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밥헬퍼 > 김지하, 오에겐자부로, 장 그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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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란 가장 사소하며 가장 작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쓰기에 따라 의의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커다랗게 변하기도 하고, 중요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또한 그 사람의 '말'이 그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말'은 '말하기'라는 더욱 중요한 문제를 지니게 됩니다. '말'이 가장 일상적인 행동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담론을 갖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997년 문화비평지 상상 겨울호. '히로시마 노트'의 오에 겐자부로와 '오적'의 김지하에 관한 정진홍의 글이 실렸고 어느 방송에서 두 사람이 만나 대담했던 내용을 본 일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1990년 처음 만나 제2차대전 당시 원폭이 떨어졌던 '히로시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NHK의 특집 프로그램인 '세계는 히로시마을 기억하는가'에서 김지하는 대담 초청자로, 오에겐자부로는 진행자로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김지하는 다소 냉정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계는 히로시마를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주제는 잘못되었습니다. 오히려 문제의 기본적인 성격으로 본다면......'전쟁에 희생된 백만 아시아인을 기억하고 있는가? 정신대나 강제 연행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는가?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옳다고 생각했고, 당연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오에겐자부로는 열심히 자기 나름대로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했습니다.
그 후 5년 뒤, 두 사람은 한국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런데 KBS가 진행한 두 사람의 대담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5년전 김지하와의 대담이후에 자신이 적지않게 당황했던 한가지 일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제 생각이 달라진 것은 이 때입니다.
"저는 김지하 선생의 이야기를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대단히 격렬하게 말씀하셨지만 옳은 말씀이라고 느끼면서 머리를 수그리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그 방송 테이프를 모두 방송으로 내 보냈습니다. 여러가지 반응이 있었는데 특히 제 아이는 죄인처럼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쇼크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비판을 받으면 저는 슬퍼지고 상처를 입습니다. 그러나, 제 성격탓인지 저는 비판을 받으면서 대단히 감탄했습니다."
제가 살아온 날 동안에 김지하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그는
생명과 밥의 사상을 피력하며 대중들에게 예전의 필력을 과시했습니다. 1991년 2월 그는 다른 사람은 좀처럼 하기 힘든 고백을 신문지면에 실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그의 고백의 요지는 '자신은 더 이상 김지하가 아닌 김영일로 살겠다'는 것이며, '자기 씨를 잉태한 술집 여자에게 낙태를 강요했던 것을 진정으로 회개한다.'는 내용을 밝혔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그의 고백을 진솔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오엔 겐자부로는 '주체와 공생'이라는 문학주제로 그의 책을 써왔습니다. 그의 이런 주제는 그의 아들 히카리가 장애자였으며 그와 더불어 평생을 살아온 그의 삶과 궤적을 같이합니다. 그러나 1995년 오에 겐자부로 앞에 있는 김지하는 자기 고백적인 김지하가 아닌 성토하는자로서 등장했습니다. 김지하는 자신의 사상을 한 개인을 넘어선 '동북아생명공동체'라는 거대한 담론을 피력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으로 오에 겐자부로를 몰아붙인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콘크리트 바닥 틈새를 비집고 피어오르는 작은 풀의 생명력'같은 그런, 작지만 큰 울림이라는 단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김지하는 자신의 이야기에 동학이라는 커다란 역사와 장자나 화엄경같은 광활한 지식적 세계관을 담아 마음껏 펼쳐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오에 겐자부로의 대응은 나를 다시한번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김지하의 말에
"동학의 구상은 우주적이고 사회적입니다만, 저는 이렇게 작은 일 장애자 아들과 어떻게 공생하면서 살아가느냐를 생각했습니다. "
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하기보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예술관을 인용했습니다:"인간의 작은 영혼과 전 우주를 연결시키는 파이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파이프를 발견하는 것이 예술이다."는.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는 계속해서 김지하 앞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하나의 우주를 완성시키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철학체계를 말이죠. 그리고 그 안에서 동학이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적인 아시아 인식이 하나의 큰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의 작품을 보듯, 김지하 전집을 읽듯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매우 다릅니다. 저는 세계를 구축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언제나 확산시키고자 할 뿐입니다. 자신의 세계를 장대화시키고 분산함으로써 나 자신을 없애는, 그런 방향으로 여태까지 살아온 것입니다....선생님께서는 동학이라는 커다란 바위를 지니고 계신겁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런 바위가 없는 것이죠....(그러나)...그것은 결코 타인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죠. 타인과 공생하기 위한 바위여야 합니다. 바로 그걸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과정이 저의 문학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는 선생님께로부터도 배우고 유럽으로부터도 배우고 마르크스로부터도 배웁니다. (...)제 아이 문제만 집중하며 인생의 30년을 보냈습니다. 그 대신 저는 자유롭습니다. 정말 기구처럼 붕붕 자유롭게 떠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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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맨 처음 이 세상에 존재했을 때의 정황을 신앙과 신학으로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창세기1-3장을 읽다 보면 우리는 한가지 지나칠 수 없는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은 피조물이 창조되면서부터 '말'을 할 수 있는 기능을 더불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든지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든지 하는 표현없이 예의 뱀과 하와는 말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을 주고 받는 과정을 통해 하와의 생각을 읽어내고 뱀의 생각을 읽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챕니다. 가령 전통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장이 되어버린 '정녕 죽으리라'와 같은 단언적 표현이 '죽을까 하노라'라는 가능성의 표현으로 바뀐 것을 발견하는 것이 좋은 예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의 실수로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드러냈던 최초의 감정이 '두렵다'라는 것인데 그 순간 그들은 자신이 벗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을 의사소통의 도구로 제시한 것은 그것이 살아가는 관계의 기본적인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대화와 공존을 유지하고 더욱 긴밀하게 지속되도록 하는 도구로서 기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허무'의 틀 안에서 긍정과 부정으로 절묘하게 구성하여 궁극적 희망을 제시한 구약성경의 '전도서'라는 글에는 이 말에 대한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을 하는 자신이 반드시 자기 앞에 지혜자, 더 나아가 창조자가 항상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가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는데 이 경우 두 개의 행동지침을 갖게 되는데 첫째는 말을 섣부르게, 급하게 하지 말 것과 상대방보다 자신의 말을 적게 하라는 것입니다. '느리게 말하기'와 '듣고 말하기'가 말하기의 지혜로운 지침이 되는 셈입니다.
여기서 '느리게 말하기'는 하나의 '말'이 거대 담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부터 거대 담론으로 파생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점에서 '느리게 말하기'는 정치적 화법이나 막연한 지식에 기반을 둔 현학적인 말을 경계하는 것이 됩니다. 결국 '느리게 말하기'는 자신 안에 온전하게 내재되어 무르익은 말들을 꺼내는 과정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한 느리게 말하기는 은유적 표현보다 직유적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듣고 말하기'는 자신의 말보다 타인의 말을 더 많이 존중하는 태도와 관계있습니다. 탈무드의 격언처럼 '입이 하나요, 귀가 두개인 것은 2배나 많이 들어야 한다'는 교훈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듣고 말하기'는 자신의 말이 홀로 존재하지 않고 관계안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장치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개인적으로나 우리 사회적으로 먼저 듣고 함께 말해야 할 '화두'가 없는 셈입니다. 자신이 붙잡고 끝까지 들어야하고 되새겨야 할 '삶의 주제'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던이 가져다 준 '해체'라는 선물은, 저마다 자신의 말을 마을껏 할 수있다는 점에서 귀가 솔깃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받기는 받았으나 열어보기가 망설여지는 그런 불온소포처럼 여겨지는 것은 지나친 반응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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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장 그르니에의 산문 '일상적인 삶'은 철학이라는 거대한 담론으로 나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일 수 있는 일상적인 삶의 주제 12개를 다루고있습니다:여행,산책,포도주,담배,비밀,침묵,독서,수면,고독,향수,정오,자정 등. 그런데 그가 이 주제들을 선택한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일상적인 주제들은 모두 다 새로운 담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행이란, 리트레 사전에 따르면 <어떤 곳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이르기 위하여 옮겨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위하여>라는 말을 강조해야 한다.여행은 의도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13쪽)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산책할 여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공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53쪽)
"분별력있게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진리가 어디엔가 잘 보관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그래서 예를들어 도서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우리가 그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일은 훨씬 더 간단할 것이다!:(144쪽)"
'침묵'이라는 단락에서 그르니에의 결론적 선언은 이렇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것을 침묵시킬 때 비로소 인간은 그의 비어 있음을 하나의 현존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김지하와 오에겐자부로를 접하면서 읽을 때마다 오에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은 막연히 '친일'이라고 보기에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삶이라는 것이 자신의 자리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작은 삶으로부터 거대하고 특별한 담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당위적인 이야기를 늘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정부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아니라 도덕적, 윤리적, 책임적 자세를 촉구하는 오에겐자부로의 태도는 그의 장애인아들과의 삶의 연장선상에 있었다는 점이 저에게는 인상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 자신도 어떤 일상적인 것보다 특별하고 거대한 담론에 귀를 더 많이 기울이고 사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