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난 이 시인을 잘 모른다. 간혹 어쩌다 그의 시를 만날 때마다 첫마디에 그의 목소리임을 알아들을 수 있을 뿐. 그의 시를 읽고 나면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뒤의 느낌과 비슷하다.
투명인간
문득 스스로를 느낄 수 없는 하루가 온다. 세면. 식사. 여자의 전
보. 이곳은 아름답군요 언제 서울로 돌아갈는지는 모르겠어요. 나
는 그대의 소식을 두고 외출한다. 등뒤에서 나의 몫으로 주어진
시간을 폐쇄하는 문. 여기가 문밖인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사물들. 아무렇게나 아름다운 것들, 가령 담배꽁초. 보도블럭. 초로
의 여자가 나누어주는 <일수돈 씀니다>.
어쩌면 몇 편의 죽음만으로 한 시대를 설명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
다. 종로 2가의 가로수. 종로 1가의 바람. 크로포트킨 공작이 무의
미한 세계를 견디지 못해 아나키스트가 되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광화문의 바람. 가로수. 다시 바람. 정신분석은 지겹다. 십
수 년 전 바움테스트에서, 나는 고의로, 부러진 나무를 그렸다. 의
사는 치유할 방도를 강구하자고 말했다. 그가 내게 준 것은 僞藥
이었다.
그러므로 아직도 나와 친한 것들은 스스로를 오래 묵인하여 죽어
가는 것들이다. 가령 무언가를 향해 필사적으로 도열해 있는 간판
들. 시월의 태양 아래 혼자 끓는 육체. 손차양 사이로 문득 햇살이
무심하다. 이순신 상 곁을 날아가는 지중해行 종이 비행기. 생각난
다, 이런 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불긋한 색종이라도 접어 유장
한 강물에 배 한 척 띄웠을는지. 그 배 지금쯤 멕시코 만 어디서
좌초했을는지.
교보빌딩 화장실 변기 위에 달린 자동 감지기. 내가 다가가면 붉
은 등을 켜는, 내 유일한 존재 증명. 그대가 서울에 없으니까 죽도
록 쓸쓸하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고 나는 전보를 치지 않는다. 거
리에 도열한 간판들은 고의로 부러진 나무들처럼 고요하다. 또 위
약이군, 중얼거릴 때 내 몸을 가볍게 통과하는 종이 비행기. 아주
조금씩 스스로를 지워가는 사물들과 더불어, 다만 어느 날, 투명한
지중해의 햇빛 속을, 산보라도 할 것.

개인적인 불행
내 몸은 낯선 구름 위에. 네가 다른 시간의 너인 듯 나를 지나간
후 자꾸 뒤돌아보는 버릇이 생겼어. 가을 단풍이 추락하고 난 새
벽의 횡단보도, 바로 그 자리를 시속 120킬로로 통과한 왜건에 의
해 한 사내, 문득 정지 포즈로 허공에 떠 있었지.
그건 내가 우연히 밤하늘을 바라볼 때 이백오십만 년의 어둠을 지
나와 내 눈에 꽂혀버리는 별빛 같은 것. 누군가 나를 불러 뒤돌아
보면, 누군가 그의 기나긴 내력을 찬찬히 얘기해 줄 것 같아. 허공
에 떠 있는 사내는 아직도 어제 본 동물도감의 짐승들을 생각하고
있을까.
새벽과 또 머나먼 가을 사이에 떠 있던 그 사내, 나는 오늘도 저
오래 전의 별빛과 온전히 무관하네. 그 빛이 우연히 나를 통과하고
간 후 나는 잠시 뒤돌아보았을 뿐. 그러므로 모든 것은 개인적인
불행, 그리고 밤하늘을 바라보면 그곳은 텅 비어 떠 있기 좋은 허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