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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단테, 신의 나라로 여행을 시작하다 ㅣ 서해클래식 3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5월
평점 :
학창시절, 나는 <단테의 신곡 읽어내기>에 여러번 도전하였다. 애석하게도 신곡은 수면제 역활을 톡톡히하여 실제로 책읽는 시간보단 꿈에서 지옥과 연옥을 정신없이 헤메던 서글픈 사연으로만 남아 있다. 무엇이 신곡을 읽기 힘들게 하는 것일까? 먼저 시대적 차이일 것이다. 몇 백년을 거슬러 올라가 14세기의 시대적 배경, 관습, 사고를 이해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특히, 당시에는 카톨릭 종교관이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전제하에 씌여졌지만 오늘날 카톨릭의 비신자로써 단테의 세계관에 깊이 공감하는 독서는 힘들 것이다. 또 다른 걸림돌로는 공간적 이질감과 이국언어 이탈리아어에 대한 낯설음은 달필의 번역가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여전히 생경스러울 것이며, 또한 번역상 여러가지 문제들도 감안하면 신곡은 읽어내기가 결코 수월치 않다.
이번에 서해문집에서 펴낸 신곡은, 그동안 신곡이 유명세에 비해 실제로 탐독한 독자층이 얇은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책인 것 같다. 책을 사기 전에 광고문구에 "쉽게 풀어 쓴.."이라는 대목에 끌리면서도 쪽수가 300여쪽 밖에 안된다는게 퍼뜩 납득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기론 묵직한 부피감에 지레 겁을 먹었는데 어째서 풀어썼다면 더 늘어나면 더 늘어났지 300쪽 밖에 안 되는 것일까? 혹시 다 추려낸 부분 번역? 책을 받아보니 알 것 같았다. 대서사시인 운문을 기행문 형식인 산문으로 풀어 썼더란 말이다. 행갈이 없이 산문으로 써서 분량이 줄어 들었단 말이겠지. 분명히 완역본이라고 소개되어 있다(원문을 모르니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설마 출판사와 역자가 거짓말을 했을라구..오오..이것이 어수룩한 독자의 한계).
산문으로 해석되어 있으니 의미전달은 무척 쉽다. 단지 나도 아는 몇몇 유명한 문장은 산문형식 때문에 멋스러움이 조금 사그라든 느낌이다. 도입부를 살펴 보면,(지옥 1곡)
우리네 인생길 반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었네
라는 운율을 살린 멋드러진 표현이 이렇게 바뀌었다. " 인생의 반평생을 지냈을 무렵, 나는 바른길에서 벗어나 어두운 숲 속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남아 있는 방대한 분량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자면 역시 산문이 부드럽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신곡의 내용과 감상에 대해서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주인공 단테가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스승 베르길리우스의 도움을 받아 지옥에서 3일, 연옥에서 3일, 천국에서 1일 동안 여행하는 과정을 통하여 지난날을 반성하고 구원에 이르기까지의 열망을 그리면서 선악간의 갈등을 겪고 있는 인간 내면을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린 작품이다.
이 책은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지루한 고전이란 느낌이 들지 않도록 참신하게 구성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표지색깔부터 새뜻한 파랑에, 종이 질감도 좋고 무엇보다 책 내부에 양 여백을 한껏 살린 것이 좋다. (박정주역의 북학의와 비슷) 여백이 넓직해서 시야가 확 트이고 옆에 메모하기도 좋다(무엇보다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 고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을 꼼꼼하게 달아 놓아, 책읽기가 지루할 때 더 이상 졸립지 않도록 읽을거리를 선사하였다.
졸립단 말이 나왔으니...이 책을 들고는 한 번도 졸지 않았다. 산문으로 부드럽게 풀어썼고 용어도 세련되지만 신곡은 여전히 신.곡.스.러.웠.는.데 내가 졸지 않았던 것은 풍부한 삽화 때문이다. 처음에 책을 받아 들고 나는 삽화만 죽 넘기며 읽었다. 고전에서 자주 만나는 구스타브 도레의 섬세한 펜화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보티첼리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귀도 레니, 윌리엄 블레이크 등의 여러 화가의 그림이 실려 있어 그림만 감상해도 줄거리가 이어졌다.
고전은 매일같이 쏟아지는 책의 홍수 속에서도 오랜 세월을 버티고 살아남은 책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고전의 가치는 당대마다 여러가지 잣대에서 높이 평가받은 양서 중의 양서이기 때문에 그토록 생명력이 긴 것이다. 요즘도 고전을 필독서에 넣어서 반드시 읽기를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나는?) 고전, 특히 필독서라는 말만 들어도 그 무게에 짓눌려 읽기 전부터 고통스러워 해야하는 건지, 원. 내가 읽은 서해문집의 신곡은 고전에 좀 더 쉽게 다가가도록 온갖 배려를 다 해준 것 같아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특히, 청소년. 그리고 청소년들에 책읽으라고 닦달하는 기성세대들에게도! )
050602ㅂㅊㅁ
ps 고전을 두루 섭렵한 교양미를 갖추고 싶으신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