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타인의 취향>에서는 집안을 온통 핑크빛으로 도배하고 장식한 어느 여자의 '유치한 미적 취향'을 드러내놓고 웃음거리로 삼았었다. 또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는 도쿄로 출장간 남편 빌 머레이에게 새로 산 집에 거실 바닥은 무슨 색깔로 할까를 상의하는 아내의 전화가 부부 관계의 씁쓸하고 쓸쓸한 면모를 보여주는 장치로 등장했다.
영화의 그 장면들을 보고 있을 때는 감독의 의도대로 일상이 보여주는 통속과 속물 근성에 가벼운 웃음과 환멸의 시선을 날려보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막상 그런 일상 속에 들어와 있을 때는 나 또한 지극히 사소하고 속물적인 취향과 선택의 고민에 허둥거리게 된다.
다음 주 화요일에 이사 날짜를 잡았다.
평소에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반들반들 닦으며 살아 온 살림꾼들이야 이사라 한들 크게 종종거릴 일은 없겠지만, 나처럼 십수 년이 되도록 쭉 집안일이 몸에 배지 않고 손에 익지 않은 '후루꾸 주부'에게 집을 옮기는 일은 내 몸과 머리 전체에 과부하가 걸리는 대사(大事)이다.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들, 맥락을 잡아 정리해야 할 것들, 각 계의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할 것들, 이런저런 일들의 날짜와 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것...... 거기에 덧붙여 이참에 몇몇 전자 제품들의 애프터 서비스도 몰아서 받는 바람에 이번 주 내내 정신없이 종종거리고 있다. 일 못하는 사람은 남에게 일을 맡기는 것도 지혜롭게, 빠릿빠릿하게 잘 처리할 줄 모른다. 같은 일로 전화를 몇 번씩 하고,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순간적으로 뭔가를 선택 결정해야 할 때마다 고민에 빠지고......
어쨌든 '이사 모드'라는 것이다. 짐 풀고 자리 잡을 때까지 계속 불안정한 '이동 대기중' 상태....... 그래도 이 심리적 유목민의 기간 동안에도 잠시 잠깐 짬이 날 때마다 서재를 기웃거릴 생각이다. 그때마다 막간 엽서나 한 장씩 띄워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