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모차르트 : 교향곡 34-41번 [2CD] - DG Originals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작곡, 칼 뵘 (Karl Bohm) / DG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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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뵘의 모차르트 해석은 이미 낡은 것이 되 버렸다. 아르농쿠르 이후의 모차르트 해석은 더욱 다양해졌고 음악적 혁신을 추구하지만 칼뵘의 이 정직한 연주는 요즘 연주에 비해 따분한 것이 사실이다. 브루노 발터의 제자로서 빈필의 자랑이였던 이 착한 지휘자의 연주가 이렇게 홀대 받는 것은 시대를 고려해 보면 수긍할 수 있지만 심적으로는 수긍할 수 없다. 우선 칼뵘은 이 연주에서 가장 규범적인 모차르트를 보여준다. 다소 딱딱한 질감이 느껴지지만 그만이 연출해 낼 수 있는 긴밀함과 안정감. 그리고 빈필이 내뿜는 그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더불어 곡 자체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 만으로도 이 앨범은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다. 게다가 가격도 2 for 1이니 여간 저렴하지 않은가. 이 앨범을 듣지 않고 아르농쿠르를 듣는다면 두개의 다른 연주의 진정한 참맛을 느낄 수 없다. 스탠리 큐브릭이 샤이닝이라는 영화에서 보여줬던 손으로 들고 뛰는 카메라 기법은 공포의 극대를 느끼게 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대부분의 영화가 그정도 기법은 차용하고 있기에 지금 그 샤이닝이란 영화를 보면 조금 시시하게 느껴진다. 재미가 없다는 거다. 하지만 잭 니콜슨의 광기를 최대로 이끌어내는 큐브릭의 능력과 곳곳에 숨겨진 추리적 요소의 기법은 지금의 감독들도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즉 뵘이 보여준 지휘가 지금은 구식처럼 보이지만 그 구식에서 지금의 해석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적 긴밀성과 모차르트적 심미적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뵘의 연주를 폄훼해서는 안된다. 모든 예술이 진보를 향해 나아가지만 진보만으로는 달성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뵘의 음악에는 있다. 그래서 이 음반은 명반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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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드보르작 : 피아노 협주곡 외 - Great Recordings Of The Century
드보르작 (Dvorak) 작곡, 카를로스 클라이버 (Carlos Kleiber) 지휘, 스 / 이엠아이(EMI)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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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히터가 쓴 회고담을 읽으면 그는 이 연주에 상당히 불만족을 나타낸다. 모두가 다 절대 명반이라 추천하는 이 음반에 대하여 리히터는 자신의 최악의 연주중 하나로 뽑을 정도로 이 연주를 부끄러워 한다. 리히터가 최고의 지휘자라고 부르던 카를로스 클라이버와의 이 녹음에서 리히터는 클라이버를 너무 배려하는 나머지 조금 핀트에 어긋나는 연주를 하였다는데 그리 예민한 귀를 갖지 못한 내가 듣기에는 꽤나 훌륭한 연주이다.

우선 드보르작 협주곡에 대한 다른 음반을 들어본적이 없기에 비교 하기는 불가하지만 곡자체가 지니는 아름다움과 두 거장의 이름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연주이다. 여기에 부가 삽입된 슈베르트의 곡들에서는 주정주의의 대표자인 리히터 답게 아름다운 연주를 펼쳐준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의 곡을 두루 섭렵했던 이 거장의 생애를 돌이켜 보건데 이 연주는 결코 실패작이 아니다. 다만 클라이버라는 시대의 천재와 리히터라는 시대의 거장이라는 이름하에 보면 조금 모자를 따름이다. 그리고 리히터는 회고록에서 이 앨범을 격찬하는 이들에게 조소를 보낸다. 무조건 자신의 앨범에 대한 찬사를 늘여놓는 자들 앞에서의 내적 고독도 느껴졌던 그 회고록의 글귀. 리히터의 주정적 음악 해석은 아마 스스로에 대한 완벽주의를 넘어선 그런 타인에 대한 배려와 따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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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3번
RCA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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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곡을 작곡한 라흐마니노프 조차도 자신보다 호로비츠가 연주하는 것이 더 낫다는 평을 내릴 정도로 호로비츠의 라흐마니노프 3번 연주는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다. 나이를 꽤나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음한음 내려 찍을 듯한 그 타건과 엄청난 기량은 왜 대부분의 피아니스트가 제일 존경하는 피아니스트로 리히터를 뽑지만 가장 닮고 싶은 피아니스트로 호로비츠를 꼽는지 알게 한다. 라이브 녹음의 열기와 함께 숨막힐듯 진행되는 이 연주는 곡 자체의 난해함을 뛰어넘는 호로비츠의 기교 때문에 더욱더 아찔한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미스터치 하나 나지 않는 그 강한 타건과 더불어 한음한음 또박또박 들리는 호로비치의 손마디가 눈으로 보지 않고선 노인의 연주라 느끼기 힘들게 한다. 피아노 줄이 끊어질듯 이어지는 이 곡은 연주는 곡의 스산함을 뛰어넘는 서늘함을 느끼게 한다. 유진 오르망디의 반주또한 호로비츠의 압도적 기교에 굴하지 않고 비교적 제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호로비츠를 따라가기 급급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이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라는 영화가 개봉 되었을때 사람들은 그 낯선 피아니스트의 이름에 당황스러워 했더랬다. 호로비치의 피아니즘은 피아노 전공자들에게 쉬이 권유해줄 만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영화 제목이 이야기 하듯 호로비츠는 아샤 하이페츠가 대부분의 바이올린니스트에게 그렇듯 피아니스트가 닮고 싶어 하는 표본이며 본인의 벽을 느끼게 하는 나쁜 사람이다. 이런 나쁜사람이 조금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컴퓨터가 체스 챔피언을 이기는 시기에 호로비츠같은 사람이야 말로 컴퓨터가 연주한 피아니즘을 넘어서는 기교와 감동을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컴퓨터의 피아노 연주는 감동을 줄지 의문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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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io Vivaldi - The Four Seasons : Carmignola, Marcon
안토니오 비발디 (Vivaldi) 작곡, Giuliano Carmignola 연주 / 소니뮤직(SonyMusic)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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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미 놀라의 이 앨범은 우선 표지부터 강렬하다. 바로크적 음악을 왠지 바로크적 사람이 연주할 것 같은 저 표지의 위압감은 선뜻 이 앨범을 사고픈 충돌을 일으킨다. 카르미놀라는 파비오 비욘디의 사계와 함께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사계를 들려줬다 하여 명성을 날린 사람. 이것은 그의 신녹음이다. 구녹음보다 평이 오히려 좋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아무래도 10년 동안 그의 가치관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한다. 아르농쿠로 또한 모차르트 교향곡 원전 녹음의 파격성으로 인해 찬사를 받았지만 그가 내놓는 최신 녹음들을 들어보면 오히려 낭만성과 모차르트 음악의 귀족성을 강조하는 이전의 해석으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이 앨범이 그런 회귀를 나타낸것은 아니고 다만 예전보다 그 혁신적인 느낌이 조금 덜 하다는 느낌을 준다. 혁신이 최선이고 느림은 도태를 의미하는 이 사회에서 카리미놀라에게 팬들이 기대하는 것은 바로 혁신이 였을 것이다. 기존의 연주자들과 악단들이 쌓아놓았던 음악의 질서를 파괴하는 선구자적인 음악을 기대하였지만 저번 앨범보다 오히려 그 혁신성이 덜한 듯한 느낌에 많은 이들이 이 음반을 그리 후히 평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듣기에 이 연주는 너무나 신선하고 상쾌하다. 물론 구반을 들어보지 못헀지만 파비오 비욘디의 신반과 구반을 다 갖고 있는 내가 듣기에 이 두 앨범보다 못할 것은 없다고 본다. 또한 카르미놀라의 구반은 가격이 비싸고 구하기 어렵다. 음질은 둘다 비슷할 테이고 오히려 나이를 먹어 좀 더 성숙한 음악을 들려줄 것이라 보이는 이 바이올린니스트에게 기존의 작품보다 못하다고 하는 것은 진보를 최선으로 삼는 현대적 가치관이 투영된 비판이 아닐까 한다. 물론 시간이 작품의 질을 높여 주는것은 아니다. 허진호 감독 또한 봄날은 간다와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내놓은 외출이란 영화에서 오히려 퇴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식상함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직접 쓰느 허진호 같은 감독에겐 초기 작품이 더욱 더 가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외출이란 영화는 3년정도 걸렸겠지만 두 전작은 그의 30여년의 삶이 그대로 투자된 영화일 테니까. 하지만 음악가들은 다를것이다. 리히테르의 자서전에서도 읽어 보았지만 연주가의 스타일은 변한다. 모두가 퇴보라 할지라도 그만은 홀로 남들과 다른 진보를 향해 나아갈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이 음반은 구반보다 못한 음반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많은 것을 경험한 후 내놓은 새로운 형태의 창조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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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요즘 무슨 음악 듣고 계세요?
라카토쉬
DG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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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집시군단의 명성은 박종호씨가 지은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에 의해서 높아졌다. 그들의 자유분방함과 차르다쉬라는 곡에서 느낀 그 집시적 향취에 대한 박종호씨의 찬사가 이 앨범을 꽤나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연주는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연주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준다. 예쁘다는 느낌 보다는 투박한 느낌, 조화롭다는 느낌보다는 개성적이라는 느낌. 이들의 자작곡 몇곡 또한 이런 그들의 자유로운 이미지를 강화 시킨다. 최근 조혜련 아줌마가 가라가라 라는 노래에서 샘플링 되었던 헝가리안 댄스 곡에서는 아이작 스턴이나 막심 벤겔로프가 주었던 느낌과 또다른 느낌을 준다. 뭐랄까.. 거칠지만 진짜 춤을 추게끔 만들게 하는 그런 느낌.

우선 신나는 음반이다. 클래식이 상류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있는 시대의 상황에서 이런 탈 계급적인 밴드의 음악은 너무나 사랑스럽다. 저 욕심 많아보이는 자켓의 아저씨 또한 탐심보다는 현실에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영달을 추구하는 지극히 자연스런 느낌을 준다. 이 밴드가 연주하는 다른 앨범들은 너무 비싸다.. 좀 가격을 내렸으면 좋으련만..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더욱 널리 알리길 원할 테지만 음반사들은 이들의 특이성을 또다른 상품성으로 내세운다. 자본이 음악가를 삼키는 현실은 궁정에 메여있던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시대보다 오히려 좋지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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