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피는 날들
꺼페이 지음, 김순진 옮김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나 아름다운 소설이다.  

 

  선봉문학이란 작은 그릇으론 담을 수 없는 작가다.  

 

  기교면에선 왕멍에 가깝고 주제의식에선 위화에 가깝다.  

 

  난 왕멍을 더 좋아하는데 또 한 사람의 왕멍을 만난 것 같아 반갑다.  

 

  이 소설이 3부작의 1부라니 다음 번역이 기대된다.  

 

  왕멍(<연애의 계절>, <실태의 계절>) 말고도 번역을 기다리는 중국 작가가 생겼다.  

 

  고마운 일이다.  

 

                               格非(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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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시간의 기억> / 김원일 / 문학과지성사 / 2001


슬픈 시간의 기억



나오는 사람들

윤여은: 교사

정례 이모: 여은의 이모

동네 아이들

황민우: 여은을 짝사랑하는 남학생

마리아 선교사

중년 신사

노인

방도식: 여은의 제자

전경수: 여은의 제자

곽기동: 의사, 여은의 제자

의사

형사


1막

1장 동네

여은이를 동네 아이들이 둘러싸고 있다. 한뎃 말로 놀린다.


동네 아이들: 여은이 입은 토끼 입/까치가 쪼았나 새앙쥐가 갉았나/째보는 시집도 못 간 대...


아이들 헤어지며, 손가락질 한다. 여은이는 고개 숙여 운다. 정례 이모가 수줍은 듯 다가온다.


정례 이모: (눈을 내리깔고 더듬으며)여은아, 괘, 괜찮아?

여은: 이모, 난 왜 째보로 난 거야. 아이들 놀림감 밖에 더 되냐구?

정례 이모: 여은아, 호, 혹시 예수님을 알아? 예수님을 믿으면 서, 성령으로 병자를 낫 게 해준대.   내 얽은 얼굴을 마, 말끔하게 해주시고 째보인 네 이, 인중도 예 수님이 꾸, 꿰매주실 거야.

여은: 예수님? 그건 그렇고, 이모, 성령이 뭔데 그렇게도 용해요?

정례 이모: 예수님은 죽은 나, 나사로를 보고,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부르시니 나사로가 사, 살아났다잖아. 네가 예수님을 여, 열심히 섬기고 기도로 간청하면 예수님 이 니, 네 입을 보고, 내가 꾸, 꿰매주마 하실 거야. 그럼 찌, 찢어진 살이 감 쪽같이 붙게 돼.

여은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2장 교회당 1

여은과 정례 이모가 교회당으로 들어선다. 교회당에는 엄숙한 분위기로 많은 이들이 앉아 예배드리고 있다. 여은과 정례 이모가 조용히 앉는다. 여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위를 계속해 살펴댄다.


정례 이모: (정면을 가리키며)저분이 바로 구, 구세주 예수님이란다.

여은: (살살 앞으로 기어나가며 가까이서 예수님상을 살핀다. 제자리로 돌아온다. 혼잣 말로)불쌍하기도 해라. 알몸에, 온몸이 상처 투성이네. 저런 꼴로 죽은 벌거숭이 서양 남자를 어른들이 섬기다니. 그런데, 이모. 이모 말대로 정말 저분을 열심히 섬기면 병이 낫고 병신을 면할 수 있을까?

정례 이모: (여은을 바라보며 웃는다)예수님은 하나님으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병자와 병신을 고쳐주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 저렇게 죽으셨어. 여, 여은이와 나도 예수님을 진실로 믿으면 꼬, 꼭 낫게 해주실테야.


예배가 끝나고 모두들 나온다. 여은도 뒤돌아선다. 순간 음성이 들린다.


예수님: (음성으로)어린 딸아, 내가 너를 여태 찾았다. 나를 다시 만나러 오렴. 내가 찢 어진 네 입술을 고쳐주마.

여은이 뒤돌아선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마리아 선교사가 강대상 쪽에서 다가온다.


마리아 선교사: 네가 여은이니?

여은: (눈치를 보며 피하며)네.

마리아 선교사가 웃으며 다가와 여은을 꼭 안는다. 여은은 불편해 하며 품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여은이 밖으로 나간다.


마리아 선교사: 다음 주로 여은이 수술 날짜가 잡혔어요. 여은이에게는 말씀하지 마시구 요.

정례 이모: 네, 네 알겠어요. 고, 고맙습니다.


3장 집 1

여은: (거울 앞에서 신기해하며)이모, 정말 내 입이.......

정례 이모: (기쁜 목소리로)예수님은 사, 살아 계시지. 서, 성령으로 목사님을 통해 너 입을 고, 고쳐주셨어.


여은 이모와 함께 기뻐한다.


4장 기찻간 1

한 남학생이 여은이를 줄곧 쳐다보고 있다. 슬그머니 다가와 편지를 여은의 교복 주머니에 넣는다. 여은은 편지를 꺼내 읽는다. “......윤여은님의 아리따운 모습이 꿈속에서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외로운 사슴마냥 며칠 밤을 잠 못 이루었습니다......” 편지를 이내 찢는다.

기차 소리가 세차게 들린다. 여은이 기차에 들어선다.

민우: 저, 미, 민웁니다. 잠시 시간 좀 내어주시면......

여은 놀라 눈길을 돌린다.

민우: (여은의 손을 잡으며)제가 유, 유수역에서 내리겠습니다. 제발 시간 좀......

여은: (책가방으로 민우의 팔을 내리친다)이거 놓아요!

민우: 다, 다른 게 아닙니다. 잠시만 시간 좀......

여은: (힘있게 민우의 몸을 밀친다)이거 놓으란 말예요!

터널속이다. 사방이 깜깜해진다. 남학생의 외마디 비명이 들린다.

환해진다. 여은은 놀란 표정이다.


5장 기찻간 2

여은이 기찻간에 서 있다. 옆으로 두 남자가 서 있다.

중년의 신사: 쯔쯔, 기어코 숨을 거두었다더구먼. 마산까지 가서 일본인 양의에게 보였 는데도 결국 못 살려냈어. 머리 좋은 아까운 자식을 그렇게 잃고 말다니.

노인: 다리뼈는 그렇다 치고 갈비뼈가 몇 개나 나갔다던데 무슨 재주로 살려내요. 그런 데 민우 말이, 혼자 승강구 손잡이를 잡고 바람을 쐬다 열차가 굴로 들어 서자 갑자기 숨이 막혀 한 손으로 입을 막다 실수로 떨어졌다고 우기니, 그게 미 심쩍다 이 말입니다. 허긴 비가 오던 날이라 손잡이가 미끄럽긴 했겠으나 비오는 날 왜 난간에 서 있었는지......

중년의 신사: 친구와 장난치다 떨어질 수 있었겠고, 민우를 미워하던 한 반 애가 열차가 굴속으로 들어서자 민우를 밀어버릴 수도 있잖았겠습니까. 아닌말로 일본 인 학생이 조선인 학생을 미워해 장난삼아 그런 짓을 할 수도 있으니깐요. 그런데다 걔가 굴속에서 떨어지는 걸 아무도 본 사람조차 없었다니......


여은 괴로운 표정이다.


6장 집 2

여은: 주님, 제 발로 지서에 찾아가 제가 그를 밀친 죄를 자백해야 할까요, 이 비밀을 숨기고 있어도 될까요? 주님, 저는 이제껏 당신을 알았지만 마음 깊이는 당신을 알지 못했습니다. 공부하는 틈틈이 성경도 읽으며, 기도도 하고, 경건하게 예배도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이태껏 제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아브라함에 게 말씀한, 그런 고난과 절망이 없었습니다. 주님 무섭습니다. 죄가 무섭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저를 어찌하오리까? 저를 용서하소서.


해설: 여은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시골 초등학교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2막

1장 교실 1

새 학기 첫 시간이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

여은: 안녕하세요, 여러분. 올 한 해 담임을 맡게 된 윤여은이에요. 반가워요.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올 한 해 우리 교실의 급훈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죠. 선생님이 적어 왔는데(한 학생을 가리키며)한 번 읽어 볼래요?

곽기동: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서로 사랑하라.

여은: 그래요,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은 서로를 사랑하나요? 우리가 이 교실에서 함께 배워야 할 게 참 많죠. 우리말도 배워야 하고, 덧셈․뺄셈도 배워야 하고...... 이것 도 참 중요해요. 하지만 우리가 함께 하는 1년 동안 꼭 잊지 않고 서로 배워야 할 게 바로 사랑이에요. 여러분, 사랑이 뭔가요? 선생님은 어릴 적 몸과 마음에 상처 가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피하고 다녔죠. 여러분들과 같은 친한 친구들도 없 었구요. 모두들 절 보면 징그럽고, 무섭다며 놀리기만 했구요. 하지만 한 선교사 님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 분은 말없이 다가와 저를 꼭 안아주셨어요. 저는 발버 둥을 쳤지만 그 분은 그럴수록 더 꼭 안아 주셨어요. 선생님은 태어나 그 때 처음 으로 사랑을 느꼈어요. 아무 말씀도 없으셨지만, 나의 상처와 아픔을 아시고 가만 히 다가와 꼭 안아주실 때 사랑을 느꼈던 거에요. 친구들이 서로를 볼 때 밉고 부 족한 점도 있을테지만, 감싸주며 안아줄 때 그 때 바로 사랑이 이루어지는 거예 요. 우리도 서로를 꼭 안아주는 친구들이 되도록 해요. 알았나요?


2장 교실 2

새떼 소리가 들린다.


여은: 여러분, 창밖의 기러기떼를 잠깐 볼래요? 무슨 모양으로 날고 있죠?

방도식: 응,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 (머리를 긁적이며)응, 시옷자요.

여은: (웃으며)맞아요. 누가 일러주거나 훈련시키지 않아도 기러기들은 열 맞춘 생도들 처럼 저렇게 아름다운 띠를 만들어 날잖아요.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오묘해요? 여러분 도요새를 알아요?

방도식: 응..... 모르겠는데요.

여은: 선생님은 도요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몸집은 작지만, 날갯짓이 정말 힘차죠? 도요새는 오백만 년 전 신생대부터 이 지구상에 살아온 나그네새 에요. 봄가을에 시베리아란 곳에서 이 곳 까지 일만 킬로미터를 무리 지어 이동해 요. 누가 그 먼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도요새들은 끊임없이 제가 가야할 길을 가죠. 연어도 그래요. 수만 킬로미터를 여행한 끝에 모태의 강을 찾아 돌아와 알 을 낳고 죽죠.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늘 인도하세 요.


3장 교실 3

용의 검사날이다.

방도식: 경수야, 너 손톱이 그게 뭐냐? 시컴해가지구, 그게 손이냐 발가락이지?

전경수: 그런 넌 임마! 손 좀 씻고 다녀라. 넌 그게 손이냐 탄 누룽지지?

곽기동: 야, 어쩌냐? 3반 애들은 손톱 긴 애들은 회초리로 진창 맞았다는데. (다리를 절 며 제 자리로 오며)선생님 오신다!


윤선생이 들어온다. 아이들의 손톱을 하나, 둘 살핀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치를 살핀다.


여은: 방도식, 전경수, 곽기동!

도식,경수,기동: (기어가는 목소리로)네!

여은: 수업 끝나고 남아요.

전경수: (아이들을 쳐다보며)우린 이제 죽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교실에 앉아있다. 여은은 양동이에 물을 담아 온다.

여은: 더운 물이에요. 여기에 모두들 손을 담가요.


아이들 서로 눈치를 살피며, 양동이에 손을 담근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여은이 다가가 아이들의 손을 씻는다.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한다. 여은이 주머니에서 손톱깍개를 꺼내 아이들의 손톱을 하나, 둘 깎는다.


3막

1장 전쟁

해설: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한다. 윤선생이 재직하던 학교는 문을 닫고 그는 도립병 원의 보조 간호사로 나선다. 전투는 치열했다. 병원은 복도에까지 부상병으로 초 만원이었고 하루 평균 수십 구의 시체가 매장지로 떠났다.


수술대가 놓여 있고 의사와 윤선생이 수술 준비를 하고 있다.


의사: 복부 파편상이구만.

여은: 수술을 해야겠지요?

의사: 윤간호사, 이 아이가 인민군이라는 거 몰라? 이 아인 수술 규정에 위반된다구. 발 각이라도 되는 날이면 이 아이는 물론이고, 한 간호사와 나 역시 살아남지 못할 거야. 지금은 전쟁중이야. 다들 미쳐있다구.

여은: 선생님, 이 인민군 아이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에요. 금방 죽어가는 환자를 놔두고 모르는 체 할 순 없잖아요. 의사의 사명이 무엇이죠? 죽을 때까지 환자를 돌보는 것이 의사의 사명 아닌가요?

의사: 자넨, 사람이 왜 그렇게 콱 막혔나? 정신 똑바로 차리라구. 현실을 똑바로 보란 말야. 더구나 인민군이 다시 들이닥친다고 하더군. (가운을 벗으며)여러 소리 말 고 나랑 같이 여길 피하자고. 자네 목숨이나 챙기라구.

여은: 아니요. 전 여기 남겠어요. 죽어가는 환자가 있는데 이 곳을 뜰 수는 없어요.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환자를 두고 떠날 수는 없어요.

의사: (고민하며 가운을 다시 입는다)서둘러야 되겠어. 마취제와 지혈겸자를 준비해. 취 사실에 가서 물도 끓이고.

여은: 예, 선생님.


2장 고문

해설: 인민군이 잠시 지역을 점령했으나 곧 물러가고, 국군에 의해 수복이 된다. 곧이어 대대적인 부역자 색출작업이 시작되었다.


여은이 의자에 묶여 있다. 형사가 취조 중이다.


형사: 윤여은, 선생 출신이라 봐줬더니 이년이 거짓말만 둘러대! 네 년이 한 일이 무슨 짓인지 아는 거야? 의사를 꼬셔대 인민군만 골라 치료를 하고 말야. 너 빨갱이지? 사범학교 다닐 때부터 학습해 왔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어. 아이들에게도 수업 시 간에 사상을 주입해왔던 거지? 얼른 대답하지 못해?

여은: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여종입니다. 신분과 지위, 부귀와 빈 천을 따지지 않으시고 모든 이를 사랑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 아이를 치료한 것 뿐입니다.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이념이 무엇이고, 사상이 무엇입니까?

형사: (여은을 발로 치며)이런 빨갱이년, 뭐가 어째? 말 잘하는 거 보니 진짜 빨갱이군. 그럼 교사로서 모은 돈은 다 어디에 둔 거야? 대남공작금으로 사용하지 않았냐 구?

여은: 제가 평소 돈을 모아 하고 있는 사업이 있습니다. 돈이 조금씩 모이면 고아들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교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힘이 닿 는대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끔 하는 게 아닙니까?

형사: 흥,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기회를 주겠어. 빨갱이라고 실토하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겠어. 전시에 너따위 하나 죽여봤자 누가 알 성 싶어? 마지막 기 회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으라고.(나간다)

여은: 주님, 저를 구해 주옵소서. 나를 어찌 버리십니까? 욥과 예레미야도 고난을 당하 였으나 하나님을 의심치 않았다 했습니다. 주님,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내게도 그들과 같은 믿음을 주소서.


불이 꺼진다.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제자 1: 윤선생님은 죄가 없습니다!

제자 2: 윤선생님은 빨갱이가 아닙니다!

제자 3: 우리 선생님을 풀어주세요!


해설: 보통학교 학생 학부모와 교회 교인들이 수감된 경찰서 마당까지 몰려왔다. 그들의 탄원으로 윤선생은 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풀려났다. 전쟁이 끝났다. 여은은 결혼 도 하지 않은 채 아이들을 가르치며 고아들을 양자로 들여 키우며 산다. 윤선생은 도교육청에 건의서를 제출하여 낙도나 작은 분교의 평교사를 지원했다. 외딴 섬에 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곳에 교회가 없다면 젊은 목사를 청빙해와 자신이 개척 교회를 세우고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먹었다.


3장 교실 4

여은이 강의 중이다.


여은: 이 시간은 시인 천상병님의 「귀천」을 공부하겠어요. 천상병님은 깊은 고문의 상 처로 평생 육체적 고통을 안고 산 분이에요.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맑고 밝은 시 를 지으시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다 주었죠. 선생님이 한 번, 읽어보겠어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여은 복부에 통증을 느낀다. 몸이 비틀거리며 숨을 헐떡인다. 아이들이 놀래하며 선생님에게 달려간다.


아이들: 선생님, 선생님!


4막


1장 병원 1


해설: 여은은 신장암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방도식, 곽기동이 선생님 주위에 있다.


방도식: (여은을 향하며)선생님 기억하세요? 저희 반에 홍동시라는 애가 있었잖습니까? 별명이 홍시였는데 얘가 동네 애들과 남의 밀밭에 들어가 밀 서리를 했는데, 그 만 이 홍시만 주인한테 잡혔지 뭡니까? 이튿날 학교로 통고가 오자 방과 후 선 생님이 홍시를 데리고 밀밭 주인을 찾아가 학생을 잘못 가르쳐 죄송하다며 백 배 사죄하시고 선생님이 서리하여 베어진 밀밭에 무릎 꿇어 홍시 대신 한 시간 벌을 서시고, 홍시는 한 시간 동안 꼴을 한 짐 베라는 일감을 맡겼지 뭐예요. 선생님 기억하세요?


여은은 웃기만 한다.


방도식: 곽박사, 자네도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각별하지?

곽기동: 집에서 산 넘고 개울 건너 십 오리 길을 다리 절며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은 내 게 늘 용기를 주시고 보릿고개 때는 도시락을 여러 개 준비해 오셔서 나처럼 점 심 굶는 반 애들에게 나누어 주셨지. 졸업을 앞두고 반 애들에게 선생님께서 장 래 희망을 물으시자, 나는 의사가 되어 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 고 말했잖았나? 선생님이 그 말을 새겨들었다, 논 몇 마지기에 목을 매는 우리집 까지 찾아오셔서, 기동이가 이제 글을 깨쳤으니 보통학교 졸업으로 충분하다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나를 공립중학교에 입학시켜주셨어. 졸업할 때까지 납입금을 보태주시기까지 했으니 그런 은공을 살아생전 잊으면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야. (여은을 향하며)선생님은 제게 영원한 어머님이십니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선 생님 건강 지켜주십사고 기도부터 드리지요.

여은: (수줍게 웃으며)곽박사님 기도 덕분에 제가 이렇게 오래 살고 건강하잖아요.


2장 병원 2

여은: (힘겹게)전 선생님, 저기 성경책에서 구약 이사야 53장을 찾아 좀 읽어줘요.

전경수: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 고를 아는지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이지 않음을 받은 자 같아 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은: 고마워요, 전 선생. 모두 쉬쉬하지만, 전 알아요. 신장으 암이 온몸으로 저, 전이 된 것 같아요.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지요.

전경수: (민망해하며)선생님 절대 체념 마시고 힘을 내세요. 포기하시면 안돼요. 제가 옆에서 힘이 되어 줄게요.

여은: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3장 임종

여은: 저는 세상 사람들 앞에 교사로서의 품위를 보이려 위선이란 옷을 입고, 모범으로 꾸미며, 내 몸을 상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주님을 섬긴다고 멸시를 당했거나 수 난과 박해를 겪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같은 죄인이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 에 들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도 이런 참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왔겠지요. 저희 죄를 알지 못하는 뭇 사람들을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저희가 당할 고통을 대 신 당하시며 그 고통이 하도 괴로워, 나를 어찌 버리셨나이까, 나의 영혼을 하나 님께 맡긴다고 말씀 하셨지요. 주님, 주님은 메시아이시니 몸은 비록 죽더라도 이 여식으 영혼을 구원해주소서......

주님만은 알고 계시죠. 저는 사범학교에 다닐 때 한 남학생을 사지로 몰아넣는 죄 를 지었습니다. 하늘 아래 영원히 숨겨지는 죄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저야말로 그 살인죄를 평생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 남학생은 하늘나라로 갔겠지요. 저으 죄 까지 그 남학생이 지고 침묵하며 눈감았으니 주님이 그 선행을 이뻐하셨겠지요. 그런데 주님, 한 가지만 더 살짝 말씀드릴게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저도 여성인데 왜 자식 낳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어요. 아기 젖 먹이고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귀여운 줄 저라고 왜 몰랐겠어요. 주님, 제 어리광을 받아주세요. 등잔을 들고 주 님 오시기를 밤새 기다린 신부으 마음을......하늘나라는 사철 꽃이 지지 않는 아 름다운 동산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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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동방 김소진 문학전집 6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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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집의 분량만 보고 작품이 얼마되지 않나 했는데 전집에 작품 전부를 모으지 못했나보다.  

 

  좋은 작가를 너무 일찍 보냈다.  

 

  이 시대를 함께 견뎌냈다면 조금쯤 위로가 됐을테다.  

 

  어떻게 하나? 

 

  살아남은 자에겐 작품 뿐인 것을.  

 

            김소진(1963-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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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
오연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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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21>에서 진보언론의 위기를 말하던데 오마이뉴스도 예외는 아니겠다.  

 

  대안으로 구독료 인상과 언론간 연대를 말하던데 오마이뉴스는 어떻게 생각할까? 

 

  언론끼리는 어떤지 모르나 '창비주간논평'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 공유하기도 한다.  

 

  꼭 언론끼리가 아니라도 중요한 사안에 대해선 힘을 모았으면 한다.  

 

  유시민이 한명숙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던데 진보 언론 모두 힘을 보탰으면 좋겠다.   

 

  노무현을 잃듯, 그렇게 힘 없이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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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者の奢り·飼育 (新潮文庫) (改版, 文庫)
大江 健三郞 / 新潮社 / 195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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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중심과 주변 

  소설은 외딴 산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산촌 마을은 오에가 자주 택하는 소설의 배경이다. <만연원년의 풋볼>(1967), <동시대 게임>(1979), <타오르는 푸른 나무>(1995) 3부작 등이 산촌 마을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은 꽤나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곳은 외부와의 소통이 막힌 폐쇄의 공간이다. <죽은 자의 사치>(1957)는 의과대학의 사체 처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성적 인간>(1963)에서는 반사회적이라 할 수 있는 성을 다루고 있다.  

       마을에서 읍내로 통한 지름길에 걸렸던 그네다리를 산사태가 휩쓸어 가버린 뒤론,  

       우리 국민학교 분교장은 폐쇄됐고, 우편은 마비돼 버렸다.   

  그러나 홍수로 인한 일시적인 격절이 아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읍내 사람들한테 더러운 짐승 같은 천대를 받아 왔"다. 읍내와 산촌 사이엔 심리적 거리감이 놓여 있다. 거리감이란 차별로 말미암으며 결과물은 소외다.  

  소설은 두 세계가 만나고 있다. 읍내와 산촌 마을이 그것이다. 이를 앞으로 중심과 주변이라 이름 짓는다. 읍내가 중심일 수 있는 이유는 이렇다. 우선 현청은 산촌 마을로서는 권위의 공간이다. 현청의 대언자인 서기의 명령에 마을 사람들은 순종할 수 밖에 없다. 소설의 공간은 전시이다. 또한 읍내는 전쟁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그러나 전쟁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마을 청년들의 부재와, 때때로 우편배달부가  

       전해오는 전사통지라는 데 지나지 않았다. 전쟁은 딱딱한 겉껍질과 두툼한 과일의 

       살속까지 침투하지 않았다.  

  미국 흑인 비행사가 산촌 마을에 불시착함으로 중심과 주변의 소통이 시작된다. 서기가 자주 마을로 발걸음 한다. 마을 역시 이제는 전쟁의 공간이 된다.  

  중심과 주변의 경계선에 두 사람이 선다. 서기와 언청이이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 모두 신체적 장애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바흐친의 이론은 시사적이다. "이 세 인물 - 악한, 광대, 바보 - 은 이 세계 속에서 '타자'가 될 권리, 즉 현존하는 인생의 범주들 중 어느 하나와도 협력하지 않을 권리를 지닌다."(<장편소설과 민중언어>) 이 말은 악한, 광대, 바보만이 중심과 주변의 경계선에 설 수 있다는 뜻이리라. 나는 서기와 언청이를 바흐친이 말한 바 주변적 인물로 본다. 서기와 언청이는 경계선에 서 있다. 경계선에서 이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서기는 의족을 한 외다리이다. 서기가 차별받는 부락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그 역시 읍내로 대변되는 국가에 의해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서기가 하는 일은 앞서 말한 바처럼 현청의 지시를 대언하는 것이다. 비행기의 불시착으로 서기는 할 일이 많아졌다. 그가 마을로 전하는 것은 전쟁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관념으로 존재하던 전쟁이 흑인 병사라는 실체로 현재 보여지지만 흑인병, 즉 전쟁을 그들은 스스로 처리할 권리가 없다. 전쟁을 체험했다는 점에서 그는 경계인이다.  

         "저 포론 검둥이로구나." 언청이는 감동에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저 놈을 어쩔 작정인가? 광장에서 쏴 죽일라나?" 

         "쏴 죽인다고?" 놀라움에 숨길을 몰아가며 언청이가 외쳤다.  

         "진짜 검둥일 쏴 죽여?" 

         "적병이니까."하고 나는 자신 없는 주장을 했다.  

         "적, 저놈이 우리 적병이야?" 

         "검둥이야. 그런데 무슨 적이냐?" 

  왜 언청이는 흑인 병사가 적이 아니라 주장하는 것인가? 미국과의 전쟁이므로 미군 가운데 흑인이 끼어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흑인 병사가 적군이 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아군과 적군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당연히 국가이리라. 아군과 적군은 아국군과 적국군의 준말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차원에서 볼 때 흑인 병사가는 분명한 적이다. 그러나 언청이는 다른 차원에서 흑인 병사를 바라보고 있다. '검둥이'란 말은 국가 이전의 개넘이다. 일본인이 일본인이기 전에 황인종이듯이, 흑인 병사 역시 미국인이기 전에 흑인종이다. 인종으로 따지자면 흑인 병사와 마을사람들은 적이 아닌 것이다. 언청이는 더 나아가 "저 놈, 인간 같구나."하는 데서 보여지듯이 흑인 병사를 동물 취급하기도 한다. 또한 성의식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흐친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 받아들이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물질적인 육체적 원칙'을 들고 있다. 이 곳에서 인간의 육체는 극도로 과장된 형식으로 나타난다. 언청이가 소녀들과 벌이는 기묘한 행동들은 그가 기존의 성의식에서 썩 벗어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언청이 역시 유다른 생각을 가지며 바흐친이 말한 바 '타자'로 서 있다.  

  타자로서의 속성 외에도 서기와 언청이를 한 데 묶을 수 있는 요인을 한 가지 더 지적할 수 있다. 서기는 직위상 마을 사람들로부터 권위의 존재이다. 그런데 언청이 또한 자신의 소세계(아이들 세계) 속에선 권위자이다. "언청이가 아이들로부터 대추, 살구, 무화과, 감 따위의 구경값 예약을 한 놈 한 놈한테 받고서야 채광창을 짧은 시간 동안 들여다보게 하였다."  

2 성장 소설 

  <사육>은 성장 소설이다. 왜인가? '나'는 어떤 면에서 성장을 하는가?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니다. 그런 생각이 계시처럼 내 머릿속을 채웠다. 

           언청이와의 피투성이 싸움, 달밤의 새사냥, 썰매장난, 개승냥이 새끼, 

           그 모든 것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는 그런 종류의 세계와의 연결 

           과는 인연이 없어져 버렸다.  

  소년이 맞닥뜨린 것은 세상의 악이다. 악한 세상을 경험한 소년은 더 이상 순수할 수 없다. 이는 성장 소설 -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토니오 크뢰거>, <데미안> - 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사항이다. 소년이 맞닥뜨린 악은 무엇인가? 

  흑인 병사를 적으로 생각하던 소년은 차츰 그와 '급격히 깊고 힘찬, 거의 인간적인 연줄로 결합됨'을 느낀다. 소년은 그를 '한 마리 검둥이'로 생각한다. 짐승일진대 암염소와의 흘레붙이기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이들의 생각이라고는 하나 사람을 짐승으로 보는 것은 이해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흑인 병사는 언어가 없다. 그가 발하는 것은 소리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있어 흑인 병사의 소리는 짐승의 소리일 뿐이다. 무엇보다 단절된 마을 가운데 들어올 수 있는 존재는 정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외다리의 서기만이 유일하게 마을로 들어온다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이다. 아이들의 마음속에서도 피차별 지역인 우리 마을에는 짐승이 아니면 그 어떤 정상적인 존재도 들어올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가축으로만 여겼던 흑인 병사에게 소년은 배신을 당한다.  

            나는 포로였다. 그리고 미끼였다. 흑인병은 '적'으로 변신했고...... 나는 

            난폭한 흑인병 팔 속에서 분노에 불타면서 눈물을 흘렸다.  

  흑인 병사는 가축이 아니었고, 적이었다. 친밀감은 사라지고 분노만이 남는다. 아버지는 흑인병을 도끼로 내리찍고, 소년도 손을 다친다. 소년이 깨닫는 악한 세상의 모습은 이렇다. 우선 이 공간은 배신의 공간이다. 흑인병은 자신을 인질로 삼았으며, 그 인질을 아버지는 모질게 살해한다. 흑인병에 대한 감정 - 친밀감과 배신감 - 이 뒤섞일 때 아버지는 가차없이 흑인병을 살해한다. 소년은 어쩌면 양쪽으로부터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애정을 쏟던 존재에게 도끼질을 가할 수 있는 세상이다. 저 도끼질은 언젠가 내게로 향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마음에 자리잡는다. 소년의 아버지를 천황으로 보는 시각은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근거가 있다. 어른들의 세계의 무정무자비함이 소년이 목도한 세상의 악이다.  

3 죽음의 이미지 

  소설을 시종 지배하는 이미지는 죽음이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나하고 아우는 산골짝 밑바닥의 가설 화장터, 지저분한 나무숲을 깎아버 

              리고 흙만 얄팍하니 파헤친 간소한 화장터에서, 기름과 재 냄새가 풍기는 

              파삭한 표면을 나무개피로 헤치고 있었다. 

  '나'와 아우에게 있어 죽음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아버지 직업이 사냥꾼이라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소설엔 또한 두 사람이 죽고 있다. 흑인 병사와 서기가 그들이다. '흑'의 이미지 역시 원자폭탄의 검은 연기와 관련하여 죽음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흑인=검은 연기=원폭) 또한 전시 공간 속에서 무수한 사람이 죽어갔다.  

  흑인 병사와 서기의 죽음은 깊이 관찰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전쟁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적국이지만 함께 전쟁을 치른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통한다. 서기는 흑인병에게 담배를 권하고, 흑인병은 답례로 파이프를 건넨다. 국가에 의해 전쟁에 고용됨이 무언중에 공감되었는지도 모른다. 흑인병이 전쟁에 참가한 전후 사정을 알 수 없으나 미국 사횡에서의 흑인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여기에 다시 중심과 주변의 논리가 놓인다. 중심과 주변은 이미 그 자체가 위계로 배열되어 있다. 주변은 어디까지나 중심에 종속되어 있다. 주변부의 인물이 경계선에서 하는 역할이란 기껏해야 중심부의 활성화일 뿐이다. 역할이 끝나면 그들의 삶도 다하는 것이다. 역할을 다 한 흑인병과 서기는 죽음을 맞는다. 오에 문학에 있어 중심과 주변이 상호 주관적으로 존재하는 탈구조주의적 구도는 <동시대 게임>에 가서야 보여진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갖게 된 비극적 느낌은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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