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CEO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 경영의 역사를 다시 쓴 위대한 리더들의 마지막 강의
토드 부크홀츠 지음, 최지아 옮김 / 김영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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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이 책도 그리 특별하진 않다. 다만 저자가 유명하고 저자의 전작이 유명하다. 다들 열심히 노력했고 기민했으며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헌데 월마트의 창시자인 샘 월트의 사례가 흥미로웠다. 얼마 전 인물과 사상에 실린 바람구두님의 글과 대비를 이뤘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SSM 기업의 모태다. 저자는 소비자 효용을 최대화 하는 이들의 영업 방식을 찬양한다. 또한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과 혁신을 위한 자잘한 수고도 칭찬의 대상이다. 이에 반해 바람구두님은 월마트의 무노조 경영과 하청업체 쥐어짜기를 비판한다. 사안을 보는 두 사람의 차이 일수도 있다. 허나 ‘왜곡’과 ‘직시’의 차이가 더 큰 듯하다.

 물론 이 책의 독자는 바람구두님의 글을 지나치게 예민하다고도 할 수 있다.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고 경영학적 자양분을 얻으려는 사람이 책을 읽은 다수이기 때문이다. 즉 사회 구조적 비판을 하는 바람구두님의 글은 그들에게 불편하다. 하지만 겹눈으로 세상을 보는 건 성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 책을 읽고 감탄하며 스스로의 게으름을 책망하는 건 독자에겐 하등 좋지 않다. 경쟁 과잉의 시대에 자신을 향한 또 다른 채찍질은 독려의 의미보단 전력질주 하는 사람 등 떠미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우선 1985년에 세계 최고 갑부에 올랐다는 샘 월트의 성공은 부럽기는 하였으나 찬양할 대상은 아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이야기 했듯 성공에는 시기가 중요하다. 그는 성공할 만한 시기에 태어난 행운아다. 그가 한국의 88만원 세대였다면 대기업의 지점장이나 번창하는 구멍가게 사장 정도였을 테다. 월튼이 사업을 시작할 당시는 지금보다 성긴 구석이 많았고 다들 적당히 노력하고 또 적절한 손해를 보며 사는 시기였다. 나름 게으름의 내시균형이 이뤄졌던 시기다. 오히려 월튼과 같은 새로운 시장 참가자가 잠잠하던 균형을 깨트렸다. 월마트 덕에 고객은 싼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하청업체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소규모 마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직접적 피해를 봤다. 이런 현상은 괜찮은 일자리를 줄이고 결국 월마트의 소비자에게 까지 영향을 미친다. 결국 월마트 덕에 소비자의 지출은 줄었지만 소득은 더 큰 폭으로 줄거나 아예 없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런 상황은 사회적 공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본주의 초기를 보자. 증기기관이나 포디즘을 통한 과잉 생산은 제품 수출을 위한 식민지 쟁탈을 낳았다. 식민지 자체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1차 대전이 발생하고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모순은 경제 공황을 낳는다. 1930년 대 공황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에 눈을 돌렸고 자본보단 과잉 경쟁을 무의식적으로 지양하게 된다. 헌데 샘 월튼은 이러한 암묵적 평화를 깨트리며 자본주의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과잉 경쟁에 불을 지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CEO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성공을 위해 노력했으나 당시 상황이 그들에게 좋았다. 즉 자본주의는 공황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경쟁 보단 조금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헌데 위대한 CEO들은 이런 자본주의의 내재적 치유 과정을 무시하고 체제의 고황(膏肓)을 깊게 하여 지금의 신자유주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책에서 찬양하는 CEO들의 성공을 고깝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동시에 경제 주체들의 삶이 더 팍팍해 지는 데에는 이런 자본가들의 억척스런 치부를 지적해야 한다. 얼마 전 금융 위기를 통해 이런 흐름이 좀 제어되는 듯 했으나 과도한 정부지출로 인해 위기를 조장한 이들이 오히려 수혜를 입었다. 또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압박 경영 구조가 더 강해짐에 따라 자본주의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결국 이번 금융 위기는 진정한 위기가 아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환부를 채 도려내지 못하고 적당히 응급 처치만 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더 큰 파도가 몇 년 내에 세계를 덮칠 테다.

 세계 경제 여건이 나아진다는 보도도 유념해서 보아야 한다. 고용을 줄여 수익이 개선된 기업이 많아졌다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는 ‘하석상대’라는 말을 연상 시킨다. 미래의 소비자를 죽여 현재의 이윤을 늘린 격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윤 추구가 기업의 최고 목표인 현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다만 이러한 이윤추구를 위한 무자비한 경쟁의 결과는 자본주의 판을 깨트릴 수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할 방안은 결국 세계 대전이나 1930년대의 대공황 같은 극단적 처방이다. 자본이 개인을 옮아 매는 방식이 더 치밀해지는 현실은 점진적 개혁보단 극단적 방식에 더 무게를 실어 줄 수밖에 없다.

 이제 이 책을 읽고 위대한 CEO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얻겠단 생각의 한계를 알았을 테다. 모두가 최선을 다할수록 삶이 팍팍해가는 ‘죄수의 딜레마’가 세계 경제의 현실이며 위 책의 등장인물들은 지나친 최선이란 우월전략을 통해 내시균형을 깨트린 사람들이다. 모두가 우월 전략을 택한 덕에 더 가난해지는 현실은 이 책을 읽는다 하여도 그대가 CEO가 될 확률은 거의 전무하다는 가르침을 준다. 모두가 ‘자강불식’이란 우월전략을 택한다면 승리자는 정해져 있다. 머리가 매우 좋거나 집안이 좋거나 아니면 매우 드물지만 운이 아주 좋아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지 못한 채 ‘희망 고문’을 일삼는 몇몇 이들의 레토릭에 놀아난다면 그나마 밥벌이하기도 힘들 테다. 이러한 죄수의 딜레마를 깨트리기 위해선 집단적 사보타주도 고려해 볼만 하다. 헌데 시절이 제 수상하니 어떠한 결론도 다 몽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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