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의 그림은 이탈리아로 여행을 간 독일의 대문호 괴테를 그린 것이다.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의 부제인 '이탈리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자켓 디자이너의 묘안이 돋보인다.
이탈리아 사람인 시노폴리의 지휘에 의한 연주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보아도 아주 적절해 보인다. 몇년 전에 서거한 이 지중해의 매끈한 올리브유 같은 거장의 음악이 과학 기술의 세례를 받아 괴테의 작품보다 더 온전한 형태의 불멸이란 칭호를 지니게 되는 건 기록 예술의 정점인 문학의 지위가 예전만 못한 현세태의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앨범을 살펴 보면, 멘델스존이란 이름이 주는 풍요로운 이미지에 걸맞게 이 교향곡은 밝고 신선하며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시노폴리 또한 멘델스존이 이탈리아 여행에서 느꼈던 남국의 향취에 거의 동화된 듯한 푸르디 푸른 연주를 만들어 낸다. 이미지즘이 연상되는 회화주의적 음악이 그린 그림이 귓가를 통해 눈앞에 펼쳐지면 내 청각과 시각은 이태리 여행이라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이 앨범의 백미는 슈베르트 교향곡 7번 혹은 8번이라 불리우는 '미완성 교향곡'이다. 슈베르트의 작품 번호가 이렇게 난잡하게 된 것은 그의 숨겨진 교향곡이 있을 것이라는 후세인들의 추측에 의해 이 미완성 교향곡과 Great 교향곡을 한칸씩 뒤로 미룬 것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숨겨진 교향곡으로 추측되던 곡이 기존의 교향곡의 다른 필사본으로 밝혀 지면서 그의 작품 순서엔 혼동이 생긴다. 이러한 혼동은 2악장으로 구성된 이 미완성 교향곡의 불완정성과 맞물려 슈베르트에 대한 묘한 동정심을 유발한다. 살아 있을 적에도 그리 인정 받지 못하던 선율의 천재에게 사람들은 사후에도 이런 박정한 대우를 한다. 프랑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도 여자 주인공이 슈베르트를 외모 컴플렉스에 의한 열등감의 화신으로 규정지으며 또 다시 의도치 않은 박정함을 내보인다.
하지만 슈베르트가 들려 주는 미완성 교향곡의 둔중하면서도 조금은 우울한 울림은, 천상에 가 있는 슈베르트가 그런 일로 별로 괘의치 않을 듯한 느낌을 준다. 스스로와 세상의 합일 이라는 가치는 슈베르트 답지 않다. 오히려 스스로의 내면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찬 번뇌로 부터의 도피처만 있다면 속세의 언어들을 그저 하나의 불협화음으로 간주하며 다시금 뮤즈의 영감을 찾아 헤매는 것이 그 다운 일이다.
이런 슈베르트의 내면은 이 연주에서 아주 느리고 유장하며 허공과 같은 수많은 여백으로 표현된다. 다른 많은 연주들보다 느림의 미학의 절정에 이른 이 연주는 유쾌한 사람이였던 시노폴리 또한 슈베르트가 느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이되어 잠시나마 심장이 움츠려 들어 지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급서한 이 남국의 열정적 지휘자는 이미 이 연주를 통해 하늘의 부름을 한번 받았기에 그리 하늘을 원망치 않고 스튁스 강을 건너지 않았을까 한다.
2악장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슈베르트의 이 미완성 교향곡은 브람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미 완성된 하나의 작품이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확실성 명제와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명제의 충돌은 이 두개의 악장의 양립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울리고 또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이런 명제의 도출은 시노폴리의 지휘에서 오롯이 적출될 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