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한 해의 오월을 보낸다.
오월 비극의 주역은 똘마니들을 모아 놓고 5공이 있었기에 민주화가 빨리 이루졌다고 말한다.
또 한 주역은 앓는 소리를 하고 있다.
우울한 시대이다.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만 왔다.
그래도 정찬은 역사 속의 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은 작가였는데 요샌 관심이 덜한 듯 하다.
난 일종의 걸림을 느낀다.
작가는 천착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몽상풍의 소설이 과다하다.
무엇이 작가를 변하게 하나?
번뜩이는 생각들이 번뜻, 번뜻 눈에 띈다.
요셉은 성경이 많은 면을 할애해 소개하는 인물이나 상상이 비집고 들어가야 할 틈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요셉 앞에 펼쳐진 세상은 언제나 두려운 것이었지만 그는 '함께' 이겨나간다.
'함께'란 말이 참 좋다.
편폭을 늘린다면 <요셉과 그 형제들>보다 나을만한 부분도 보인다.
주제의식면에서는 널리 인정 받아 마땅한 소설이다.
격변기에 싹튼 낭만적 사랑이라는 소재도 주목을 끌 만하다.
불분명한 신상의 작가 또한 관심을 끌 만하고.
허나 끈덕지게 독자에게 남기고 갈 만한 게 잡히지 않는다.
작가의 미숙함과 더불어 낭만성의 과도함을 들게 된다.
<처음 만나던 때>에 비할 때 무언가 묵직한 게 곳곳에 보인다.
실험적인 모습들은 그 때문일테고.
찾아보니 이 시집이 앞인가보다.
두 연결점이 도드라져 보인다.
침잠해 있는 듯 하다.
퍽퍽함도 느껴지고.
헤매고 있기 때문일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