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은 날래다.
몸이 가볍기에 그가 가지 못할 곳이 없다.
우린 그가 보고 밟는 새로운 곳들을 숨가쁘게 좇아간다.
툭 던지고 마는 선시가 장기라지만 널따란 여백을 마주하며 공부하는 게 독자의 즐거움이리라.
소설이란 텍스트에 대한 주석일 따름이란 게 보르헤스의 생각일 것이다.
텍스트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 때 그 반영이 무한한 텍스트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소설은 언젠가 거짓이 되고 작가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보르헤스의 전부가 아닐까?
Jorge Luis Borges(1899-1986)
모교를 방문한 다카하시 데쓰야에게 질문하려 했는데, 이 책이 대신 대답을 해주고 있다.
군국주의에 저항했던 이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
정치 단체나 언론 매체가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한 건 아쉽다.
하지만 그들의 비판이 향한 곳은 불행히도 천황이 아니었다.
한계를 발견한다.
이 소설엔 왜 혼혈인과 외국인이 많은 것일까?
세 혁명가 가운데 혼혈인과 외국인이 각기 한 사람이다.
작가는 본토의 중국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구제 받아야 할 존재일 따름이다.
혁명의 이념도 서구의 것이며 활동가 역시 서구인의 영향 밑에 있다.
Andre Malraux(1901-1976)
'세상을 떠돌기 백삼십년이며 살아온 나날이 궂은 일뿐'(<창세기>)이라는 건 비단 야곱만의 고백이 아니다.
야곱은 모어로부터는 추방당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행복한 것일까?
고대와 근대 사이에 세워진 국민국가는 또다시 숱한 난민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