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소재 삼음은 여실히 줄었다.
첫 소설집인 <일식에 대하여>를 보며 가졌던 처지의 일치감이 근래 소설에선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승우가 중년의 삶, 노년의 삶을 얘기한대서 별무관심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작가 생활 내내 이승우가 겉약지 않고 인간 자체를 진득하게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내게는 고마움이다.
황석영의 유토피아 희구는 계속되고 있다.
<오래된 정원>에서 그들이 찾던 것도 결국은 유토피아일테고.
세 인물이 찾던 삼포는 그들같이 못난 사람들도 평등하게 어울릴 수 있는 곳일 것이다.
그러한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인가?
타인은 지옥이다.
그래서 구토를 느낀다.
사르트르는 상대방의 눈길을 통해 타인이 지옥임을 깨닫고, 그들로부터 구토를 느낀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 말하고 있다.
Jean-Paul Charles Aymard Sartre(1905–1980)
이 희극은 웃기기보단 슬프다.
인물들은 희극적인데 전체적 극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아마 희극적 인물들을 관통하는 인간의 비극적 본질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무지, 허위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두 작품을 읽어가며 인간의 착한 본성을 신뢰하는 작가의 경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 수 있었다.
황순원이 휴머니스트일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인간 본성의 변화가 환경 때문이라 생각하는 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