 이렇다할 관심도 없었을 뿐 아니라 활동적이고 민첩하여 자기 길에 방해하며 꾸무적거리는 노인이나 장애인에 대해 (속으로)짜증내며 비켜갔던 사람이다. 장애를 안고, 또 단축된 생명을 안고 시시각각으로 자신의 의지를 배신하며 무너져가는 육신의 속도에 적응해 나가기란 참으로 힘들 것이다. 그런 힘든 과정 속에서 오히려 전에 없던 감사가 넘쳐나와 독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일상 생활이 어렵고 생명 유지가 힘든 치명적 장애를 가진 그녀에게 내가 진정으로 감동했던 부분은 '당당함'이고, 정상인과 '동등한'사고방식이다. 제 한 몸도 못 가누면서 아기를 갖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떤 편견을 갖고 있는가. 또 ALS유전인자를 3%나 물려줄 위험부담을 갖고 임신이라니 당치도 않다는 생각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모체에도 생명단축에 가속도를 붙이는 자살행위에 가까운 것이라면 어떻게든 임신을 막으려 설득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그녀와 건강한 사람 사이에 다른 점이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노화과정을 겪으며 죽기 마련이다. 그녀는 그 노화과정이 건강한 사람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마치 '빨리 감기 버튼'이 눌려진 것처럼 그녀의 노화속도가 빠르게 진행되어 좀 더 빨리 생의 마감점에 도달했을 뿐이다. 그러니, 그녀도 보통사람들처럼 누군가와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기를 낳는 일을 하면서 당연히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그녀의 생각의 흐름에 동조하고 함께 호흡하던 나는 그녀의 인생이 '너무 빠른 빨리 감기 버튼'이 아닌 조금만 더 느린 속도의 '덜 빠른 빨리 감기 버튼'이라도 눌려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연민으로 애틋하다.

 

2009.1.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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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십리밖 물냄새를 맡는다
허만하 지음 / 솔출판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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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막을 가는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이것은 작년 폐암으로 이 세상을 하직한 한 병리학자의 말이다. 그는 나의 스승이었다. 아름다운 말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나는 아라비아인의 인식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은 낙타를 구별하는 데 수십 가지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세계는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의하여 구정되는 것일까. 그러나 존재와 언어 사이에는 아무래도 틈이 있는 것 같다. 언어는 그만치 불완전한 것이다. 그 틈을 우리는 시로 메우는 것이다.

사람에게 飛翔의 충동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새가 존재하는 것이다. 바슐라르의 황홀한 말이다. 나는 바다와 강이 맞닿는 낙동강 하구에서 바라보았던 어느 겨울날의 한 풍경을 생각한다. 그날 새는 풍경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아득히 먼 낙탓빛 바람에 흩날리면서 새는 눈부신 한 점에 불과했다.

시인이 맡는 십리 밖 물 냄새의 정체는 무엇일까.

1983.허만하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1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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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책이다. 내 책을 꽂을 공간을 갖는 것이 가장 사치스러운 소원이 되어버린 처지에 소장하는 책은 몇 번을 고심해서 고를 수 밖에 없다. 적어도 도서관에서 두어번은 빌린 적이 있는, 너무너무 갖고 싶은 열망에 잠을 설칠만한 책일 경우에 해당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 벼르고 벼르다가 산-도서관에서 몇 번은 빌려서 본 책이다.
나는  읽으며 시인이 맡는 십리 밖 물냄새의 정체가 내 속에 조금이라 잠재되어 있는지 확인 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2004. 9. 20. 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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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9-01-05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쓰려고 보니, 2004년도에 페이퍼로 잠시 메모한 게 보여서..
이것으로 갈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