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햇살이 짧다. 노루 꼬리처럼 짧다, 라는 말을 떠올린다. 어느새...... 그 짧은 햇살의 끝무렵에 Y와 풀밭 공원 앞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차를 마신다. 편의점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타 온 종이컵 커피. 커피는 금세 미지근해지고 들큰했다. 바람이 커피보다 더 진하고 감미로웠다. 이번 추석은 예년보다 유독 덥지 않았어? 그러게 말이야. 더운 기운이 가시자마자 바람이 이렇게 선득해지다니. 가을이 점점 짧아져 가는 모양이야. 좋은 것들은 왜 그리 빠르게 사라져 가는 걸까.
가을 햇살이 이쁘다고, 이 바람이 아깝다고 느끼는 건 내가 나이 들었음을 고스란히 비쳐주는 서글픈 거울이다. 햇살 좋은 날 길가에 나와 꾸벅꾸벅 졸거나 초점 잃은 눈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노인들의 심경을 알 것 같다. 그들은 빠르게 사라져 가는 것들을 아까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생한 시간들, 이 좋은 햇빛, 살아 있다는 것, 한번 가면 그뿐 되돌이킬 수 없이 흘러가 버리는 것들, 그것들을 향한 몽롱한 상실감.
빠르게 해가 저물어 간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소리내 웃거나 장난을 친다. 어디선가 개 한 마리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나무 밑둥에 코를 대고 킁킁거린다. 보기 좋게 그을리고 마른 근육을 지닌 사내 하나가 강변을 따라 달린다. 종이컵 안에 몇 모금 남아 있던 커피는 진작에 식어 버렸다. 또 하루가, 한 줌의 가을 햇살이 흘러가 버렸다.
슈베르트 - 첼로와 아르페지오네를 위한 소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