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래도록 문밖에서 서성이는 운명으로 태어난 듯했다. 거기에는 좋고 그름도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통과할 수 없는 문이라면, 일부러 거기까지 찾아가는 건 모순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갈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견고한 문이 언제까지나 전망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는 그 문을 통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 나쓰메 소세키, <문> 중에서

 

 북미 나바호족의 노래 'Seed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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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9-23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통과할 수 없는 문... Seed of Life... 바다가 퍼렇게 하늘로 올라가 있는 바깥을 문을 통해서만 느끼는 사람... 라일락와인님은 코디를 참 잘하세요. ^^ 글과 음악과 그림을 이렇게 훌륭하게 꿰어놓는 페이퍼들을 보면...

플레져 2004-09-2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닫힌 문이 악귀 보다 더 공포스럽다는 걸 확인하지요.
어릴때 엄마가 없는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을 때, 짙은 녹색의 대문은 참 무서웠어요...

에레혼 2004-09-23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안님, 코디를 잘한다는 말, 칭찬으로 해주신 말일 테지만... 흑흑... 지금 저는 그 말이 아프게 들리네요, 이 방에서 내 목소리로 내 얘기는 안하고 혹은 못하고 '코디만' 줄창 하고 있는 내가 무척 답답하거든요......

플레져님, 유년 시절에 딱 멈춰 있는 그런 두려움, 공포의 기억이 있지요, 왜 엄마가 없으면 늘 익숙한 공간도 그렇게 커다란 미궁의 공간으로, 가늠할 수 없는 시커먼 우물 바닥처럼 다가왔던 건지....... 겉은 멀쩡하게 '어른'이 된 지금도 간혹 그런 막막한 순간과 맞닥뜨릴 때가 있기는 해요

내가없는 이 안 2004-09-2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라인님, 정말요? 제 무심한 말이 님을 슬프게 했다니... 저도 역시 흑흑. 하지만 님의 목소리가 없다는 건 그냥 하시는 말씀이지요? 저는 향기가 충천한 이 서재가 얼마나 부러운데... 거참. 그림 한 점 없는 제 서재에 오늘 띄워주신 그림이 제겐 얼마나 고마웠는지요. 전 고맙다는 인사 하러 들어왔는데...

에레혼 2004-09-24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안님께 공연한 부담과 자책감(?)을 안겨 드렸네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님의 말 그 자체가 저를 슬프게 만든 게 아니구요(칭찬해 주신 걸로 접수됐어요^^), 오늘 내내 저 자신 이 서재에 대해 그런 착잡한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서재 활동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됐는데, 이런저런 느낌과 생각을 페이퍼로 하나 써보려구요...

그나저나 그림 마음에 드셨나요? 님의 리뷰 보자마자 그 그림이 떠오르기에 얼른 제 창고에 가서 먼지 털고 끌고 나왔지요 ^^

내가없는 이 안 2004-09-24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행이다. 저 무지 새가슴이죠? 하하.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야, 싶어서 정말로 자책이 됐더랬어요. 흑. 칭찬으로 완전히 접수가 된 걸로 알고 그만 안심하겠습니다. ^^ 제가 서재주인들을 많이 사귀는 편이 아닌데 그러다 보니 연을 이어가는 분들은 글을 보면서 외모도 상상이 되고 글의 취향이나 사고의 방향도 많이 짐작이 가더라구요. 그래서 요즘 제가 발걸음하는 라일락와인님은 어떤 분이실까 내심 궁금했지요. 페이퍼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