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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여성소설 명작선
석평매 지음, 김은희.최은정 옮김 / 어문학사 / 2005년 9월
평점 :
<여행>
펑위안쥔(馮沅君)의 소설은 좀 더 적극적이다. 왜냐하면 풍원군은 결혼제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유부남을 사랑한다. 유부남을 사랑하며 그녀가 당당히 그와 여행까지 가는 건 “그와 그의 부인이 단지 봉건 예교로 이루어진 관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제도로서의 사랑(즉 결혼)보다 의미로서의 사랑을 더 중시한다. “우리는 사랑을 이루기 위함이다”라는 단언은 이를 잘 나타낸다. 봉건적인 사랑은 육체적 사랑(肉交)이었다. 허나 근대의 사랑은 정신적 사랑(情交)이어야 한다. 육교는 그 다음이다. 화자는 이를 ‘순결한 사랑’이라 말한다.
민며느리제로 고통하는 여성은 소수이나, 육교가 먼저든 정교가 먼저든 여성은 대부분 결혼을 한다. 작가의 문제 의식은 좀 더 확대되어 있다. 허나 남자의 마지막 말(“지난 날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처럼 소설의 결말은 모호하다.
馮沅君(1900-1974)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루인(廬隱)의 소설엔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세 자매와 이들의 고모가 등장한다. 결혼을 기준으로 네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겠다. 주인공인 샤뤼만이 기혼녀이고, 세 사람은 미혼이다.
헤어진 지 4년이 지나 자매들은 재회하고, 이들의 기억 속에 있는 고모를 떠올린다. 4년 전에 비할 때 네 사람의 생각은 몰라보게 자리이동 했다. 샤뤼는 현재 갓난아이를 둔 어머니이다. 현재 자신의 모습과 삶에 그녀는 실망한다. “왜 결혼을 해버렸지?” 그녀의 후회 섞인 말이다. 링쑤(玲素)는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녀가 결혼에 대해 지닌 생각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허나 이 말을 참고해 보자. “수도 없이 많고 복잡한 인생의 갈림길에서 언닌 어쨌든 머물 곳을 찾은 거야. 그러니 이루지 못한 일은 생각하지 마!” 링쑤의 위로는 어쩌면 자신을 향한 경계일 수도 있겠다. 연약한 여자로서 결혼은 분명 현실인 것이다. 셋째 동생은 독신주의자였다. “나 요즘 들어 독신주의 고집하던 생각이 많이 흔들리고 있어. 왜냐면 고집이 인생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거든.” 그녀는 가장 많이 변해 있다. 고모는 결혼을 거부하고 사회운동에 열심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사회, 특히 남자들의 차가운 시선이다. 그녀는 굴욕감을 느낀다. 또한 외로움을 절감한다.
결혼도 독신도 네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 것 같진 않다. 여자이기에 불행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소설의 제목처럼 이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소설은 차분히 다른 것 같으나 결국은 같은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있다.
廬隱(1898-1934)
<술 마신 뒤>
링수화(凌叔華)는 이 소설들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생각을 내 비친다. 차이샤오(采苕)와 용짱(永璋)은 부부이다. 두 사람은 별 문제가 없는 평범한 가정이다. 젊은 듯 한데 용짱의 아내에 대한 칭찬과 애정 표현은 과할 정도이다. 그런데 차이샤오가 엉뚱한 부탁을 한다. 용짱의 친구인 즈이(子儀)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나 또한 즈이에게 연민을 갖는다. 문제는 이 감정을 남편에게 별 거리낌 없이 쏟아놓는다는 것이다. 솔직하다 해야 할 지, 속이 없다 해야 할 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여하튼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난 당신이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거 확신해. 왜 내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아내의 투정에 남편은 못내 허락한다. 그러나 아내는 키스하지 않는다.
가전 제품으로 유명한 한 회사의 TV CF를 봤다. 연인이 회사의 사무실로 들어선다. 남자의 회사인 듯 한데, 남자는 동료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하고 잠깐 자리를 비운다.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운이 움트더니 뿌옇게 올라오는 가습기를 사이에 두고 두 사사람은 키스한다. 잠시 후 남자 친구가 들어오고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 듯 매무새를 다듬는다. 가습기 광고인데, 내겐 썩 충격적이었다. 짧은 시간에 극적인 효과를 던져야하는 게 TV 광고의 생리일테지만, 내 정서로는 꽤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술 마신 뒤>는 어쩌면 이 광고보다 여러 발짝 앞서 나가 있다.
凌叔華(1900-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