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찬히 월러스틴의 이론을 대한 것은 처음인 듯 하다.
그의 이론에 기대자면 보수 정권이 들어선 게 억울한 일은 아니다.
바닥을 향해 더욱 머리를 박는 형국이니 말이다.
대안 혹은 전망에 대한 고민은 모두가 떠맡아야 한다는 말은 값지다.
Immanuel Wallerstein(1930-)
오콩코의 슬픔은 비단 아프리카만의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의 남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아픔이다.
아프리카 문학을 구석에만 몰아넣은 짓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언어가 이미 보편성을 담보하고 있다.
내가 깨닫는 보편성의 작품이다.
당시 세간에서의 파장이 꽤 컸을 듯 한데 해설자는 말이 없다.
이 같은 상황을 용인할 만한 정서가 있지는 않았겠지.
그러나 그저 감정이니 이해하자는 시각이라면 얼마든지 별 게 아닌게 된다.
지금 목도하는 일본은 이러한 현상들의 끊임없는 진행들 때문이겠지만.
작품을 놓고 본다면 소설가 이창동과 영화감독 이창동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물론 근래의 그는 많이 달라졌지만 말이다.
그만큼 그는 고집불통이라는 뜻이다.
조바심 내지 않으며 하나, 하나 이뤄가는 것도 바로 그 고집 때문이리라.
이창래는 한국 작가가 아니다.
미국 작가이다.
한국인임을, 한국 문학임을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이러한 소재의 문학에 미국인이 쏟는 관심은 지당하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그 안에서 공명하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첫 작품의 큰 성공은 위험할 수 있다.
Chang-rae Lee(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