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충분히 아프지 않았냐?"는 건 그야말로 우문이다.
하지만 성공한 이들의 수기를 대하며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린 건 이 같은 질투 섞인 질문일 것이다.
결론을 빤히 알면서도 자꾸 읽는 건 또 묘한 마음이다.
아마, 질투일 것이다.
88만원 세대인 내게 교양은 무엇일까?
"남자들이 모여 군대 얘기나 하지 책 얘기나 할까?"란 갓 전역한 선배의 말에 가슴이 서걱해지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레비가 단테를 그리워했듯 난 <신곡>을 통해 이태리어와 불어가 오고 간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
다양한 환경 속에서 한 인간이 지닌 고민들이 문제의식으로 발전해가 현실화되는 과정에 있다.
이것이 정치의 힘이다.
현실화할 때 오바마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 미국은 가르쳐줘야 한다.
미국을 위해서다.
그래, 이토록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무엇이 그리 우리를 보챈단 말인가?
진리와 더불어 살아간 간디는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
인생과 사람에게 말이다.
마땅히 두려워 해야 할 존재를 알았기에 그는 감히 진리를 말하고 함께 했다고 이야기 한다.
유럽적 보편주의를 악랄하게 계승한 미국적 보편주의가 현재의 문제이겠다.
인권으로 덧칠되었다지만 가자전쟁 후 중동을 찾아나선 사르코지와 블레어를 보면 말이다.
물론 1차 세계대전 중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의 터전에 이스라엘을 할양하기로 약속한 영국의 처사에 전 영국 수상 블레어가 얼마나 뜨끔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