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인간아 > 부유하는, 치명적인,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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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를 보내는 프랑스 작가 두 명을 들라면 미셀 투르니에와 파스칼 키냐르를 들 수 있다. (나의 경배는 경박하다.) 둘은 각자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언어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집중, 언어 자체에서 나오는 이미지와 아름다움을 깊이 있고 색다른 관점으로 풀어낼 줄 안다는 것이다. 언어의 어원에 대해서, 해박하고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조합하고 핵심을 찌르는 예리한 분석과 비평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능력에 대해서 언제나 감탄과 경이를 느끼게 되는데 한국어로 쓰여진 작품 중에는 그러한 작품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파스칼 키냐르의 글 - 소설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의 글들은 내가 보기에는 소설이라는 정의와 범주를 넘어섰다. 소설이라는 말로 키냐르의 글을 가둘 수는 없다 - 은 다른 작가들과 대비되는 여타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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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집안과 그 자신은 음악가이다. 집안이 음악가 집안이기 이전에 그는 어려서 앓은 자폐의 흔적으로, 침묵으로 자신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의 음악은 느리고 낮다. 흉내 내고 싶은 문체다.
정보와 언어에 대한 지식이 뒷받침되어야만 쓸 수 있는 문장의 경지. 언어에 대한 세밀한 접근으로 만들어내는 커다랗고 넓은 여백. 독자의 상상과 감상을 자유롭게 이끌어내는, 흩날리는, 흔들리는, 스미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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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 그의 온몸의 아킬레스건(Achilles' Heel)은 그의 영혼 뿐이다. 몸을 관통하는 영혼의 아픔과 울음, 신의 배려와 자비가 그를 상처 입힌다. 약점으로 이루어진 완결성의 문장, 허물어지는 경계가 몸과 영혼을 뒤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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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문체의 완결은 카드모스의 승리(Cadmean Victory)다. 파괴를 위해 부하를 죽음으로 몰아내고, 아테나 여신의 충고로 말미암아 부하들을 다시 희생으로 내몬 승리, 이것으로 말미암아 테베 왕국을 건설했다. 키냐르의 영혼을 구속하는 문장 사이의 괴리, 그는 문장을 벗어나고 싶어 문장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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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머리언(Cimmerian)의 어둡고 음침함, 디오니소스적인(Dionysian) 방종과 쾌락, 뤼사와 마니아의 혼돈과 광포한 자유, 키냐르의 영혼은 이런 것들의 대척점이다. 그의 문장과 그의 영혼도 대척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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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저주를 거는 진실, 카산드라(Cassandra)의 예언은 자신에게는 진실이지만 모두에게는 질식 같은 진실이었다. 스스로를 소멸시키는 진실, 키냐르의 글은 모두에게 진실이지만 스스로에게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진실이다. 카산드라의 거울의 현현, 키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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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주를 완성하는 것은, 이미 허울 뿐인 산삼의 형상이다. 실체를 얻은 실질적인 가치를 완성하는, 이미지로 남아 있는 찌꺼기의 의미, 실체를 완성하는 이미지의 역설. 사람들은 실체이자 본질인 산삼주를 마시는 것보다 찌꺼기이자 이미지인 산삼을 먹고 싶어 한다.
키냐르의 문장, 그리고 그림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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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명확함으로써 몽환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명제는 현재, 키냐르를 위한 것이다. 이 모순의 길을 작가는 한땀 한땀 깁고 딛어 나아간다. 서럽디 설운, 은밀히 행해지는 순교의 풍경, 나는 키냐르의 삶이 저 혼자 자행해나가는 자기살해의 순교로 느껴진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만의 아픔을 울 뿐, 독자는 이 행위로 말미암아 평온과 확장을 감내할 수 있게 된다. 키냐르가 쓰는 문장은 리누스의 노래(Linus so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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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냐르의 문장을 읽자마자 뱉어낸다. 씻어낸다. 영혼에 끈적거리게 달라붙는 것들을 뜯어낸다. '치명적인(lethal)' 의 어원은 망각의 강인 '레테(lethe)'이다. 근심과 망각과 기억을 잊는다는 것, 이것은 치명적이며 죽음을 유발한다. 잊혀지는 것은 죽어가는 것과 같다.
키냐르의 문장을 잊고자 하는 것, ‘죽어가고자 하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치명상, 그 아픔을 느끼는 것,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이끄는 카이론이 모는 배는 밑바닥이 없다. 투명한 심연에 되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잊혀지는 기억, 강을 건너자 ‘그’를 ‘그’로 존재하게 만들던 기억은 레테의 강 속으로 '치명적인(lethal)' 숙명 속으로 사라진다.
레테의 다른 말은 스튁스다. 돌이킬 수 없는 맹세의 상징, 인간을 불사신으로 만드는 저승의 강, 살아서 그 강을 건넌 자는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페르세우스, 테세우스, 시지푸스 정도이다. 그 반열에 들어서고 싶은 욕망은 강하다.
서둘러 키냐르의 문장을 잊는다. 잊고자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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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은 네소스(Nessos)의 셔츠이다. 받는 이를 죽음으로 이끄는, 고통과 재난을 가져오는, 의심과 불신의 선물.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잡은 히드라의 독을 바른 화살로 자신의 아내를 납치하려던 켄타우르스인 네소스를 쏴죽인다. 네소스의 말. “이제, 사랑했던 디아니라(Deianira)여. 나는 죽지만 남편의 애정이 의심가거든 지금 흐르고 있는 내 피를 적신 셔츠를 남편에게 선물하시오. 그러면 사랑을 증거할 수 있게 되리이다.” 헤라클레스가 이올레(Iole)와 사랑에 빠지자 디아니라는 결혼예물로 셔츠를 선물한다. 그 선물은 헤라클레스의 인간의 육체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신의 몸인 절반은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다.
키냐르의 글이 내 영혼을 독으로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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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Venureal)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로마식 이름(Venus)에서 유래되었다. 아프로디테, 사랑, 섹스, 생산, 유혹의 신이다. 한때 성병으로 죽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사랑의 치명적인 부작용, 처음 성병을 전파한 사람의 사랑은 어떠할까.
열병을 부르는, 키냐르의 글,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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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으로 이루어진 산을 걷는다. 비바람이 불면 여행자의 발은 차츰 무거워진다. 소금의 결정이 서서히 발에 달라붙어 굳어진다. 빠져나오지 못한 여행자는 소금으로 뒤덮인다. 해가 뜨면 여행자를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의 결정들은 찬란하게 빛난다.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조각이 완성된다.
내가 키냐르에게 바칠 수 있는 찬사, “그의 문장은 모두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