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반짝이며 날아가자

'저길 봐'하고 소리칠 뻔했다

나 혼자인데도

-- 다이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드무비 2004-09-0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쿠까지 읽고 갑니다.
사진도 좋네요.^^

에레혼 2004-09-0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저 사진 맘에 들어요. 저 아이처럼 제 그림자에 도취해 빙빙 돌아보던 시절이 언젠가 있었던 듯싶은데 말이지요......
 
 전출처 : 밥헬퍼 > 김지하, 오에겐자부로, 장 그르니에

                                                                1                                     

    말이란 가장 사소하며 가장 작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쓰기에 따라 의의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커다랗게 변하기도 하고, 중요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또한 그 사람의 '말'이 그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말'은 '말하기'라는 더욱 중요한 문제를 지니게 됩니다. '말'이 가장 일상적인 행동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담론을 갖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997년 문화비평지 상상 겨울호. '히로시마 노트'의 오에 겐자부로와 '오적'의 김지하에 관한 정진홍의 글이 실렸고  어느 방송에서 두 사람이 만나 대담했던 내용을 본 일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1990년 처음 만나 제2차대전 당시 원폭이 떨어졌던 '히로시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NHK의 특집 프로그램인 '세계는 히로시마을 기억하는가'에서 김지하는 대담 초청자로, 오에겐자부로는 진행자로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김지하는 다소 냉정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계는 히로시마를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주제는 잘못되었습니다. 오히려 문제의 기본적인 성격으로 본다면......'전쟁에 희생된 백만 아시아인을 기억하고 있는가? 정신대나 강제 연행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는가?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옳다고 생각했고, 당연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오에겐자부로는 열심히 자기 나름대로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했습니다.

  그 후 5년 뒤, 두 사람은 한국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런데 KBS가 진행한 두 사람의 대담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5년전 김지하와의 대담이후에 자신이 적지않게 당황했던 한가지 일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제 생각이 달라진 것은 이 때입니다.

  "저는 김지하 선생의 이야기를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대단히 격렬하게 말씀하셨지만 옳은 말씀이라고 느끼면서 머리를 수그리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그 방송 테이프를 모두 방송으로 내 보냈습니다.  여러가지 반응이 있었는데 특히 제 아이는 죄인처럼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쇼크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비판을 받으면 저는 슬퍼지고 상처를 입습니다. 그러나, 제 성격탓인지 저는 비판을 받으면서 대단히 감탄했습니다."  

 제가 살아온 날 동안에 김지하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그는 생명과 밥의 사상을 피력하며 대중들에게 예전의 필력을 과시했습니다. 1991년 2월 그는 다른 사람은 좀처럼 하기 힘든 고백을 신문지면에 실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그의 고백의 요지는 '자신은 더 이상 김지하가 아닌 김영일로 살겠다'는 것이며, '자기 씨를 잉태한 술집 여자에게 낙태를 강요했던 것을 진정으로 회개한다.'는 내용을 밝혔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그의 고백을 진솔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오엔 겐자부로는 '주체와 공생'이라는 문학주제로 그의 책을 써왔습니다. 그의 이런 주제는 그의 아들 히카리가 장애자였으며 그와 더불어 평생을 살아온 그의 삶과 궤적을 같이합니다.  그러나 1995년 오에 겐자부로 앞에 있는 김지하는 자기 고백적인 김지하가 아닌 성토하는자로서 등장했습니다. 김지하는 자신의 사상을 한 개인을 넘어선 '동북아생명공동체'라는 거대한 담론을 피력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으로 오에 겐자부로를 몰아붙인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콘크리트 바닥 틈새를 비집고 피어오르는 작은 풀의 생명력'같은 그런, 작지만 큰 울림이라는 단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김지하는 자신의 이야기에 동학이라는 커다란 역사와 장자나 화엄경같은 광활한 지식적 세계관을 담아 마음껏 펼쳐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오에 겐자부로의 대응은 나를 다시한번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김지하의 말에

 "동학의 구상은 우주적이고 사회적입니다만, 저는 이렇게 작은 일 장애자 아들과 어떻게 공생하면서 살아가느냐를 생각했습니다. "   

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하기보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예술관을 인용했습니다:"인간의 작은 영혼과 전 우주를 연결시키는 파이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파이프를 발견하는 것이 예술이다."는.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는 계속해서 김지하 앞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하나의 우주를 완성시키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철학체계를 말이죠. 그리고 그 안에서 동학이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적인 아시아 인식이 하나의 큰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의 작품을 보듯, 김지하 전집을 읽듯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매우 다릅니다. 저는 세계를 구축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언제나 확산시키고자 할 뿐입니다. 자신의 세계를 장대화시키고 분산함으로써 나 자신을 없애는, 그런 방향으로 여태까지 살아온 것입니다....선생님께서는 동학이라는 커다란 바위를 지니고 계신겁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런 바위가 없는 것이죠....(그러나)...그것은 결코 타인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죠. 타인과 공생하기 위한 바위여야 합니다. 바로 그걸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과정이 저의 문학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는 선생님께로부터도 배우고 유럽으로부터도 배우고 마르크스로부터도 배웁니다. (...)제 아이 문제만 집중하며 인생의 30년을 보냈습니다. 그 대신 저는 자유롭습니다. 정말 기구처럼 붕붕 자유롭게 떠다닙니다." 

                                                                     2

   인간이 맨 처음 이 세상에 존재했을 때의 정황을 신앙과 신학으로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창세기1-3장을 읽다 보면 우리는 한가지 지나칠 수 없는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은 피조물이 창조되면서부터 '말'을 할 수 있는 기능을 더불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든지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든지 하는 표현없이 예의 뱀과 하와는 말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을 주고 받는 과정을 통해 하와의 생각을 읽어내고 뱀의 생각을 읽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챕니다. 가령 전통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장이 되어버린 '정녕 죽으리라'와 같은 단언적 표현이 '죽을까 하노라'라는 가능성의 표현으로 바뀐 것을 발견하는 것이 좋은 예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의 실수로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드러냈던 최초의 감정이 '두렵다'라는 것인데 그 순간 그들은 자신이 벗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을 의사소통의 도구로 제시한 것은  그것이  살아가는 관계의 기본적인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대화와 공존을 유지하고 더욱 긴밀하게 지속되도록 하는 도구로서 기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허무'의 틀 안에서 긍정과 부정으로 절묘하게 구성하여 궁극적 희망을 제시한 구약성경의 '전도서'라는 글에는 이 말에 대한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을 하는 자신이 반드시 자기 앞에 지혜자, 더 나아가 창조자가 항상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가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는데 이 경우 두 개의 행동지침을 갖게 되는데 첫째는 말을 섣부르게, 급하게 하지 말 것과 상대방보다 자신의 말을 적게 하라는 것입니다. '느리게 말하기'와 '듣고 말하기'가 말하기의 지혜로운 지침이 되는 셈입니다. 

  여기서 '느리게 말하기'는 하나의 '말'이 거대 담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부터 거대 담론으로 파생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점에서 '느리게 말하기'는 정치적 화법이나 막연한 지식에 기반을 둔 현학적인 말을 경계하는 것이 됩니다. 결국 '느리게 말하기'는 자신 안에 온전하게 내재되어 무르익은 말들을 꺼내는 과정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한 느리게 말하기는 은유적 표현보다 직유적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듣고 말하기'는 자신의 말보다 타인의 말을 더 많이 존중하는 태도와 관계있습니다. 탈무드의 격언처럼 '입이 하나요, 귀가 두개인 것은 2배나 많이 들어야 한다'는 교훈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듣고 말하기'는 자신의 말이 홀로 존재하지 않고 관계안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장치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개인적으로나 우리 사회적으로 먼저 듣고 함께 말해야 할 '화두'가 없는 셈입니다. 자신이 붙잡고 끝까지 들어야하고 되새겨야 할 '삶의 주제'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던이 가져다 준 '해체'라는 선물은,  저마다 자신의 말을 마을껏 할 수있다는 점에서 귀가 솔깃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받기는 받았으나 열어보기가 망설여지는 그런  불온소포처럼 여겨지는 것은 지나친 반응일까요?  

                                                                    3

프랑스 철학자 장 그르니에의 산문 '일상적인 삶'은 철학이라는 거대한 담론으로 나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일 수 있는 일상적인 삶의 주제 12개를 다루고있습니다:여행,산책,포도주,담배,비밀,침묵,독서,수면,고독,향수,정오,자정 등. 그런데 그가 이 주제들을 선택한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일상적인 주제들은 모두 다  새로운 담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행이란, 리트레 사전에 따르면 <어떤 곳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이르기 위하여 옮겨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위하여>라는 말을 강조해야 한다.여행은 의도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13쪽)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산책할 여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공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53쪽)   

  "분별력있게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진리가 어디엔가 잘 보관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그래서 예를들어 도서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우리가 그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일은 훨씬 더 간단할 것이다!:(144쪽)"

 '침묵'이라는 단락에서 그르니에의 결론적 선언은 이렇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것을 침묵시킬 때 비로소 인간은 그의 비어 있음을 하나의 현존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김지하와 오에겐자부로를 접하면서 읽을 때마다 오에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은 막연히 '친일'이라고 보기에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삶이라는 것이 자신의 자리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작은 삶으로부터 거대하고 특별한 담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당위적인 이야기를 늘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정부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아니라 도덕적, 윤리적, 책임적 자세를 촉구하는 오에겐자부로의 태도는 그의 장애인아들과의 삶의 연장선상에 있었다는 점이 저에게는 인상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 자신도 어떤 일상적인 것보다  특별하고 거대한 담론에 귀를 더 많이 기울이고 사는지 모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런 걸 보면 믿거나 말거나 일단 따라가 보게 된다. 나는 신문의 '오늘의 운세'도 꼭 읽어보는 타입이다. '즐겨찾기'에 있는 어느 서재에 들렀다가, 화살표 따라 누르라는 대로 눌러 봤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9월의 첫날이고 하니, 나의 탄생 즈음 우주의 행성들과 별자리의 기운이 어떠했는지 산책 삼아 슬슬 한번 돌아보자........

 

생일 나무

★ 무화과나무 (감수성 ) ★

강하고 고집 세고 독립심 있으며 모순이나 논쟁을 절대 허용하지 않으며 삶을 사랑하며 가정과 아이들,동물을 사랑함. 사교계의 제왕, 유머감각 뛰어나나 게으르고 태만함. 현실감각 뛰어나며 지능적임.[사교계를 떠난 지 어언 몇 해던가.... 요즘 내게 가장 부족한 게 유머 감각이라고 절감하며 약간의 초조함까지 느끼고 있지만..... 게으르고 태만한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맞는군]

 

생일로 보는 심리..
★ 평화주의자형 ★

성격이 원만하여 자기통제력이 강하다. 가정적이기는 하지만 엄한 부모가 될 소질이 농후하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짝은 자신과 같은 성격의 소유.[...그럴까. 나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를 만났다면, 내 인생에 도움이 됐을까....서로 치를 떨며 다시는 안 보는 사이가 되지는 않았을까 싶은데...]

 

내 생일의 꽃말
★ 박하 (덕) ★

행복의 별점아래에서 태어난 당신은 남들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는 인연이 쉬 닿지 않은 어려움도 있군요.[어쨌든 행복의 별점 아래 태어났단 말이지...]

 

내 생일의 별점
★ 사수좌 ★

사수자리에 속하는 사람은 강한 생활력과 현실감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언제나 밝은 표정과 넓은 행동 반경으로 사람들 틈바구니를 종횡무진 누비며 다른 사람의 지식과 경험을 왕성하게 흡수합니다. 사냥감을 포착한 사수처럼 자신의 목적을 향하여 돌진하는 스타일이며, 무엇보다도 인생은 많은 것을 경험하고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에 항상 많은 사건을 터뜨리고 다닙니다. 이런 밝은 천성과 집중력으로 하여서 지나간 일에 대한 집착이란 좀처럼 없으며 언제나 시선은 앞으로 향합니다. 이런 당신을 지켜 주는 수호신은 제우스, 수호성은 목성, 행운의 색은 보라, 진한 파랑, 화려한 빨강색입니다.[요즘 부쩍 보라색에 꽂혀 있기는 하다. '사수'라는 이미지도 마음에는 든다. 다만 집중력과 끈기와 정확한 명중 실력은 나의 별자리엔 없는 듯...]

 

나의 탄생석
★ 터키석(Turquoise) (행운, 성공, 번영)★

12월의 탄생석인 터어키석은 행운과 성공,번영과 번창을 상징하며 원어는 '터쿼이스'.  어원은 프랑스어로 '터어키의 여자'란 뜻에서 왔다.['터키의 여자', 그것도 마음에 드네! 터키석 반지라도 하나 해서 껴야 하는 거 아닐까...]

 

생일로 보는 동물점
★ 늑대 ★

나의 성격은..? 개성만점 변덕쟁이 늑대. 한마디로 별난 개성파. 사고방식이 너무 독특해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정작 본인은 개성이라고 흡족해한다. [이 대목 공감!]

생활에서나 일에서나 자기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그대로 실행하려고 노력한다. 혼자만의 방에서 자기만의 시간 보내기를 즐기는 편. 외로운 늑대라는 표현이 흔히 쓰이듯, 자신만의 공간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아,아,아!!!]

기억력도 탁월해 지난주에 먹은 점심 메뉴를 기억할 정도. 싸울 때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상대가 어떤 말로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는지까지도 잊지 않는 좀 무서운 사람. 몰두하는 힘이 강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단순 작업을 의외로 좋아하는 편.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 전자레인지 속에서 회전하는 음식을 지켜보는 것 같은 괴상한 취미도 있다. 규칙적이고 정해진 움직임을 좋아하는 만큼 생활패턴도 규칙을 벗어나는 법이 없다.[규칙적이고 반복적인 것, 이건 아닌데...]

나의 사랑은..? 무슨 일이든 독자적으로 처리하는 늑대는 연애도 마찬가지. 늑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윈하지 않는 교제를 강요받는 것. 더블 데이트 같은 건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다. 외로움을 즐기는 당신이지만 연인에게는 놀랄 정도로 헌신적이다.[!!??] 평소엔 전혀 드러나지 않던 면모라 상대방은 몇 배나 행복하다. 물론 당신의 그 괴팍한 구석이 드러나기 전까지의 이야기지만. 상대의 외모나 경제, 사회적인 위치는 당신에게 무용지물이다. 당신은 워낙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서 당신의 개성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감지덕지다. 하지만, 워낙 말재주가 없어 싸움이 잦다면 오래가지 못한다. 당신과 보조를 맞출 생각이 전혀 없는 치타, 언제 어디서나 정면에서 승부를 거는 호랑이와의 연애는 꿈도 꾸지 말아라.

나의 연인은..? 괴팍한 당신에게도 성실하게 대응해 주는 양이야말로 훌륭한 연인. 너그러운 사자도 당신의 개성을 잘 이해해주는 편안한 동반자.

 

띠로 보는 성격
★ 호랑이띠 ★
띠로 보는 성격은..? 품성은 살신.공격.의지.무관심.이기주의이며,통이 크다. 염세적인 면이 있으며 주위에 적을 많이 만들 우려가 있다. 필요한 일만 하는 이기주의적인 성격을 소유하기 쉽다. 소원성취형이 많다.[앗, 이건 거의 97%쯤 맞다고 느껴짐]

띠로 보는 운명은..? 만사에 술법과 권능이 있어서 길상이며 위인이 될 타입으로, 초분에는 어려우나 말분에 대길하다. ['말분'은 언제부터인가?] 성격이 모나게 흐르기 쉬우니 항상 마음을 다스려라.[면벽수도에 힘쓰라는 말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인간아 > 부유하는, 치명적인, 아름다운

  *

  경배를 보내는 프랑스 작가 두 명을 들라면 미셀 투르니에와 파스칼 키냐르를 들 수 있다. (나의 경배는 경박하다.) 둘은 각자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언어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집중, 언어 자체에서 나오는 이미지와 아름다움을 깊이 있고 색다른 관점으로 풀어낼 줄 안다는 것이다. 언어의 어원에 대해서, 해박하고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조합하고 핵심을 찌르는 예리한 분석과 비평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능력에 대해서 언제나 감탄과 경이를 느끼게 되는데 한국어로 쓰여진 작품 중에는 그러한 작품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파스칼 키냐르의 글 - 소설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의 글들은 내가 보기에는 소설이라는 정의와 범주를 넘어섰다. 소설이라는 말로 키냐르의 글을 가둘 수는 없다 - 은 다른 작가들과 대비되는 여타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


  *

  음악. 집안과 그 자신은 음악가이다. 집안이 음악가 집안이기 이전에 그는 어려서 앓은 자폐의 흔적으로, 침묵으로 자신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의 음악은 느리고 낮다. 흉내 내고 싶은 문체다.

  정보와 언어에 대한 지식이 뒷받침되어야만 쓸 수 있는 문장의 경지. 언어에 대한 세밀한 접근으로 만들어내는 커다랗고 넓은 여백. 독자의 상상과 감상을 자유롭게 이끌어내는, 흩날리는, 흔들리는, 스미는 글.


  *

  파스칼 키냐르, 그의 온몸의 아킬레스건(Achilles' Heel)은 그의 영혼 뿐이다. 몸을 관통하는 영혼의 아픔과 울음, 신의 배려와 자비가 그를 상처 입힌다. 약점으로 이루어진 완결성의 문장, 허물어지는 경계가 몸과 영혼을 뒤섞는다.


  *

  그의 문체의 완결은 카드모스의 승리(Cadmean Victory)다. 파괴를 위해 부하를 죽음으로 몰아내고, 아테나 여신의 충고로 말미암아 부하들을 다시 희생으로 내몬 승리, 이것으로 말미암아 테베 왕국을 건설했다. 키냐르의 영혼을 구속하는 문장 사이의 괴리, 그는 문장을 벗어나고 싶어 문장을 완성한다.


  *

  시머리언(Cimmerian)의 어둡고 음침함, 디오니소스적인(Dionysian) 방종과 쾌락, 뤼사와 마니아의 혼돈과 광포한 자유, 키냐르의 영혼은 이런 것들의 대척점이다. 그의 문장과 그의 영혼도 대척점으로 보인다.


  *

  스스로에게 저주를 거는 진실, 카산드라(Cassandra)의 예언은 자신에게는 진실이지만 모두에게는 질식 같은 진실이었다. 스스로를 소멸시키는 진실, 키냐르의 글은 모두에게 진실이지만 스스로에게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진실이다. 카산드라의 거울의 현현, 키냐르.


  *

  산삼주를 완성하는 것은, 이미 허울 뿐인 산삼의 형상이다. 실체를 얻은 실질적인 가치를 완성하는, 이미지로 남아 있는 찌꺼기의 의미, 실체를 완성하는 이미지의 역설. 사람들은 실체이자 본질인 산삼주를 마시는 것보다 찌꺼기이자 이미지인 산삼을 먹고 싶어 한다.

  키냐르의 문장, 그리고 그림자의 힘.

 

  *

  ‘문장은 명확함으로써 몽환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명제는 현재, 키냐르를 위한 것이다. 이 모순의 길을 작가는 한땀 한땀 깁고 딛어 나아간다. 서럽디 설운, 은밀히 행해지는 순교의 풍경, 나는 키냐르의 삶이 저 혼자 자행해나가는 자기살해의 순교로 느껴진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만의 아픔을 울 뿐, 독자는 이 행위로 말미암아 평온과 확장을 감내할 수 있게 된다. 키냐르가 쓰는 문장은 리누스의 노래(Linus song)이다.


  *

  키냐르의 문장을 읽자마자 뱉어낸다. 씻어낸다. 영혼에 끈적거리게 달라붙는 것들을 뜯어낸다. '치명적인(lethal)' 의 어원은 망각의 강인 '레테(lethe)'이다. 근심과 망각과 기억을 잊는다는 것, 이것은 치명적이며 죽음을 유발한다. 잊혀지는 것은 죽어가는 것과 같다.

  키냐르의 문장을 잊고자 하는 것, ‘죽어가고자 하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치명상, 그 아픔을 느끼는 것,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이끄는 카이론이 모는 배는 밑바닥이 없다. 투명한 심연에 되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잊혀지는 기억, 강을 건너자 ‘그’를 ‘그’로 존재하게 만들던 기억은 레테의 강 속으로 '치명적인(lethal)' 숙명 속으로 사라진다.

  레테의 다른 말은 스튁스다. 돌이킬 수 없는 맹세의 상징, 인간을 불사신으로 만드는 저승의 강, 살아서 그 강을 건넌 자는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페르세우스, 테세우스, 시지푸스 정도이다. 그 반열에 들어서고 싶은 욕망은 강하다.

  서둘러 키냐르의 문장을 잊는다. 잊고자 할 따름이다.

 

  *

  그의 글은 네소스(Nessos)의 셔츠이다. 받는 이를 죽음으로 이끄는, 고통과 재난을 가져오는, 의심과 불신의 선물.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잡은 히드라의 독을 바른 화살로 자신의 아내를 납치하려던 켄타우르스인 네소스를 쏴죽인다. 네소스의 말. “이제, 사랑했던 디아니라(Deianira)여. 나는 죽지만 남편의 애정이 의심가거든 지금 흐르고 있는 내 피를 적신 셔츠를 남편에게 선물하시오. 그러면 사랑을 증거할 수 있게 되리이다.” 헤라클레스가 이올레(Iole)와 사랑에 빠지자 디아니라는 결혼예물로 셔츠를 선물한다. 그 선물은 헤라클레스의 인간의 육체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신의 몸인 절반은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다.

  키냐르의 글이 내 영혼을 독으로 물들인다.


  *

  성병(Venureal)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로마식 이름(Venus)에서 유래되었다. 아프로디테, 사랑, 섹스, 생산, 유혹의 신이다. 한때 성병으로 죽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사랑의 치명적인 부작용, 처음 성병을 전파한 사람의 사랑은 어떠할까.

  열병을 부르는, 키냐르의 글, 사랑한다.


  *

  소금으로 이루어진 산을 걷는다. 비바람이 불면 여행자의 발은 차츰 무거워진다. 소금의 결정이 서서히 발에 달라붙어 굳어진다. 빠져나오지 못한 여행자는 소금으로 뒤덮인다. 해가 뜨면 여행자를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의 결정들은 찬란하게 빛난다.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조각이 완성된다.

  내가 키냐르에게 바칠 수 있는 찬사, “그의 문장은 모두 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Lilac Wine

 

I lost myself on a cool damp night

차갑고 축축한 밤에 나는 넋을 놓아 버렸어요

Gave myself in that misty light

그 신비로운 불빛에 내몸을 던져넣었죠

Was hypnotized by a strange delight

기묘한 쾌감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했어요

Under a lilac tree

라일락 나무 아래서

 

I made wine from the lilac tree

라일락 와인을 만들면서

Put my heart in its recipe

내 마음도 쓸어넣었답니다

It makes me see what I want to see

그리하여 내가 무엇을 보고 싶어하고

and be what I want to be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깨닫게 됐어요

 

When I think more than I want to think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보다 더 많은 상념에 사로잡힐 때

Do things I never should do

난 결코 해서는 안될 일들을 하곤 합니다

I drink much more that I ought to drink

난 내 주량을 훨씬 넘긴 채 와인을 들이키고 있어요

Because I brings me back you...

술에 취하면 난 당신에게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Lilac wine is sweet and heady, like my love

라일락 와인은 달콤하고 나를 흥분시켜요, 마치 내 사랑처럼

Lilac wine, I feel unsteady, like my love

라일락 와인은 나를 불안하게 해요, 마치 내 사랑처럼

Listen to me... I cannot see clearly

내 말을 들어봐요…내 눈은 흐려지고 있어요

Isn't that she coming to me nearly here?

여기 내 곁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그녀가 아닌가요?

 

Lilac wine is sweet and heady where's my love?

라일락 와인은 달콤하고 나를 흥분시켜요, 내 사랑은 어디 있나요?

Lilac wine, I feel unsteady, where's my love?

라일락 와인은 나를 불안하게 해요, 내 사랑은 어디 있나요?

Listen to me, why is everything so hazy?

내 말을 들어봐요, 왜 모든 것이 희미해져 가는 거죠?

Isn't that she, or am I just going crazy, dear?

그녀가 아닌가요? 아니면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건가요?

Lilac Wine, I feel unready for my love...

라일락 와인, 난 아직 내 사랑을 위한 준비를 못했는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11-03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레혼 2004-11-03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님, 잘 계셨어요?
요즘 알라딘이 혼란과 격동의 시절을 거치는 중이라, 몇몇 님들의 안부가 궁금했어요.
님 덕분에 오래 전에 올려놓고 들춰 보지 않았던 페이지들을 다시 펼쳐 보게 되네요. 마치 묵은 짐 정리하다가 툭 떨어진 오래 전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에잠겨들듯이.......
님의 관심과 시선이 때로 고맙고, 때로 궁금하고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