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잔뜩 기대한 책이 생각에 못 미칠 때 말이다.
편집의 기술이라고 해야 하나?
서두와 말미에만 일관성이 보인다.
자극적인 제목 역시 탁월하다.
늘 생각하지만 많이 팔린 책이 좋은 책인 것만은 아니다.
한 대학 - 토리노 대학 - 에서 공부한 두 지식인을 파시즘은 모두 사살했다.
두 사람은 감옥과 수용소에 갇혀 인간됨에 절망했고, 또한 인간임을 낙관했다.
그람시가 없는 토리노에 돌아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를 물었고, 그 물음에 직접 답했다.
Antonio Gramsci(1891–1937)
우리네는 이토록 긴 시간을 간장이 녹아도 애면글면 삶의 실타래를 꼬고, 가진 것 없이도 기쁨을 곰비임비 만들어 가며 살아왔다.
허투루 살아갈 삶이 아니다.
우리의 지금도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어야 한다.
설교라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어줍잖은 지식이나 글재주만으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 마음을 알지 못해 힘든 것이 설교이다.
읽는 내내 내 마음이 풍요로웠다.
지금에 왜 루쉰 같은 작가가 필요하느냐 묻는 왕멍의 말은 재미나다.
가장 루쉰다운 글이라면 여기에 실린 잡문들일텐데 그는 공감에 무감한 듯 하나 끊임없이 그를 부추기고 충동한다.
혁명을 바라지 않는 시대이다.
누가 우리를 충동질하나?
그들의 행위에 대해 교주 선생이 어떻게 개탄할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