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며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내게,

사람의 등은 넘을 수 없는 관계의 표지판 같다.

사람의 등을 보는 걸,

친한 사람의 등을 보는 게, 참 싫다.

앞으로 나란히 할 때 말고는, 등 보이는 일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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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02-04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누군가, 제 등을 봐주는 게 좋습니다만.
친한 사람의 등을 보면 토닥토닥 하거나 안고 싶어지고.

2005-02-04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5-02-0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어떤 선배가 남자와 헤어지면서 내가 사라질 때 까지 이 길에서서 내 뒷모습을 바라보라고 했다지요. 그 남자가 본다 생각하니 꼿꼿이 걷는게 너무 힘들었다면서... 누가 내 등을 보고 있다 생각하면 걷는 것 조차 힘들다는 걸 말해주더군요. 블루님의 등은 제가 봐드릴게요. 옷에 묻은 먼지는 툭툭 털어내기도 하면서...^^

플레져 2005-02-04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곧, 속삭님께 달려갈겁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엄마 심부름 가야해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얼라 같죠? ㅎㅎ)

icaru 2005-02-0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양갈래로 묶는 저런 앙징맞은 머리 스타일 해 보고 싶네요...ㅠ.ㅡ
엉뚱한 소리 하다갑니다...

플레져 2005-02-04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마를 했더니 양갈래 머리가 고스란히 되는군요. 히히 ^^

하얀마녀 2005-02-05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래곤 라자'에서 '등을 보인다'는 의미에 대해서 인상깊게 나왔었다는 것이 생각납니다. 물론 위의 의미와는 좀 달랐습니다. 저도 좀 엉뚱한 소리일라나요? ^^

플레져 2005-02-05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드래곤 라자를 본 적은 없는데, 그 의미 때문에라도 한번 봐야겠네요.
 

  방문객

  무거운 문을 여니까
  겨울이 와 있었다.
  사방에서는 반가운 눈이 내리고
  눈송이 사이의 바람들은
  빈 나무를 목숨처럼 감싸안았다.
  우리들의 인연도 그렇게 왔다.
 
  눈 덮인 흰 나무들이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복잡하고 질긴 길은 지워지고
  모든 바다는 해안으로 돌아가고
  가볍게 떠올랐던 하늘이
  천천히 내려와 땅이 되었다.
 
  방문객은 그러나, 언제나 떠난다.
  그대가 전하는 평화를
  빈 두 손으로 내가 받는다.

   詩 : 마종기



Edward H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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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4 0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마녀 2005-02-05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서재 방문자 수가 10000을 넘은 지 이미 오래군요. ^^
(이 좋은 페이퍼에 이게 도대체 뭔 소리래... ㅜㅜ)

플레져 2005-02-05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정 : ^^
그러게요. 그날이 언제였는지...좀 아쉽지요? ㅎㅎ

진주 2005-02-05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닛!!! 저 아줌마는 스커트 밑에 뭘 입기라고 했나요???왜 난 안 보이지? ㅎㅎ
(이 좋은 페이퍼에 이게 도대체 뭔 소리래...ㅜㅜ)하얀마녀님,이런 것두 찌찌뿡인가요?

플레져 2005-02-06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박찬미님...ㅎㅎㅎㅎ
 

화석 



그는 언제나 그 책상 그 의자에 붙어 있다.
등을 잔뜩 구부리고 얼굴을 책상에 박고 있다.
책상 위엔 서류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두 손은 헤엄치듯 서류 사이를 돌아다닌다.
하루종일 쓰고 정리하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거북등 같은 옆구리에서
천천히 손 하나가 나와 수화기를 잡는다.
이어 억양과 액센트를 죽인 목소리가 나온다.
수화기를 놓은 손이 다시 거북등 속으로 들어간다.

때때로 그의 굽은 등만큼 배가 나온 상사가 온다.
지나가다 멈춰서서 갸웃거리며 무언가 묻는다.
등에서 작은 목 하나가 올라와 고개를 가로 젓는다.
갑자기 배 나온 상사의 목소리가 커진다.
목은 얼른 등 속으로 들어가 나올 줄 모르고
굽어진 등만 더 굽어져 자꾸 굽실거린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모래밭에서 한참 거북등을 굴려보다 싫증난 맹수처럼
배 나온 상사는 어슬렁어슬렁 제 정글로 돌아간다.

겨울이 지나고 창 안 가득 햇살이 들이치는 봄날,
한 젊은이가 사무실에 나타난다. 구둣소리 힘차다.
그의 옆으로 와 멈추더니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다.
그는 기척이 없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붙어 있다.
젊은이가 더 크게 소리치며 굽은 등을 툭툭 친다.
먼지가 일어나고 등이 조금 부서진다.
젊은이는 세게 그의 몸을 흔들어댄다.
조그만 목이 흔들리다가 먼저 바닥에 굴러 떨어진다.
이어 어깨 한쪽이 온통 부서져내린다. 사람들이 몰려온다.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버린 그의 몸을 들어낸다.
재빠르게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하고 새 의자를 갖다놓는다.

詩 : 김기택



Georges de La Tour-Repenting Magdalene, also called Magdalene in a Flickering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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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01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요즘 바쁘신가봐요.
그림과 시가 잘 어울리네요.
저 여인은 시인의 와이프 이진명 시인 같기도 하고......
아쉬=3 너무 추워요. 따뜻하게 하고 지내세요.

2005-02-01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5-02-0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은 일상의 모습이네요.

플레져 2005-02-0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어제는 잠깐 컴에 들어올 수 있었어요. 오늘 다시 기지개 켭니다~
잉크냄새님, 거부할 수 없는 일상입니다...ㅠ
 



나는 잘 웃는다,

우는 만큼 잘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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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1-28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법과 문학 사이 잘 받았습니당^^ 덩말 감사~

찹싸알떡 2005-01-28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멋지당
퍼갈께용.

stella.K 2005-01-2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icaru 2005-01-28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노먼록웰의...위트란~!

플레져 2005-01-28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저두 감사해요 ^^
지영양,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ㅎㅎ
스텔라님, 지영양 말에 동감? ㅎㅎ
복순이언니님, 저 두 줄은 제가 쓴 건데...^^;;

icaru 2005-01-28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그니까..소녀가...책보고..똑같이 거울보고 포즈취한거 아닌가요? 그 위트를 말함니~ 아래 님이 쓰신 두 줄은 위트라기 보담~ 함축과 상징인듯...^^?
제가 아는 노먼록웰의 엽기코드임다~


플레져 2005-01-2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헛다리도 잘 짚죠, 제가? ^^ 저 그림은 정말 그렸는지 아닌지 의심스러워요. 링컨 초상화 옆에 모나리자라니...

날개 2005-01-29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플레져님 서재에만 오면 좋은 숫자가 눈에 띌까요? ^^

511111


플레져 2005-01-2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덕분에 못보고 지나가는 것들을 볼 수 있어 행복해요 ^^

깜소 2005-02-15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글 옮겨 갈께요..^^ 늘 늘 건강하세요...

플레져 2005-02-15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깜소님~
 



지난 여름, 시립 미술관 샤갈 전시회장 옆에
천경자 화가의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작은 골목길 처럼 붙어 있었다.
어마어마한 그림들을 보고 나온 후여서 그랬는지
인파에 시달렸기 때문인지 조금 현기증이 났다.
휴식공간에 들어선듯,
천경자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는 갤러리는 편안했다.
주최측에서 쉬어가라는 메모지를 건네 받은 것처럼
그 작은 갤러리에 걸린 그림들은
강렬한 색을 입고 있는데도 고요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주 오래전, 6,70년대 뉴욕의 풍경,
이방인의 눈으로 스케치한 세계의 도시들...
연습장에 휙 그려낸 것 같은 그림들...
그녀는 가는 곳마다 그림을 그렸구나 싶어서
나는 그 마음도 참 부러웠더랬다.

내 맘에 쏙 들었던 것은 모델하우스처럼 만들어 놓은
천경자 화가의 방이었다.
그림을 그릴 때 입는 작업복과 널려 있는 붓, 팔레트, 물감은
금방이라도 화가가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것 처럼
생기 충만이었다.
희미하게 천경자의 실루엣이 보이는 것도 같았지, 아마...

친정 엄마가 쓰시는 아주 오래된 사기그릇의 모양과 닮은
그릇은 화가에게는 물감을 짜서 쓰는 용도였다.
실감나게 하기 위해 짜놓은 물감인데도
한참동안 그 유리방을 들여다보니
화가의 열정이란 물감을 짜는 순간마다
막 직조한 옷감을 입듯 살아나겠구나 싶었다.

같은 그릇이지만, 그릇에 담는 내용물이 다른 인생.
저 높은 우주에서 바라보면 인생의 작은 알갱이는 보이지 않을거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사람이 살고 있을거라 짐작되는
터전만 보일게 뻔하다.
타인의 시선도 내게 그러지 않을까.

타인의 짐작은 두렵다. 

고독한 시간을 화폭에 담아내던 화가는
자신만의 꽃을 들고 키우는 개와 산책을 나선다.
세상의 시간과 다른 시간을 걷고 있는 화가에게는
자신의 외로운 두 발을 꽃에 파묻는다.
고독을 들키고 싶지 않다.
화가가 꽃을 들고 있는 까닭이다.

내가 만들어낸 예술 작품은 기꺼이 보여주지만,
내가 살았던 고독의 시간은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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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 2005-01-27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경자,의 그림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립미술관을 참 자주 들락거렸지요. 어느 위치에 어느 그림이 걸려 있는지, 이미 제 머리 속에는 훤히 동선에 따라 그림이 움직입니다. 지금은 '생태'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시립미술관에 천경자 실이 생기고서는 그 그림이 맨 처음에 걸려 있었는데, 그 뒤로 잘 안 보이더군요. 생태,가 시립미술관 소장인데, 다른 전시회로 빌려(?) 갔는지, 아니면 반대로 잠시 시립미술관에서 빌려서 전시를 했었는지 말이지요. '생태'야 워낙에 유명한 그림인지라, 그렇게 '보았다'라는 사실만으로 혼자 감격스러워했더랬죠.
제가 좋아하는 그림은 '내 인생의 - 페이지' 시리즈의 그림들입니다. 그림 속의 여인들, 똬리 튼 뱀들과 함께 서 있는, 정면을 응시해서 나와 눈이 마주치게 되는 그 그림들의 여인들을 좋아하거든요.
아무튼, 천경자 화백 때문에 시립미술관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과장일는지. 아무튼, 사실이기도 한걸요. 천경자 그림 보고, 반가워서요-

플레져 2005-01-28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경자의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샤갈전 때문이었어요. 내 인생의 - 페이지 시리즈, 찾아봐야겠네요.

hanicare 2005-01-28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같은 보통사람은, 남루한 고독 한 벌로 일생을 나나봅니다.

플레져 2005-01-28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님, 가끔 그 한 벌 빌려주세요. 다른 사람의 고독은 어떤가 너무 궁금해요 ^^

비로그인 2005-01-2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 말을 잊었어요..^^;)

플레져 2005-01-2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요, 난니님?

잉크냄새 2005-01-28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예술입니다.^^

kimji 2005-01-28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ㅡ 제가 제목을 잘못 알려드렸군요. 혹시나, 해서 저도 찾아보았는데, 그래서 다시 알게 되었네요. '내 슬픈 전설의 - 페이지' 49페이지, 보다는 이 22페이지 그림이 참 좋습니다. 여인의 눈동자와 그녀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저 뱀의 똬리도 마음에 들고요.


비로그인 2005-01-28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좋은데 플레져님의 글도 너무 좋아서요^^*

플레져 2005-01-29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김지님, 난니님, 때로 저는 그 순간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곤 합니다. 저의 무심함이 아니라, 저의 건망증을 이해해주실거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