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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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문장은 맛난다. 기자출신답게 꼼꼼하고 정확하다. 이 책 '공무도하'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예전보다 묘사에 신경을 더 썼다. 말로 충분히 설명되지 아니 할 부분을 잡고 늘어진다. 실팍하게 와닿진 않아도 그 노고가 갸륵하다. 

내용은 삶의 구접스러움에 관한 이야기다. 특별하진 않지만 조약한 삶의 비린내가 느껴진다. '창야'라는 지명을 애써 도입한 것에선 김승옥의 무진 또한 연상케 한다. 서사가 중심이기 보단 살갗이 부딪히며 일어나는 비루한 일상이 주 내용이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고 나서도 명쾌하진 않고 맛깔나는 문장만 가슴에 아로새겨진다.  

영화를 만드는 이 중에 이명세가 김훈과 비슷한 무늬를 띠는 듯 듯하다. 이명세의 작품은 서사를 초탈했다. 이미지가 가득하고 미장센으로 말을 한다. 관객은 헷갈려하지만 묘한 미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다만 김훈은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자이기에 서사를 벗어나진 않는다. 단지 문장의 간결함이 너무나 눈부셔 서사가 애처롭다. 곱씹을수록 맛나는 문장이 그야말로 '양날의 칼'이다. 

 다른 유명 작가와의 구별은 한층 두텁다. 김영하의 재기발랄함이나 김연수의 '기표'와 '기의'에 대한 고민은 이들을 특별하게 한다. 신경숙이 주는 울림이나 공지영이 갖는 시대의 아이콘이란 표식 또한 다른 작가와 구별되게 하는 특징이다. 김훈은 이들과 다르다. 지나친 특별함을 피하고 사실로써 사실을 꾸리고 글로써 세상을 비추려 한다. 현실의 오롯한 묘사가 닿지 않을 노력임을 김훈 자신이 더 잘 알테다. 그러기에 항상 문장을 벼리고 말을 새로이 한다. 던적스런 삶을 최대한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하는 데서 그의 글은 홍상수의 영화와도 조금 닮았다. 하지만 김훈의 눈은 '다름'보단 '평범함'에 더 천착한다.  

 어쩌면 그의 글을 다른 글로 풀어내려는 시도 또한 부질없을 지 모른다. 글이 글로 읽히고 말로 풀어져가며 영상으로 눈에 박히는 세상에서 김훈의 일상성은 특별하다. 아름다운 보수주의다. 일상에 더께로 쌓인 근천스러움이 시리고 가슴을 묵묵히 눅인다. 오늘 새벽엔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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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0-19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규항이 김훈은 한번도 소설을 쓴 적이 없다고 말을 했을때 무릎을 쳤습니다. 그의 글 다운 책이로군요.

바밤바 2009-10-19 20:48   좋아요 0 | URL
김규항이 쓴 예수전을 근자에 읽었는데 상당히 재밌더군요. 김훈과 김규항은 서로 닿지 않는 노선을 가진 듯 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08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투를 쓱 누르고 갑니다. ^^

바밤바 2009-12-08 21:56   좋아요 0 | URL
오~ 누나 멋져!!^^ㅋ
 
죽은 CEO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 경영의 역사를 다시 쓴 위대한 리더들의 마지막 강의
토드 부크홀츠 지음, 최지아 옮김 / 김영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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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이 책도 그리 특별하진 않다. 다만 저자가 유명하고 저자의 전작이 유명하다. 다들 열심히 노력했고 기민했으며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헌데 월마트의 창시자인 샘 월트의 사례가 흥미로웠다. 얼마 전 인물과 사상에 실린 바람구두님의 글과 대비를 이뤘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SSM 기업의 모태다. 저자는 소비자 효용을 최대화 하는 이들의 영업 방식을 찬양한다. 또한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과 혁신을 위한 자잘한 수고도 칭찬의 대상이다. 이에 반해 바람구두님은 월마트의 무노조 경영과 하청업체 쥐어짜기를 비판한다. 사안을 보는 두 사람의 차이 일수도 있다. 허나 ‘왜곡’과 ‘직시’의 차이가 더 큰 듯하다.

 물론 이 책의 독자는 바람구두님의 글을 지나치게 예민하다고도 할 수 있다.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고 경영학적 자양분을 얻으려는 사람이 책을 읽은 다수이기 때문이다. 즉 사회 구조적 비판을 하는 바람구두님의 글은 그들에게 불편하다. 하지만 겹눈으로 세상을 보는 건 성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 책을 읽고 감탄하며 스스로의 게으름을 책망하는 건 독자에겐 하등 좋지 않다. 경쟁 과잉의 시대에 자신을 향한 또 다른 채찍질은 독려의 의미보단 전력질주 하는 사람 등 떠미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우선 1985년에 세계 최고 갑부에 올랐다는 샘 월트의 성공은 부럽기는 하였으나 찬양할 대상은 아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이야기 했듯 성공에는 시기가 중요하다. 그는 성공할 만한 시기에 태어난 행운아다. 그가 한국의 88만원 세대였다면 대기업의 지점장이나 번창하는 구멍가게 사장 정도였을 테다. 월튼이 사업을 시작할 당시는 지금보다 성긴 구석이 많았고 다들 적당히 노력하고 또 적절한 손해를 보며 사는 시기였다. 나름 게으름의 내시균형이 이뤄졌던 시기다. 오히려 월튼과 같은 새로운 시장 참가자가 잠잠하던 균형을 깨트렸다. 월마트 덕에 고객은 싼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하청업체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소규모 마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직접적 피해를 봤다. 이런 현상은 괜찮은 일자리를 줄이고 결국 월마트의 소비자에게 까지 영향을 미친다. 결국 월마트 덕에 소비자의 지출은 줄었지만 소득은 더 큰 폭으로 줄거나 아예 없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런 상황은 사회적 공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본주의 초기를 보자. 증기기관이나 포디즘을 통한 과잉 생산은 제품 수출을 위한 식민지 쟁탈을 낳았다. 식민지 자체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1차 대전이 발생하고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모순은 경제 공황을 낳는다. 1930년 대 공황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에 눈을 돌렸고 자본보단 과잉 경쟁을 무의식적으로 지양하게 된다. 헌데 샘 월튼은 이러한 암묵적 평화를 깨트리며 자본주의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과잉 경쟁에 불을 지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CEO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성공을 위해 노력했으나 당시 상황이 그들에게 좋았다. 즉 자본주의는 공황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경쟁 보단 조금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헌데 위대한 CEO들은 이런 자본주의의 내재적 치유 과정을 무시하고 체제의 고황(膏肓)을 깊게 하여 지금의 신자유주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책에서 찬양하는 CEO들의 성공을 고깝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동시에 경제 주체들의 삶이 더 팍팍해 지는 데에는 이런 자본가들의 억척스런 치부를 지적해야 한다. 얼마 전 금융 위기를 통해 이런 흐름이 좀 제어되는 듯 했으나 과도한 정부지출로 인해 위기를 조장한 이들이 오히려 수혜를 입었다. 또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압박 경영 구조가 더 강해짐에 따라 자본주의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결국 이번 금융 위기는 진정한 위기가 아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환부를 채 도려내지 못하고 적당히 응급 처치만 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더 큰 파도가 몇 년 내에 세계를 덮칠 테다.

 세계 경제 여건이 나아진다는 보도도 유념해서 보아야 한다. 고용을 줄여 수익이 개선된 기업이 많아졌다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는 ‘하석상대’라는 말을 연상 시킨다. 미래의 소비자를 죽여 현재의 이윤을 늘린 격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윤 추구가 기업의 최고 목표인 현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다만 이러한 이윤추구를 위한 무자비한 경쟁의 결과는 자본주의 판을 깨트릴 수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할 방안은 결국 세계 대전이나 1930년대의 대공황 같은 극단적 처방이다. 자본이 개인을 옮아 매는 방식이 더 치밀해지는 현실은 점진적 개혁보단 극단적 방식에 더 무게를 실어 줄 수밖에 없다.

 이제 이 책을 읽고 위대한 CEO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얻겠단 생각의 한계를 알았을 테다. 모두가 최선을 다할수록 삶이 팍팍해가는 ‘죄수의 딜레마’가 세계 경제의 현실이며 위 책의 등장인물들은 지나친 최선이란 우월전략을 통해 내시균형을 깨트린 사람들이다. 모두가 우월 전략을 택한 덕에 더 가난해지는 현실은 이 책을 읽는다 하여도 그대가 CEO가 될 확률은 거의 전무하다는 가르침을 준다. 모두가 ‘자강불식’이란 우월전략을 택한다면 승리자는 정해져 있다. 머리가 매우 좋거나 집안이 좋거나 아니면 매우 드물지만 운이 아주 좋아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지 못한 채 ‘희망 고문’을 일삼는 몇몇 이들의 레토릭에 놀아난다면 그나마 밥벌이하기도 힘들 테다. 이러한 죄수의 딜레마를 깨트리기 위해선 집단적 사보타주도 고려해 볼만 하다. 헌데 시절이 제 수상하니 어떠한 결론도 다 몽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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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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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는 매혹적이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이 연상된다. 프로테스탄트적 경건함이 묻어난다. 헌데 책은 신에 대한 경건함이 아니다. 엄마에 대한 간절함이다. 바람이다. 엄마가 돌아오라고 기도한다. 헌데 표지의 그림에서 엄마가 연상된다. 엄마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듯하다. 다 큰 여성이 엄마가 돌아오라 기도하는 장면으로도 보인다. 허나 소설 속 딸들은 도회적이다. 시골느낌 그득한 표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 표지의 그림은 엄마가 누군가에게 소원이 이뤄지길 부탁하는 거다. '논에 물들어가는 장면과 자식 입에 밥들어가는 모양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어느 농군의 기도다. 이 농군이 엄마다.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 다들 바빠서 그랬을 테다. 그제서야 뒤돌아 본다. 제 어미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크면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거다. 엄마의 눈은 너를 향해 있는 데 네 눈은 엄마의 눈을 부담스러워 했다. 그렇다. 엄마는 네 부담스러움을 알기에 한 걸음 떨어져 있었던 거다. 엄마가 아비의 뒤를 놓친 건 닿지 않을 남편보다 쉬이 닿을 네 뒤를 좇으려다 이내 멍해진 거다. 그리고선 생에 가장 처절한 '인정투쟁'을 벌인다. 네 어미 여기있다고.. 제가 원했듯 원하지 않았든 네 어미는 인정투쟁을 벌인다. 이제 간절함과 애틋함은 그대들 손에 넘어갔다. 

 다들 어미에 관한 상념에 잡힌다. 살가웠던 추억은 쓰리다. 아팠던 추억은 더 깊게 파인다. 가슴에 크나큰 홈이 하나 생긴다. 그럴수록 기억을 붙잡으려 치열하다. 아직 보낼 수 없기에 스스로를 학대한다. 아픈만큼 자위한다. 이렇게 아프면 여태껏 쟁여둔 죄스러움이 조금은 사위어 들 듯 하다. 그렇다고 가뭇없이 사라진 어미가 방불히 눈 앞에 밟히진 않는다. 그저 가슴에 아로새겨진 추억의 몇자락만 붙잡고 네 오빠를 탓하고 네 동생을 탓하고 무엇보다 네 무딘 감성을 탓한다. 

 아비도 애달프다. 어미가 이리 갈 줄 몰랐다. 얼굴도 못 보고 결혼한 처자는 그저 당연한 존재였다. 손을 잡아주지도 마음을 열어 본적도 없는 듯하다. 그저 역마살 끼인 내 삶의 기항지처럼 영원히 그대로이길 바랐다. 아니 당연했다. 헌데 당신이 없으니 아비는 눈물이 여울진다. 가슴에 멍울이 생긴다. 자식들이 흘기는 눈초리도 감내하기 버겁다. 당신이 보고싶다. 밤을 낮삼아 그대에게 해줄 얘기가 많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가난한 마음이 여지껏 푼푼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내가 쉴 그대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아프오. 아프다고 해도 무심한 그대 눈빛에 아팠오. 너네 걱정하다 고리삭은 내 몸을 보고선 다시금 너네 걱정하는 내 잔망스러움에 아팠오. 집안 꾸려나간다고 허리가 아픈건 아픈게 아니었오. 내 인생 찾자고 가출해 버리는 드라마 속 누구처럼 삶이 구접스러워 보여 아픈 것도 아니었오. 마음 기댈 때가 없어 아팠오. 무심한 딸년들이 나 없이도 잘 해내는 게 왠지 모르게 섭섭해서 아팠오. 큰 아들 재주를 알아주지 못하는 무심한 세상 때문에 아팠오. 이젠 그대들과 살갗을 부빌 수 없어 아프오. 

 이렇듯 엄마는 갔다. 다들 제 가슴에 아로새겨진 엄마란 이름에 눈가가 촉촉했을 터이다. 내 어미도 저리 허랑히 잃어버릴까 간만에 엄마에게 전화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세상사 각박하다 고개숙인 나약함을 책망하는 자도 있을 테다. 엄마를 위해서 다시 일어서리란 각오를 날카롭게 벼리는 사람도 많을 테다. 덕분에 엄마의 마음은 다습해진다. 내 꿈을 못 이루고 내 삶이 소박해도 엄마 생각하면 다 살만한 세상이다. 나 또한 표지 속 그림마냥 손을 모으고 기도 드린다. 엄마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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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심함과 일별을 고하라 - [엄마를 부탁해]
    from 컬쳐몬닷컴 2009-10-09 15:59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엄마가 사라졌다. 엄마 스스로의 의지로 집을 나갔으면, 차라리 엄마를 이해라도 해볼 수 있을까. 오랜 지병 끝에 세상과 이별한 것이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해놓았을까.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실종, 여느때처럼 자식들의 집에 들르러 온 길, 수많은 인파 속에서 하필이면 이날 남편과 떨어져서 지하철을 놓치게 된다. 벌어진 상황 자체가 엄마에 대한 무심함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일이 벌어지는 날은 돌아보면..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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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엔 생략은 없지만 압축은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압축 성장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민주주의의 성장 자체도 압축적이다. 그러다 보니 민주주의국가로서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지 못했다. 후에 부담해야 한다. 이른바 후불제 민주주의다.

 유시민씨가 이전에 쓴 책들은 참 쉬웠다. 경제학이나 세계사에 관한 책이다 보니 달리 편중돼 있다는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책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나친 애정으로 중심을 잃었다. 어쩌면 그가 차곡하게 쌓아두었던 내공이 국회의원과 장관을 거치며 다 소진됐는지 모르겠다. 지나친 나르시시즘도 보이고 자기변명도 늘었다.

 나는 유익한 정보가 담겨있거나, 쉬이 볼 수 없는 통찰력이 번뜩이거나 혹은 문장 자체가 지극히 아름다운 글을 좋다고 여긴다. 고종석 씨의 글이 이러한 조건을 다 갖추었다 할 수 있다. 다만 속세에 발은 담구지 않은 선인이 쓴 글 같은 느낌이 들어 세상을 보는 프레임에 많은 영향을 주진 않는다. 강준만의 글은 그런 면에서 최고다. 그는 한 달에 한권 정도 책을 쓰며 공평무사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사안 파악이 잘 안 될 때 강준만씨의 글을 읽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한층 두터워진 듯하여 좋다. 가끔 강준만을 좌파라 생각하는 지인들이 있던데 이 사람은 중도다. 멋진 중도다.

 유시민의 글을 읽으며 참여 정부가 왜 집권 내내 힘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중시한 건 인간적 아름다움이었다. 인간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의 다스림을 받는 건 아랫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최민수식 후까시나 소지섭식 간지는 폼 나고 다들 찬양해 하지만 무리의 지도자가 행할 태도는 아니다.

 글 자체도 소구력이 없었다. 이야기를 재밌게 하기 위한 많은 사례가 나왔지만 익히 접했던 사연 들이라 식상했고 본인의 넋두리는 독자를 감동시키지 못했다. 학자와 같은 정치한 글을 유시민에게 기대한 내 잘못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관료제의 비경제성을 논파하고 자신들의 신념이 국민에게 거부감을 산 원인 대한 반성이 주내용이었으면 했는데 아쉽다. 결국 그와 그의 주군은 후불해야 할 민주주의의 값을 더 높여만 놓았다. 중도실용을 표방한 이명박 정권을 들어서게 했기에 그렇다. 유시민이 나르시시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그의 글에서 이전같은 느낌을 받긴 어려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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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산도스 30주년 기념 음반 : 마일스톤즈 [한정판 30 FOR 4]
백스 (Arnold Bax) 외 작곡, 톰슨 (Bryden Thomson) 지휘, Anth / Chandos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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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낯설어서 좋다. 익숙하지 않은 음악은 이렇 듯 설렘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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