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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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는 매혹적이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이 연상된다. 프로테스탄트적 경건함이 묻어난다. 헌데 책은 신에 대한 경건함이 아니다. 엄마에 대한 간절함이다. 바람이다. 엄마가 돌아오라고 기도한다. 헌데 표지의 그림에서 엄마가 연상된다. 엄마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듯하다. 다 큰 여성이 엄마가 돌아오라 기도하는 장면으로도 보인다. 허나 소설 속 딸들은 도회적이다. 시골느낌 그득한 표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 표지의 그림은 엄마가 누군가에게 소원이 이뤄지길 부탁하는 거다. '논에 물들어가는 장면과 자식 입에 밥들어가는 모양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어느 농군의 기도다. 이 농군이 엄마다.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 다들 바빠서 그랬을 테다. 그제서야 뒤돌아 본다. 제 어미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크면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거다. 엄마의 눈은 너를 향해 있는 데 네 눈은 엄마의 눈을 부담스러워 했다. 그렇다. 엄마는 네 부담스러움을 알기에 한 걸음 떨어져 있었던 거다. 엄마가 아비의 뒤를 놓친 건 닿지 않을 남편보다 쉬이 닿을 네 뒤를 좇으려다 이내 멍해진 거다. 그리고선 생에 가장 처절한 '인정투쟁'을 벌인다. 네 어미 여기있다고.. 제가 원했듯 원하지 않았든 네 어미는 인정투쟁을 벌인다. 이제 간절함과 애틋함은 그대들 손에 넘어갔다. 

 다들 어미에 관한 상념에 잡힌다. 살가웠던 추억은 쓰리다. 아팠던 추억은 더 깊게 파인다. 가슴에 크나큰 홈이 하나 생긴다. 그럴수록 기억을 붙잡으려 치열하다. 아직 보낼 수 없기에 스스로를 학대한다. 아픈만큼 자위한다. 이렇게 아프면 여태껏 쟁여둔 죄스러움이 조금은 사위어 들 듯 하다. 그렇다고 가뭇없이 사라진 어미가 방불히 눈 앞에 밟히진 않는다. 그저 가슴에 아로새겨진 추억의 몇자락만 붙잡고 네 오빠를 탓하고 네 동생을 탓하고 무엇보다 네 무딘 감성을 탓한다. 

 아비도 애달프다. 어미가 이리 갈 줄 몰랐다. 얼굴도 못 보고 결혼한 처자는 그저 당연한 존재였다. 손을 잡아주지도 마음을 열어 본적도 없는 듯하다. 그저 역마살 끼인 내 삶의 기항지처럼 영원히 그대로이길 바랐다. 아니 당연했다. 헌데 당신이 없으니 아비는 눈물이 여울진다. 가슴에 멍울이 생긴다. 자식들이 흘기는 눈초리도 감내하기 버겁다. 당신이 보고싶다. 밤을 낮삼아 그대에게 해줄 얘기가 많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가난한 마음이 여지껏 푼푼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내가 쉴 그대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아프오. 아프다고 해도 무심한 그대 눈빛에 아팠오. 너네 걱정하다 고리삭은 내 몸을 보고선 다시금 너네 걱정하는 내 잔망스러움에 아팠오. 집안 꾸려나간다고 허리가 아픈건 아픈게 아니었오. 내 인생 찾자고 가출해 버리는 드라마 속 누구처럼 삶이 구접스러워 보여 아픈 것도 아니었오. 마음 기댈 때가 없어 아팠오. 무심한 딸년들이 나 없이도 잘 해내는 게 왠지 모르게 섭섭해서 아팠오. 큰 아들 재주를 알아주지 못하는 무심한 세상 때문에 아팠오. 이젠 그대들과 살갗을 부빌 수 없어 아프오. 

 이렇듯 엄마는 갔다. 다들 제 가슴에 아로새겨진 엄마란 이름에 눈가가 촉촉했을 터이다. 내 어미도 저리 허랑히 잃어버릴까 간만에 엄마에게 전화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세상사 각박하다 고개숙인 나약함을 책망하는 자도 있을 테다. 엄마를 위해서 다시 일어서리란 각오를 날카롭게 벼리는 사람도 많을 테다. 덕분에 엄마의 마음은 다습해진다. 내 꿈을 못 이루고 내 삶이 소박해도 엄마 생각하면 다 살만한 세상이다. 나 또한 표지 속 그림마냥 손을 모으고 기도 드린다. 엄마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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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심함과 일별을 고하라 - [엄마를 부탁해]
    from 컬쳐몬닷컴 2009-10-09 15:59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엄마가 사라졌다. 엄마 스스로의 의지로 집을 나갔으면, 차라리 엄마를 이해라도 해볼 수 있을까. 오랜 지병 끝에 세상과 이별한 것이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해놓았을까.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실종, 여느때처럼 자식들의 집에 들르러 온 길, 수많은 인파 속에서 하필이면 이날 남편과 떨어져서 지하철을 놓치게 된다. 벌어진 상황 자체가 엄마에 대한 무심함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일이 벌어지는 날은 돌아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